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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홍진의 곡성엔 무슨 일이 있었나



'곡성'의 관객이 500만명을 넘어섰다. 흥행과 평가 면에서 감독의 전작들을 앞섰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말들이 있지만, 아무튼 결과는 성공적이다. 


악(惡)은 어디에 있을까. <추격자>(2008)에선 서울 강북의 주택가 골목에 있었고, <황해>(2010)에선 중국 옌볜에 있었다. 한국 상업영화계에서 확고한 개성을 가진 감독으로 자리 잡은 나홍진은 6년 만에 내놓은 세 번째 영화 <곡성>에서 다시 악에 대해 묻는다. <곡성>의 악은 저승에서 왔다. 

이달 열리는 제69회 칸국제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곡성> 시사회가 3일 열렸다. 베일을 벗은 <곡성>은 156분의 상영시간 내내 ‘쫀득한’ 상업영화였다. 의심의 여지 없이 청소년 관람불가였던 전작들과 달리 <곡성>은 15세 관람가를 받았지만, 나홍진의 전작들을 관통했던 찜찜하고 음습한 정서는 다르지 않다. 영화를 본 뒤 “불쾌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재미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한가한 시골 마을 곡성에서 이상한 일들이 잇달아 벌어진다. 난데없는 살인, 자살, 방화가 이어지고, 이유 없이 두드러기가 난 사람들도 늘어난다. 경찰은 마을 사람들이 야생 독버섯에 집단 중독된 것으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지만, 사람들은 얼마 전 산속에 자리 잡은 외지인(구니무라 준)이 사건의 원인이라고 수군댄다. 경찰 종구(곽도원)는 목격자를 자처하는 여인(천우희)을 우연히 만나지만, 그녀는 갑자기 종적을 감춘다. 종구의 딸 효진(김환희)마저 알 수 없는 증세에 시달리자, 종구 가족은 용한 무당 일광(황정민)을 불러들인다. 종구는 외지인의 거처를 찾아나선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 영화 같기도, 타자에 대한 불합리한 적개심을 비판하는 교훈극 같기도 하던 영화는 상영시간이 흐를수록 <엑소시스트> 같은 오컬트 영화로 진행 방향을 잡는다. 상업영화로서는 부담스럽게 긴 상영시간이지만, 시계를 들여다볼 여유는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속력으로 뛰어갔던 <추격자> <황해>와 달리 <곡성>은 완급을 조절한다. 겁 많은 경찰 종구 캐릭터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대사 덕에 의외의 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있다. 그러면서도 극의 이음새가 눈에 띄지 않아 감독이 안내하는 이야기의 길을 따라가기에 무리가 없다. 

영화는 일광과 외지인이 각자 굿을 벌이는 장면에서 한 차례 폭발한다. 서로 치고받지도, 누가 다치지도 않는 장면이지만, ‘무속 액션’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강렬한 에너지가 넘친다. 숨가쁜 무속 음악이 바람을 잡으면 희생된 동물의 피가 사방에 뿌려진다. 광기와 소망이 뒤섞인 에너지가 황정민, 구니무라 준 두 배우를 통해 발산된다.

‘이야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는 점도 <곡성>의 장점이다. 최근의 한국영화는 감정을 잘 건드리는 대신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능력은 잃어버린 듯했다. 하지만 <곡성>의 후반부는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로 관객을 여지없이 붙잡는다. 


나홍진 감독은 시사회 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피해자가 어떤 이유로 피해를 입는 것일까. 단순히 가해자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게 이유일 수는 없지 않을까. 원인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범주가 현실에 국한될 수 없었습니다.” 평화롭게 살던 농촌 아낙, 순진무구한 소녀, 평범한 경찰이 고통받는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살펴도 현실에선 이유를 찾을 수 없으니, 모든 것이 초현실적인 악의 장난이라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나홍진은 그렇게 자신의 특기인 범죄 스릴러에서 오컬트 영화로 들어섰다. 

<곡성>은 누가복음의 한 대목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부활해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제자들이 의심하며 믿지 않자, 예수는 “나를 만져 보라”고 말한다. 영화 속에는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새벽닭이 울기 전에 예수를 부인한 것을 연상케 하는 대목도 있다. 가장 충직한 제자 베드로조차 스승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나홍진은 그렇게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악은 낚시를 하듯 아무나 낚아 올린다는 점을 믿고 있다. 






<곡성>이 떠들썩하다. 한국에서는 개봉 일주일만에 300만 관객을 넘어섰고,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는 턱시도 차림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갈채를 받았다. 이대로라면 나홍진 감독(42)의 전작 <추격자>(2008), <황해>(2010)의 평가와 흥행을 넘어설 기세다.

<곡성>을 만들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외지인’은 왜 하필 일본인일까. 왜 이 감독은 줄곧 피와 뼈가 튀는 영화를 만드는 걸까. 나홍진 감독을 서울에서, 그리고 18일(현지시간) 제 69회 칸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잇달아 만났다. (아래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할머니의 고향인 전남 곡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들었다. 그 아름다운 시골에서 피비린내 나는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드라마에서 신성한 캐릭터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 시골에서 기운이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곡성>은 한국적인 영화인데, 우리나라의 느낌을 주는 공간이 어디인지 생각해봤다. 어린 시절 자라면서 느낀 공간과 사람에 대한 기억을 떠올렸다. 배우도 중요하지만, 공간을 담아내는데 무척 신경을 썼다.”

-역시 궁금한 건 ‘외지인’ 캐릭터다.

“<곡성>은 종구(곽도원)가 가족을 무언가로부터 2시간 36분동안 극렬히 방어하는 영화다. 종구 가족을 공격하는 건 역동적이기보단 정적이고 심리적인 무엇이다. 정적으로 잠입한 적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건 흉기가 피부를 뚫고 뼈를 자르고 장기를 찌르는 느낌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몸에 잠입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바이러스는 잠입 직후엔 주목받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차이를 내기 시작한다. 한국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진 외국인을 찾다보니, 일본인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는 구절을 담은 누가복음을 인용하면서 영화가 시작한다.

“주인공은 심리적인 적을 극렬히 방어한다. 공성전을 생각해보자. 성문을 잠근 뒤 우군은 들여보내고 적은 막아야 한다. 대문 밖의 적을 식별할 수 없으니 의심해야 한다. 누군가는 믿고 누군가는 못믿는다. 믿음과 의심이 뒤섞인다. 이런 주제를 관통하는 은유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으며 자랐다. 영화의 주제를 표현하는 분명한 길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을 인용했다.”


-일광(황정민)과 외지인(구니무라 준)의 굿판이 영화의 중반부 절정을 이룬다.

“굿판은 정말 많이 보러 다녔다. 우리나라 굿은 물론 외국의 굿도 참조했다. 문제는 영화 속에서처럼 누군가에게 해악을 끼치는 굿을 볼 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굿이 있다해도 은밀하게 행해질테니까. 그래서 일광의 굿은 동작과 소품을 조합해서 새로 디자인했다.”

-일광의 정체는 무엇인가.

“일광의 두 차례 굿을 뜯어보면, 이 인물이 외지인과 이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속인들을 많이 만났다. 무속인들은 자기 몸에 신을 모시려고 정성을 바쳐 기도한다. 본인들이 모시길 바라는 신이 있지만, 간혹 잘못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안좋은 기운이 들어오거나 개나 뱀 같은 동물의 혼이 사람의 혼과 섞여서 들어오기도 한다. 미숙한 무속인들은 이런 것을 신이라고 믿고 하산한다. 그럴 때 사람이 조금씩 이상해진다. 본인은 못 느끼지만 주변에선 느낀다. 이런 무속인이 굿을 해도 효험이 있을 수 없고, 오히려 나쁜 결과를 만든다. 영화에서처럼 그런 신을 ‘허주’라 부른다. 일광은 외지인을 허주로 모시고 있다. 일광 본인은 모를 수도 있지만.”

-무명(천우희)의 정체는 무엇인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단, 성경에 기반한 신은 아니고 한국적인 신이라고 할 수 있다. ”

-악마를 믿는가.

“제가 성경을 믿는 사람인데, 오랜 시간 취재하다보니 그런 것도 믿게 됐다.”

-왜 자꾸 폭력에 끌리나.

“피해자는 왜 피해자가 될까. 현실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건 중대한 문제다. 이유가 없으면 존재할 수도 없으니까. 이 생각이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을 창조한 신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까지 이르렀다. 신은 선한가. 실재로 존재하기는 하는가. 그 다음에 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딱히 악에 대한 관음증이 있는 건 아니다.”

-종구의 마지막 중얼거림은 허무함의 극치다.

“애절한 느낌을 주려 했는데…. 최선을 다한 행위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의 애절함을 담고 싶었다.”

-종구가 닭이 세 번 울 때까지 참았다면, 가족이 살았을까.

“이 영화가 살려뒀겠는가. 아마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종구에겐 문제가 없다. 최선을 다했다. 관객이 종구의 마음을 위로하고 같이 곡을 하는 엔딩이 되길 바랐다.”


-현장에서 치열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 안되나.

“난 매순간이 타협이다. 감독은 스태프와 배우들이 준비해온 요소들을 관리감독하는 직업이다. 문제가 있어 프레임에 안좋은 영향을 미치면, 제 구실을 하도록 조정하는게 내 일이다. 일이 애초 디자인된 목표치에 도달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떨 때는 상상보다 훨씬 좋은 이미지가 나오고, 어떨 때는 그보다 못하다. 인간들의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목표치 이상으로 나오면 행복하겠지만, 이하로 나오면 타협해야 한다. 결국 감독은 디그레이드(품질 저하)를 얼마나 막아내는지에 관건이 달렸다. 아울러 배우들에게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사실 구니무라 준이 촬영 마지막 날 날 엄청 혼냈다. 통역하는 분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통역하지 않을 정도였다.(웃음)”

-다소 복잡했던 <황해>보다는 명쾌한 영화다.

“이야기는 모호하지만 플롯은 무조건 재미있게 해야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조금 더 진지하게 풀었다면 감당할 관객이 없었을 것이다.”

-만드는 영화가 모두 칸영화제에 진출했다. 다만 경쟁이 아니라 비경쟁 혹은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이다.

예술영화는 투자받기 어렵다. 난 예술영화에 투자할만큼 어마어마한 재력이 있는 사람을 알지 못한다. 경쟁부문에 가고는 싶다. 하지만 깜냥이 안된다. 박찬욱 감독은 두 가지(예술성과 대중성)를 다 잡으니까 대단한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