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트종교'에 해당되는 글 2건

  1. 콩고기 버거를 먹어봐야 소용없다고? <채식의 배신>
  2. 세계종말, 좌파의 좌절, 컬트 종교-<화성연대기>와 <언더그라운드2>에 대한 단상

논지 자체는 흥미로웠는데 서술이 다소 장황한 편이었다.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 하고 싶은 말, 무엇보다 울분이 넘쳐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보도록 하자. 왠지 저자를 실제로 만나면 어떤 사람일지 눈에 떠오르는 것 같다.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지음·김희정 옮김/부키/440쪽/1만5000원


20년간 고기는 물론 생선, 계란, 우유, 꿀 등도 일절 먹지 않는 극단적인 채식주의자, 즉 비건으로 살아온 리어 키스는 어느 날 유명한 중국계 미국인 기공(氣功) 선생을 찾았다. 기공 선생은 키스의 맥을 짚은 뒤 말했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군요. 기가 전혀 없어요.” 키스가 동물들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고기든 생선이든 먹지 않는다고 간신히 말하자, 선생은 “큰 물고기가 작은 물고기를 먹는 건 자연의 이치”라고 답했다. 키스는 “전 큰 물고기가 아니잖아요”라고 말하며 울음을 터뜨렸지만, 그런 답으로 지난 20년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은 스스로가 잘 알았다.


키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게에 들러 참치 통조림을 샀다. 피곤에 찌든 손으로 통조림을 뜯은 뒤 플라스틱 포크를 이용해 참치를 입에 넣었다. 이 순간에 대해 어떤 비건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느낌”이라고, 다른 비건은 “배터리에 연결된 느낌”이라고 고백했다. 키스는 “내 온몸의 세포, 글자 그대로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고동치는 것을 느꼈다”고 적었다. 이후 3주동안 키스는 매일 고기를 먹은 뒤 누워 쉬었다. 고기를 통한 재충전 과정이 너무나 치열했기 때문이다. 키스의 ‘변절’ 소식에 어떤 비건은 자신도 고기를 먹고 있다고 고백했고, 어떤 비건은 등을 돌렸다.


동물을 고문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에 항거하기 위해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을 때 키스는 16살이었다. 신음하는 지구에 연민을 느낀 키스는 채식주의자들의 고귀한 신념에 설득당했다. 그러나 키스의 몸은 그 신념을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비건 식사를 한 지 6주쯤 지났을 때 저혈당증을 경험했고, 3개월만에 생리가 멈췄다. 만성 피로와 감기를 달고 살았다. 피부 껍질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이후엔 위 마비 증상이 찾아왔다. 우울증, 초조감 등 정신적인 문제도 겹쳤다. 몸이 아픈 건 비건 식사 때문이라는 명확한 사실을 키스는 애써 부정하려 했다. 그저 신념과 정의로 나약한 육체를 이겨내려 했다.


<채식의 배신>(원제 The vegetarian myth)은 회심한 채식주의자의 참회록이다. 이 참회는 자신의 몸과 지구에 동시에 적용된다. 아울러 채식주의가 그 고결한 의도에도 불구, 지구를 구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보여주려 한다. 그래서 키스는 지구를 구하는 또다른 방법을 말하는데, 그것은 비건의 식생활이 그랬듯이 극단적이다. 어정쩡한 방법으로 수습하기엔 지구가 너무 큰 위험에 빠져있다고 키스는 생각하고 있다. 


돌아 눕지도 못할 정도로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태어나고 죽어가는 돼지, 24시간 인공조명 아래 하루 종일 알을 낳는 닭, 쇠똥 위에 쇠똥을 누고 그 위에 뒹굴어야 하는 소 등의 뭇생명에 대해 연민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다. 목소리 없는 동물, 식물, 지구를 대신해 발언하겠다는 의도도 숭고하다. 그러나 좋은 의도가 매번 좋은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채식주의도 그렇다고 키스는 진단한다. 비건이기를 고수하는 이들은 대부분 올바른 정보를 알지 못하고, 안다 해도 신념에 어긋나기 때문에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가지 측면에서 채식주의의 오류를 파악한다. 우선 도덕적 이유의 채식주의. 채식주의자들은 생명을 해치길 싫어한다. 리스는 “얼굴이 있거나 엄마가 있는 건 먹지 않는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생명 중에 ‘엄마’가 없는 생명이 있는가. 게다가 ‘얼굴’의 기준은 무엇인가. 인간의 얼굴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얼굴인가. 더 나아가 동물은 죽이면 안되고 식물은 죽여도 되는 이유가 있는가. 식물도 인간이나 동물의 것과 같지는 않을지언정 나름의 ‘감정’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숱하다.


과일만 먹는 ‘과식(果食)주의자’는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분파다. 과일을 먹기 위해서 나무를 죽일 필요는 없기에, 이들의 행동이야말로 흠잡을 데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들조차 사과를 먹은 뒤 씨앗을 심지는 않는다.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그 씨앗을 퍼트리기 위함인데도 말이다. 사과로선 배신을 당한 셈이다.


비건의 식단. 맛있겠는데 뭘. 


채식주의자 중에선 스스로 농사를 짓는 이들이 많다.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법으로 농사를 지어 그 결실을 먹는다면 이상적일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농업이야말로 생태계를 파괴한다. 작물은 땅의 양분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아낌 없이 짜먹으려 한다. 즉 농업은 ‘육식성’이다.


키스 역시 텃밭을 가꾸었다. 곤란한 것은 민달팽이였다. 비가 많이 오는 해에는 민달팽이가 어린 채소들을 완전히 갉아먹기 일쑤였다. 농약을 치기가 싫어 ‘유기농 해결책’으로 알려진 규조토를 썼는데, 규조토의 원리는 그 입자에 선 작고 날카로운 날로 기어가는 민달팽이의 배를 가르는 것이었다. 상처입은 민달팽이는 결국 탈수되어 죽는다. 민달팽이를 하나씩 잡아 숲에 버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면 먹이도 없는 그곳에서 죽어갈 것이다.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해봐야, 직접 가스를 틀지 않았지만 유대인 가스실 이송 계획에는 서명한 나치 관료나 마찬가지다.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식물을 먹고, 식물은 그러다가 죽은 동물의 사체에서 양분을 취하는 것이 이치다. 여기엔 도덕도 부도덕도 없다. 자연은 초도덕이다. 이렇게 먹이사슬은 직선이 아니라 원을 그린다. 생명이 다른 생명의 죽음에 기대 살아간다는 사실에 불편해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다음은 정치적 이유의 채식주의. 이 대목에선 과점 기업이 지배하는 곡물 시장의 문제를 제기한다. 카길과 컨티넨털 등 두 개의 곡물회사가 전세계 곡물 교역의 50%를 차지한다. 옥수수와 콩의 경우 4~5개 회사가 전세계 생산량의 75~80%를 장악한다. 이들은 대규모 농지에 단일 작물을 심어 곡물 가격을 싸게 유지한다. 물론 이 농지를 넓히기 위해선 이전부터 있던 숲을 깎고 그곳에 살던 동물을 내쫓아야 한다. 선진국의 저가 농산물은 빈국의 농업을 파괴한다. 채식주의자들은 이렇게 생산된 곡물을 먹으며 자신들이 지구의 평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지구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이 많은 인구가 먹고 살기 위해서 농지가 늘어나면 악순환이 반복된다. 수십 억 인구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키스는 진단한다. 인구를 줄이지 않으면 지구도 죽는다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한다는 영양학적 이유의 채식주의들도 저자는 반박한다. 인간은 육식, 채식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소화하는 능력을 갖췄고, 이는 식량이 부족했던 시대에 살아남기에 유리했다. 


물론 지금은 당장 생존을 걱정할 정도로 식량이 부족한 시대가 아니다. 현대의 채식주의가 위험한 것은, 이것이 탄수화물 소비를 촉진하려는 곡물 대기업의 계략에 지방을 죄악시하는 섣부른 연구 결과가 뒷받침 돼 날조된 것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나 북극의 원주민들 중에는 곡물을 전혀 먹지 않고 육류와 짐승의 젖만으로 살아가는 종족이 많은데, 이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은 없다. 정부, 의학계, 제약사의 지속적인 캠페인 결과, 1960년대 이후 미국인들의 지방 섭취는 10%,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의 수도 28% 줄었다. 그러나 지방 및 콜레스테롤이 유발한다고 알려져왔던 심장병 발병률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열정적인 비건들이 모인 게시판에서 벌어진 몇 가지 에피소드를 들으면 이들이 마치 컬트 종교의 신도들인 것처럼 비춰진다. 실제 <채식의 배신>은 컬트 종교 탈출기에 가깝다. 예를 들어 동물들이 살해당하지 않는 아이디어라며 세렝게티 초원 가운데 담을 세워 사자와 영양 사이를 갈라놓아야 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육식 동물이 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고기 산업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는 주장도 덧붙여졌다. 댓글은 찬성 일색이었다.


심지어 ‘호흡주의자’까지 나왔다. 이는 인간은 먹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바나나, 요구르트, 사과 등으로 식사를 줄여가며 음식으로부터 멀어지겠다는 계획을 세우는가 하면, 차 한 잔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몇 달씩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30년간 호흡주의자로 살아왔다고 주장하는 미국호흡주의협회 창립자가 편의점에서 핫도그와 케이크를 사들고 나오는 모습이 목격됐다. 그는 주변에 불량 식품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걸 먹어 없애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키스는 자신의 지난날을 반성한다. 비건이 되겠다는 마음은 갸륵했으나, 콩고기 버거를 먹는 것으로는 지구를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키스는 이전의 자신이 자유주의자였다면, 이제 급진주의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개인주의를 체득한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사회 운동을 하나의 커다란 ‘집단 치유’로 만들었고, 현실에서의 구체적 성취 대신 그것을 통해 개인이 무엇을 느끼는가를 중시했다. 그러나 키스는 “사회 운동가의 임무는 자기 자신을 최대한 갈고닦아 체제와 협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체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키스는 비건이 돼 스스로를 혹사하는 대신,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세 가지 일을 제시한다. 차를 타지 않는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자기가 기른다.


그리고 가능하면 아이를 낳지 않는다. 키스는 지구에는 수용할 수 있는 것보다 60억명이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한다. “1만년에 걸친 인류의 특권 의식” 때문에 지구가 병들어있기에, 이제는 인류가 특권을 버리고 번영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구를 위해 출산을 포기하자. 키스의 진의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이런 주장은 그가 이전에 속했던 비건 게시판의 ‘생명 존중’ 분위기만큼 극단적으로 여겨진다. 지구 혹은 한참 뒤 후속 세대의 안녕을 위해 현세대의 즐거움을 포기하자는 이야기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인간이 지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인간으로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것까지는 없을텐데.

누군가 내게 요즘 독서의 방법을 묻는다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라고 답하겠다. 한 가지 주제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책들을 훑은 적도 있었는데, 비슷한 책들을 오래 읽으니 어느 순간 독서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빌러비드>를 이어서 읽는것 까지는 괜찮은데, 그러다가 같은 시기를 다룬 책을 하나 더 읽으면 좀 질려버리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이 주제별, 시대별 독서를 조금 유연하게 적용한 것이라 할만하다. 


지난해 인터뷰했던 평론가 김봉석씨가 추천했던 레이 브래드버리의<화성연대기>를 읽었다. 브래드버리의 작품은 <화씨 451>을 읽은 적이 있다. 책은 비판적인 사유를 갖게 하기에 전면 금지되고, 책을 발견해 태우는 걸 직업으로 삼은 남자가 책의 소중함을 깨달아간다는 내용이었다. 이 아이디어의 영향은 이후 몇 편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발견된다. <이퀼리브리엄>에서도 책은 가질 수 없었던 것 같고,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을 외워 그 책이 된다는 설정은 '크리스찬 블록버스터'라 할만한 <일라이>에 나왔다. 


<화성연대기>는 인류가 화성으로 이주하고, 화성의 선주민들이 멸종하고, 결국 인류도 멸종해가는 내용들을 다룬 단편들을 묶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잡지에 연재된 화성 관련 단편들을 배경의 시대순으로 묶었다고 한다. 화성인이 등장하는 초반의 단편보다는 지구인이 멸망해가는 후반의 단편이 더 마음에 들었다. 초반 단편은 화성인의 행동을 통해 1940년대 지구(즉 미국)의 풍속을 풍자하고 비판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그 시기 미국 사람들의 정서야 내가 알바 아니지 않는가. 게다가 판타지성이 강한 편이라 내 성향하고는 다소 맞지 않았다. 


지구의 여러 나라들이 서로 싸워서 지구인들도 망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핵)전쟁으로 인한 지구의 멸망 이야기야 20세기 중반 미국 대중문화에서 매우 자주 다뤄온 것이지만, 브래드버리의 단편들에는 멸망 직전 혹은 직후의 황량한 분위기를 함축적이고 시적으로, 품위있게 전달하는 솜씨가 베어있다. 인간이 아무도 없이 문명의 잔해들만 줄곧 움직이는 스산한 풍경을 그린 <부드러운 비가 내리고>는 다른 SF단편선집에서도 본 적이 있다. 




그러던 중 일 때문에 <적군파>를 읽었다. 미국의 진보운동에 동조했던 한 학자가 머나먼 일본의 진보운동이 스스로 망해가는 모습을 약간의 안타까움이 섞인, 그러나 정밀한 시선으로 그려낸 책이었다. 일본 적군파의 행적이 워낙 극적이어서 잘 읽히고 지적 자극도 있었다. 근래 프런트 페이지를 위해 읽은 책들 중 가장 좋았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2-약속된 장소에서>를 읽었다. 어디선가 70년대의 좌절한 일본 급진 운동가들이 대거 종교에 귀의했다고 들은 적이 있다. 그러므로 <적군파>와 옴진리교 관계자들을 인터뷰한 <언더그라운드2>는 의외의 지점에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1995년 도쿄에서 일어난 지하철 사린 가스 테러 사건의 피해자 증언을 수록한 전편은 이미 읽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큰 재미는 느끼지 못한 터였다. '상정 외' 사건이 일어나자 시스템이든 매뉴얼이든 아무 소용 없이 허둥대는 문명 사회의 모습은 흥미로웠지만, 비슷한 증언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지루해졌다. 그런 느낌을 가진 채로 <언더그라운드2>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웬걸. 이 책은 상당히 재밌다. 어쩌면 <1Q84>를 좀 더 하드하게 풀어놓은 식이랄까. 무라카미는 사린 가스 테러 관련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1Q84>를 떠올렸다고 한다. 


존사의 공중부양!


긴 수염과 덥수룩한 머리로 '공중부양'을 하는 교주 이시하라 쇼코, 극악무도한 범죄를 태연하게 저지르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이미지만 남은 옴진리교가 사실은 벌레 하나 쉽게 죽이지 못하는 신도들로 구성됐다는 사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사회에 염증을 느껴 방황하는 사람들을 순식간에 사로잡아버린 옴진리교의 은밀한 매력, 사린 사건 이후에도 자신이 몸담은 종교가 그런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리 없다고 믿는 신도들의 어리석은 순수함, 선의로 출발했으나 어느 지점에서 독선에 빠졌고 결과적으로 광기로 치달아간 종교 지도자의 길 등 여러 요소들이 재미있었다. 책 후반부에 실린 무라카미와 심리치료사 가와이 하야오의 대담도 유익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팬이 아니라도 읽어볼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