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로치'에 해당되는 글 2건

  1. 켄 로치의 건강하고 재미있는 사람들
  2. 80세 노장의 한 방, '나, 대니얼 블레이크'



'나, 다니엘 블레이크' 리뷰는 칸영화제 당시 써버려서 한국 개봉에 맞춰 무얼 쓸까 생각하다가 이런 아이템을 내봤다. 주제는 무거운데, 인물들은 생동감있고 유머러스하다. 


사람 보는 재미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들이 있다. 50년 가까운 경력 동안 줄기차게 비슷한 영화들을 만들어온 켄 로치(80)의 인물들이 그렇다. 그의 영화 속 노동자, 실직자, 소외된 자들은 웃고 울고 싸우는, 그래서 살아 있는 캐릭터다. 경제학의 통계나 사회학의 이론으로 포착되지 않는 생생한 인간들이 켄 로치의 영화에 살아 있다.

켄 로치가 연출해 올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8일 개봉한다.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운 데서 보이듯, 당당하게 빛나는 캐릭터의 품성이 감동을 준다. 다니엘 블레이크를 포함해 켄 로치가 그러낸 세 명의 사람다운 사람을 골랐다.




■다니엘 블레이크(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

다니엘 블레이크는 목수였다. 심장질환 때문에 일을 쉬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지만, 관공서에선 어이없게도 일할 수 있는 몸 상태라고 판정한다. 실업수당을 받기 위해선 구직 활동을 해야 하기에, 블레이크는 할 수 없는 일을 구하러 다니는 모순에 처한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성마르고 고집 세다. 그래서 카프카조차 놀랄 만큼 끔찍한 관료제에 순응하려 들지 않는다. 상담사와 통화하기 위해 1시간48분간 통화대기음을 들으며 기다리는 상황도, 심장이 아프다는데 “팔을 들 수 있느냐”며 매뉴얼에 충실하지만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는 판정관도, ‘복지 포인트’를 빌미로 협박하는 공무원도 참아줄 생각이 없다.

그는 자존감이 세기에 당당하다.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냈지만, 평생을 성실하고 실력 있는 목수로 살았다. 블레이크는 선언한다. “나는 고객, 사용자, 게으름뱅이, 사기꾼, 거지, 도둑, 보험 번호 숫자, 화면 속 점이 아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이웃을 도왔고, 자선에 기대지 않았다. 나는 개가 아니고 인간이다. 그래서 그에 걸맞은 권리를 요구한다.”

블레이크처럼 자존감 강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연대할 수 있다. 블레이크는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에게 조건 없는 우정의 손길을 내민다. 오직 그의 처지를 위로할 뿐,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반대 상황에서는 케이티 가족의 도움을 받아들인다. 가난하지만 강한 사람들이 빚을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다.미지 원본보기


■마야(빵과 장미·2000)


마야는 멕시코 출신 불법 이주 노동자다. 언니가 먼저 건너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로 온 뒤 가까스로 대형 빌딩의 청소부 일자리를 얻는다. 경비원에게 쫓기던 노동운동가 샘을 쓰레기통 안에 숨겨준 마야는 이후 생각지 못한 길을 걷는다. 

비록 법을 어긴 채 낯선 환경에서 힘겹게 살아갈지언정, 마야는 낙천적이고 영리하다. 자신을 겁탈하려는 밀입국 알선업자로부터 기지를 발휘해 벗어나는 초반부부터 마야의 매력이 드러난다. 빌딩의 화이트칼라들이 청소복 입은 사람들을 ‘투명인간’ 취급하자, 마야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모두 눌러 골탕을 먹인다. 건물주나 빌딩 관리자들에게 마야는 토끼처럼 나약한 존재로 비춰지겠지만, 토끼에겐 꾀가 있다.

동료가 관리자의 말 한마디에 해고되자, 마야는 가만있지 않는다. 토끼도 뭉치면 늑대를 이길 수 있다. 마야는 미화원 노조를 조직한다. 로비에서 시위를 하고, 명사들의 파티에 난입해 소동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다소간의 불법이 자행되지만, 마야는 아랑곳 않는다.

결국 마야의 불법 행위는 살짝 도를 넘는다. 자기가 아니라 동료를 위한 것이었지만, 그 책임은 온전히 마야 스스로 져야 한다. 마야 역시 행위의 결과를 안다. 그래서 멕시코로 추방되면서도 웃음지으며 작별할 수 있다. 강인한 의지와 타고난 낙천성은 새드 엔딩을 해피 엔딩처럼 보이게 만든다.



■밥(레이닝 스톤·1993)


밥은 백방으로 일을 구하러 다닌다. 적법이든 불법이든 상관없다. 다른 사람의 양을 훔쳐 팔거나, 보수당사의 잔디를 파내 되팔거나, 해본 적도 없는 클럽 경호원을 하거나, 동네 사람들의 하수구를 뚫어준다. 물론 제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직업인으로서 무능해 보이는 밥이 이토록 애쓰는 이유가 있다. 딸이 성찬식에 입고 갈 새 드레스를 사주기 위해서다. 모두들 밥에게 무리하지 말라고 권한다. 사제는 “빌려 입어도 된다”고 말하고, 장인은 성찬식의 가치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밥은 여느 켄 로치의 사람들처럼 고집불통이다. 무능하다고 해서 자존심도 없는 건 아니다. 새 드레스를 입고 기뻐하는 딸의 얼굴을 보고 싶은 건 모든 아빠의 마음이다.

밥은 겁쟁이가 아니다. 원하는 걸 얻어내기 위해선 모두들 두려워하는 상황을 직접 대면할 용기가 있다. 밥이 가진 무기라고는 몽키스패너뿐이지만, 밥은 덜덜 떨면서도 덩치 큰 사채업자 앞에 나서 할 말을 한다. 하층민도 배짱은 있다.

밥은 정직한 남자다. 저지른 죄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그에겐 해피 엔딩이 기다린다. 물론 가난한 가장이 해피 엔딩을 맞이하려면 신의 가호 혹은 큰 행운이 필요하다. 언젠가 신이 밥의 죄를 사해주기를 묵묵히 기다릴 뿐이다.



기사를 쓸 때는 거래가 진행중이었는데, 얼마후 수입사가 결정됐다. 개봉일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수입제목은 뭐라고 할지. 



검은 바탕에 흰 글씨의 오프닝 타이틀이 올라가는 동안 로봇보다 무미건조한 상담사와 조금 화난 듯한 남자의 전화 대화가 들려온다. “선생님, 스스로 모자를 쓸 수 있나요?” “무슨 소리예요. 전 심장이 아팠다니까요.” “선생님, 묻는 말에 답해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진행할 수 없습니다.” “네. 모자 쓸 수 있습니다.” “선생님. 스스로 자명종을 누를 수 있나요?” “아니,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전 심장이 아프다니까요.”

상담사는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남자를 실제로 돕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매뉴얼의 항목을 채우는 데 관심이 있어 보인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은 영국 뉴캐슬에 사는 59세의 목수 대니얼 블레이크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지도 모른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선보인 켄 로치(80)의 신작 <나, 대니얼 블레이크>는 빈자에게 모멸감을 주는 관료적 복지제도의 문제를 신랄하게 공격하는 영화다. 

블레이크는 성실한 남자였다. 아내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그는 심장에 이상이 있어 일을 쉬라는 의사의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국가는 블레이크가 실제로 구직활동을 했다는 증거를 가져와야 실업급여를 줄 수 있다고 한다. 블레이크는 “의사가 쉬라고 했는데 무슨 구직이냐”고 항변하지만, 국가는 같은 주장을 반복한다. 결국 블레이크는 실제로 하지도 않을 일을 찾아다니며 구직활동 시간을 채워야 하는 처지다. 더도 덜도 아닌, 성실히 일한 대가로 살아가던 블레이크에게 이 같은 상황은 모멸감을 안긴다. 그러던 중 블레이크는 어린 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가난한 싱글맘 케이티를 만난다. 블레이크와 케이티는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고 돕지만, 둘의 앞날은 밝지 않다. 

역사는 전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블레이크가 부딪힌 복지국가의 허상은 20세기 초반 카프카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은 관료제의 기괴함과 다를 바 없다. 담당자와 전화 한 통 하기 위해서는 모차르트가 작곡한 통화 대기음을 들으며 1시간47분을 기다려야 한다. 블레이크는 수화기를 든 채로 택배를 받고 목공일도 한다.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아가니, 온라인으로 접수하라며 돌려보낸다. 블레이크는 컴퓨터에 친숙하지 않지만 물어 물어 겨우 항목을 채운다. 그리고 ‘전송’을 누르니 컴퓨터가 다운된다. 마치 컴퓨터와 국가가 한통속인 듯 관료적 복지제도의 장벽을 무자비하게 높인다.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제도의 틈새를 파고드는 건 선한 이웃 사이의 연대다. 자괴감에 빠져 은둔한 블레이크에게 케이티의 어린 딸 데이지가 찾아온다.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자 데이지는 문 사이로 말한다. “아저씨. 저희를 도우신 것 맞나요?” “맞아. 도왔지.” “그럼 이번엔 제가 도우면 안되나요?” 무사안일한 실업급여센터에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직원이 있다. 그는 블레이크가 컴퓨터로 문항을 작성하는 걸 직접 돕는다. 그러다가 상사에게 “자꾸 선례를 남기면 안된다”는 꾸중을 듣기까지 한다. 

켄 로치는 “국가는 도움이 필요한 빈곤층에게 복지를 제공할 때 일부러 잔인한 태도를 취하고, 관료제의 의도된 비효율성은 정치적 무기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등장인물들은 영어를 쓰지만, 칸영화제 상영본에는 영어 자막이 붙었다. 영어를 하는 이조차도 뉴캐슬의 강한 사투리를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켄 로치는 2년 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한 <지미스 홀>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하지만 소문이 무색하게 제자리로 돌아와, 10년 혹은 20년 전과 비슷한 형식, 감정의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로치가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로치가 사는 세상은 바뀌지 않았고, 로치는 그에 대해 가장 정확한 시선을 견지하고 있을 뿐이다. 로치는 단순하고, 간결하고, 힘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영화를 만들고 있다. 

이번 칸국제영화제 기간에 국내 몇 군데의 수입사가 <나, 대니얼 블레이크>의 수입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약이 원활히 이뤄질 경우, 조만간 국내에서도 <나, 대니얼 블레이크>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