'클라우제비츠'에 해당되는 글 1건

  1. 값싼 전쟁, 비싼 평화 <새로운 전쟁>



▲새로운 전쟁

헤어프리트 뮌클러 지음·공진성 옮김 | 책세상 | 332쪽 | 2만원

전쟁은 어디서 누가 왜 벌이는가. 그 유명한 <전쟁론>의 저자 클라우제비츠의 시대에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유럽에서 민족국가의 기틀이 잡힌 뒤인 18~19세기 군인이었던 그에게 전쟁이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속”이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어서 이야기한다. 전쟁은 국가와 국가가 벌이는 것이고, 전쟁의 목표는 분명해야 하며, 전쟁이 언제 시작하고 끝날지는 확실하다. 전투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적의 용기를 꺾어 최종적인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의 하나다. 최고지휘관도 인간이기에 학살은 피하려 하고, 피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을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민간인을 해치는 것은 금기다. 

독일에서 활동 중인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는 “클라우제비츠로 무엇을 더 설명할 수 있나”라고 묻는다. 클라우제비츠가 말한 전쟁의 특성은 최근의 전쟁 양상에는 전혀 들어맞지 않으며, 오히려 한 시기의 전쟁에 예외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뮌클러는 ‘새로운 전쟁’을 이야기한다. 그 특성은 책의 부제처럼 ‘군사적 폭력의 탈국가화’로 요약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전쟁>은 21세기의 <전쟁론>이라 할 만하다. 

전쟁을 사업으로 보고, 전투의 대가로 돈을 받는 용병체제는 근대 이전까지 건재했다. 그러나 용병들은 개인의 이득을 위해 움직였기에 매수되거나 태업하기 일쑤였다. 국가의 번영을 위한 현실주의를 추구하던 마키아벨리는 용병체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근대국가는 마키아벨리의 뜻대로 움직였다. 군대의 규모가 커지고 보병, 기병, 포병 등 상이한 병과가 결합하면서 전쟁은 비싸졌다. 특히 오랜 기간의 훈련이 필요한 보병 부대는 군사시장에서 ‘임대’할 수 없었다. 날이 갈수록 비싸진 전쟁은 오직 고유의 영토에서 지속적인 조세 수입을 거두는 국가만이 수행할 수 있었다. 

용병들의 의무감, 도덕성 결핍에 불만이 많던 국가는 결국 전쟁조직을 독점적으로 ‘직영’하기로 했다. 클라우제비츠는 이 시대의 사람이었다. 

20세기가 됐다. 국가는 더욱 강해졌고, 무기는 더욱 발전했다. 게다가 인류를 간단히 절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까지 등장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미국이라는 양강 체제가 구축됐다. 어느 한 쪽이 총을 뽑는다면, 인류가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팽배해졌다. 이러한 힘의 균형 때문에 ‘큰 전쟁’은 끝났으며, 심지어 전쟁의 역사가 완전히 끝났다고 예상한 이도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선구적이었다. 그는 “한 국민의 구성과 태도가 온전히 자본주의적일수록 더욱 평화주의적이며, 또한 더욱 전쟁의 비용을 계산하려 한다”고 말했다. 자본주의가 전 세계에 퍼진다면, 돈이 아까워서 전쟁을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한때 사회주의를 채택했던 나라들까지 자본주의로 돌아선 지금, 전쟁은 사라졌는가. 슘페터의 예측은 틀렸다. ‘새로운 전쟁’은 싸기 때문이다. 자동소총, 지뢰, 다연발로켓포 같은 경량무기들이 사용되고, 가끔 사용되는 중량무기들도 값싼 재고품이다. 새로운 전쟁은 “동등하게 무장한 적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을 상대로 장기간 가하는 폭력”이기 때문에 전자장치가 가득 찬 비싼 무기가 필요 없다. 

새로운 전쟁은 무엇이 새로운가. 15~16세기 이후 근대 서구 국가는 전쟁과 전쟁 준비 과정에서 기술 발전과 경제 근대화를 추동할 수 있었다. 전쟁 과정에 영토가 재정의되고 국가의 기틀이 잡히기도 했다. 미국의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 그 예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은 순수히 국가붕괴전쟁이다. 20년 이상 지속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국가의 모든 조직이 붕괴된 뒤에야 끝났다. 30년간의 앙골라 전쟁, 20년간의 수단 전쟁, 15년간의 소말리아 전쟁도 마찬가지였다. 제3세계 국가에서 일어난 전쟁은 정치 엘리트의 에토스, 국가에 충성하는 공무원의 싹을 잘랐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국가 재건은 어려웠다. 

클라우제비츠가 ‘전쟁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부른 ‘결전’이 없는 새로운 전쟁에선 전방, 후방, 본토의 구분이 없었다. 상시적인 폭력이 일어났고, 전쟁과 평화의 경계선이 모호해졌다. “사회적 모세혈관의 말단에까지 확산되는 폭력”이 일어났다. 전쟁이 ‘유출’된 것이다. 

민간인이라고 무사하지 못했다. 20세기 초반까지의 전쟁에선 사망자와 부상자의 90%가 국제법상 전투원에 속했다. 새로운 전쟁에선 80%가 민간인이었다. 근대국가의 군인들은 엄격한 규율을 갖고 있어 민간인을 해치지 않았다. 새로운 전쟁의 병사들은 전쟁법이나 군사형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1949년 체결된 ‘전시의 민간인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은 쓰레기통에 던져졌다. 강간 파티와 신체 절단 유희가 이어졌다. 유고슬라비아에서 여성은 노획물, 전승기념물, 유희 대상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공격 목표였다. “성폭행으로 사람들은 폭탄을 아낀다. 성폭행을 통해 사람들은 적은 비용으로, 그러나 더 효과적으로 인종을 청소한다.” 공개적인 장소, 희생자의 남편과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강간이 이뤄졌다. 이때 강간은 “패배한 쪽의 남성들이 붙들고 있는 권력과 소유에 대한 남아 있는 모든 환상”을 부순다. 

새로운 전쟁이 값싸게 유지된 것은 소년병의 지속적인 충원 덕이었다. 사하라 이남 국가들의 길거리에서, 아프가니스탄 코란학교에서 별다른 출세 수단이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길이 없는 소년들에게 자동소총이 지급됐다. 이 무기는 복잡한 작동법을 익힐 필요가 없고, 가벼워 들기도 쉬웠다. 소년들은 무기를 가지면 음식과 옷, 사회적 신분이 따라온다고 생각했다.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은 선글라스를 끼고 힙합 음악을 들으며 마약에 취해 AK-47 소총을 쏘아댔다. 성장기 소년의 야성적인 성 정체성은 이전의 전쟁에 없었던 참상을 낳았다. 소년병들은 재미로 강간을 하고, 제비를 뽑아 신체를 절단했다. 

새로운 전쟁을 수행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전쟁사업가, 군벌, 지역의 장군들이었다. 이것이 ‘전쟁의 탈국가화’다. 이들은 부유한 개인, 국가, 이민자 집단으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거나, 다이아몬드 등 관할 지역의 자원을 팔고, 마약과 인신 매매를 하고, 국제사회가 난민촌에 지원하는 물품을 빼돌렸다. 컨트롤 리스크 그룹, 샌들라인 인터내셔널, 살라딘 시큐리티 등 서구 대도시에 번듯한 사무실을 차려놓은 전문적인 ‘시큐리티 회사’는 ‘용병의 시대’가 되돌아왔음을 체감케 한다. 

9·11 테러로 대표되는 국제 테러리즘은 새로운 전쟁의 한 양상을 보여준다. 테러리스트들은 초강대국 미국의 군사력에 맞서는 방법을 알아냈다. 테러리즘은 비대칭적 형세에 비대칭적 전략으로 맞서는 방법이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이렇게 당했다. 테러리스트들은 국제무역센터를 붕괴시킴으로써 미국에 물리적 타격을 가했을 뿐 아니라, 공포를 확산시킴으로써 심리적 타격까지 안겼다. 

과거의 테러리스트들은 요구 조건이 뚜렷했다. 항공기를 납치한 뒤 승객들을 인질 삼아 붙잡힌 동료와 교환하자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최근 늘어난 종교적 테러리즘은 요구가 지나치게 광범위하거나 뚜렷하지 않다. 9·11 테러의 목적은 ‘서구 문명의 붕괴’였다. 어떤 테러는 끝까지 누가 왜 저질렀는지 밝혀지지 않는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끝에 남는 것은 막연한 두려움뿐이다. 

서구 사회는 대응책을 갖고 있는가. 위르겐 하버마스는 나토군의 코소보 개입을 ‘인도적 군사개입’이며, 새로운 세계질서 정치의 시작이라고 봤다. 일어날지도 모를 끔찍한 인권 침해 상황을 국제사회가 앞서 막았기 때문이다. 노엄 촘스키는 무력을 통한 개입 정책을 송두리째 비판했다. 미국에 인권이란 원하는 곳을 어디든지 공격할 수 있는 ‘백지수표’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울리히 벡은 둘의 의견을 절충했다. 그는 “군사적 인도주의라는 새로운 형태의 탈국가적 정치”를 ‘발전’이라고 표현하면서도, “패권적 힘이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인권인지를 결정한다”고 냉소했다. 

뮌클러는 어떤 입장도 아니다. 특히 ‘지구적 인권정치’의 시대가 시작된다는 하버마스와 벡의 생각은 그런 정치에 필요한 비용 분담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현실적이라고 말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매우 시끄럽고 요동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비싼 평화와 값싼 전쟁 사이에서, 인간은 경제적 선택을 시작했다. 

한국은 다를까. 뮌클러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한반도는 북한이 군사력 이외의 다른 힘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줄어드는 보편적 경향의 예외라고 했다. 남북한 정부 모두 전쟁기구들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민영화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굳이 한반도의 상황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새로운 전쟁>이 21세기 국제질서에 대한 명쾌하고 통찰력 있는 시선을 안겨준다는 점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