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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카사블랑카+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치코와 리타


머리가 벗어지고 피부가 늘어진 노인이 라디오를 튼다. 감미로운 노래 ‘치코와 리타’가 흘러나오고, 노인은 1948년 쿠바 하바나를 기억한다. 그때 젊고 재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치코는 아름다운 가수 리타에게 반한다. 치코는 리타에게 뜨겁게 구애하고, 리타는 마지못한 척 그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치코는 당대의 많은 뮤지션처럼 이성관계에 있어서 자유로운 남자였다. 리타는 그런 치코를 견디지 못해 떠났고, 치코는 리타를 붙잡지 않았다.

리타는 미국 기획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재즈의 중심지 뉴욕에서 성공한다. 치코 역시 뉴욕에서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둘은 재회하고 다시 사랑한다. 그러나 이 사랑이 순탄할 리 없다.



스페인과 영국의 합작 애니메이션 <치코와 리타>는 뻔하디뻔한 사랑 이야기다. 바람둥이 남성 예술가와 재능 있는 여성 예술가가 사랑하고 질투하고 헤어졌다가 다시 사랑한다. 예술가가 주인공인 숱한 소설, 영화가 이런 남녀 관계를 다뤘다. 그러나 <치코와 리타>가 다루는 감정은 절절하다. “다시 키스하고 싶었어”같이 단순한 대사가 큰 울림을, “무슨 미래? 내가 바라는 건 과거에 있거든” 같은 대사는 큰 통찰력을 준다. ‘통속의 힘’이다.

스케치하듯 제시된 시대 상황은 치코와 리타의 삶과 사랑을 허공이 아니라 역사에 안착시킨다. 리타는 할리우드에서도 사랑받는 가수·배우가 됐지만, 정작 자신이 공연하는 고급 호텔에서는 방을 얻을 수 없었다. 그녀는 ‘스타’이자 ‘검둥이’였기 때문이다.

치코의 자유분방한 재즈는 혁명 이후의 쿠바에 어울리지 못했다. 혁명 정부는 재즈를 ‘제국주의 음악’이라고 낙인찍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재즈 음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쿠바의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베보 발데스가 음악을 맡아 농익은 연주를 들려준다.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벤 웹스터, 냇 킹 콜 같은 재즈 명장들이 영화 속 캐릭터로 등장한다.

<치코와 리타>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같은 ‘음악 영화’이자, <카사블랑카> 같은 ‘멜로드라마’다. 두 영화의 팬은 <치코와 리타>도 좋아할 것이다.

사랑에 빠진 예술가를 그린 많은 영화들은 ‘사랑은 가도 예술은 남는다’고 주장했다. 예술을 남기지 못한 예술가를 후대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코와 리타>는 이 주장에 한 마디 덧붙인다. ‘사랑 없는 예술의 뒷맛은 끝내 씁쓸하다’고. 5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