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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의 기회, <인사이드 르윈> (2)

<인사이드 르윈>은 외관상 음악영화다. 1950년대말, 음반을 두어 장 냈지만 그다지 알려지지는 않은 포크 뮤지션이 주인공이다. 원래는 듀엣이었지만 파트너가 자살을 한 뒤 솔로로 전향한 르윈 데이비스는 밤에는 시시껄렁한 농담과 함께 클럽에서 노래를 하고, 그보다 늦은 밤에는 동가식서가숙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예술가'하면 이리저리 떠도는 '보헤미안'의 느낌이 자연스럽게 연상되고 그런 모습이 그다지 나빠 보이지도 않지만, 르윈의 경우는 좀 다르다. 르윈이 하루 혹은 며칠밤의 잠자리를 청하려는 사람들은 대체로 탐탁치 않은 반응을 보이고, 르윈 역시 아티스트답게 당당하기보다는 어딘지 궁상맞이 보인다. 르윈은 스스로 자조적으로 농담하듯 "다 그게 그거 같은" 포크송을 불러대는데, 가사만큼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날 목매달아 주오" 같은 르윈의 가사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은 많지 않다. 아티스트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고픈 마음도 없진 않지만, 르윈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은 오늘 같은, 그저그런 생활을 이어간다. 



엄청 '간지'나는 뮤지션인양 앉아있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이 남자에게 간지란 거의 없다. 


본 사람은 다 눈치챘겠지만, 르윈의 이 영원히 반복되는, 마치 들을 때는 피식하고 웃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예전에도 들었던 농담같은 삶은, 영화적 트릭을 통해 제시된다. 첫 장면이 마지막 대목에서 반복되는 수미상관의 구조야 새로울 것이 없지만, <인사이드 르윈>만의 영화적 트릭은 이 사이 시간이 뒤죽박죽 된 것 같은 장치를 넣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인사이드 르윈>의 시간은 선이 아니라 원으로 흐른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전에 겪었던 일을 완전히 똑같이 반복 경험하게 만든다. 갚은 돈을 또 갚으라는 채권자와, 스스로도 아직 빚이 남은듯 면구스러워하는 채무자가 실랑이를 하는 느낌.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는 느낌. 구성만으로만 따져 본다면 <인사이드 르윈>과 비슷한 영화는 <사랑의 블랙홀>이다. 빌 머레이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그 영화 말이다.



캐리 멀리건(왼쪽)은 이 영화에서 욕을 정말 시원하고 차지게 잘한다. 이런 욕 한번 들으면 없던 정신이 번쩍 들 듯.


우리 모두의 인생에서 한 두번쯤은 그런 기회가 오듯이, 르윈에게도 이 무한반복의 꾸질꾸질하고 찌질찌질한 삶에서 벗어날 순간이 있었다. 그 길은 르윈의 예기치 않은 시카고 여행 사이에 나타난다. 과묵하고 부루퉁한 운전사, 뚱뚱하고 무례한 뒷자리의 승객과 함께 하는 이 여행을 통해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영화에서 로드무비로 변환한다. 그것도 어딘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처럼 조금 기괴한 로드무비. 대부분의 로드무비는 한 길로만 가야하는 레일 위가 아니라, 샛길로도 갈 수 있는 국도에서 벌어진다. 바로 그 샛길로 간다면 르윈의 삶도 달라질 수 있었다. 내가 느낀 르윈의 샛길은 낙태를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의 아이를 낳아 2년 정도 키우고 있던 옛 연인의 집으로 향하는 표지판을 봤을 때, 그리고 우연히 르윈과 동행했다가 결국 버려진 고양이를 가볍게 친 순간 나타났다. 그러나 르윈은 결단력도, 순발력도 없는 남자였다. 그는 옛 연인의 집쪽으로 핸들을 돌리지도, 고양이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그는 아주 잠시 망설인 뒤 체념한 표정으로 악셀레이터를 밟는다. 그리고 뉴욕으로 돌아온다. 이제 끝. 르윈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쓰고 나니까 한 단락만에 생각을 수정하고 싶어졌다. 난 르윈에게 무한반복의 삶을 벗어날 기회가 두 번 있었고, 그걸 바보같이 놓쳐버렸다는 투로 썼다. 그러나 내가 르윈을 비난하는 건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 난 관객이고, 그래서 르윈의 삶을 더 냉정하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어느 르윈도 자신의 삶을 관객처럼 냉정하게 볼 수 없다. 표지판을 지난 다음에야, 인연을 놓친 다음에야 그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중요한 기회였는지를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