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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현실적인 말의 질주, <카발리아>




오랜만에 가족이 함께 공연을 보았다. 아니 셋이 같이 본 것은 처음인가? 어린이용 공연은 둘 중 하나만 들어갔으니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130분에 달하는 공연이라 아이가 지겨워할지 몰라 걱정을 했지만 기우였다. 어린이 관객이 많았고 대체로 즐겁게 관람하는 분위기였다.  




중세 배경의 판타지 영화에서 본 듯한 말들이 눈 앞에서 질주하는 모습은 초현실적이었다. 수십 개의 말 발굽이 만드는 가설 좌석의 진동은 이 쇼가 현실임을 일깨워주었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내 화이트빅탑씨어터에서 공연중인 <카발리아>는 ‘태양의 서커스’ 공동설립자 중 한 명인 노먼 라투렐이 연출한 아트 서커스다. <카발리아>는 2003년 캐나다에서 첫 공연된 이후, 미국, 독일, 호주, 싱가포르 등의 52개 도시를 순회하며 선보이는 중이다. 


아랍종, 오스트레일리안 목축마, 루시타노 등 갖가지 종류의 말 50여마리가 출연한다. 33명의 곡예사들은 말과 함께 할 수 있는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말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거나 열을 지어 서게 하거나 인사하게 한다. 말 등에 서고 재주 넘고 매달린다. 장애물을 넘거나 경주를 하기도 한다. 




<카말리아>의 한 장면. 카발리아 제공


말과 사람이 한 몸처럼 어울린 공연을 보고 있으면,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말을 이용해 싸우고 소식을 전하고 생계를 꾸려왔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다. 현대에 접어들어 등장한 각종 기계 장치 때문에 이제 말은 경마장이나 관광지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지만, 수천 년간 인간의 손길을 타왔던 말들은 여전히 그 날렵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곡예사들은 그 기억을 되살려 현대의 관객이 받아들이기 좋은 방식으로 가공했다. 


공연에 출연한 말들의 평균 나이는 12세다. 공연 초기 출연했던 말들은 대부분 은퇴하고, 다음 세대의 말들이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서양에서는 유니콘, 켄타우로스 같이 말을 닮은 상상의 존재들이 많다. 말들의 섬세하면서도 튼튼한 근육, 아름답게 늘어진 갈기와 꼬리를 보고 있자니, 서양 사람들이 말을 두고 그려낸 상상의 근거를 이해할 수 있었다. 




<카발리아>의 한 장면. 카발리아 제공




인간도 제 역할을 한다. 기니 출신 흑인 곡예사들의 잘 빚어진 근육, 서커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중곡예도 볼만했다. <벤허>의 전차 경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두 마리의 말 등에 한 발씩을 얹은 채 경주를 벌이는 장면은 긴박감이 넘쳤다. 상대를 앞지르기 위해 코너 안쪽을 재빠르면서도 위험하게 파고드는 모습은 관객의 탄성을 불렀다. 


그러나 역시 <카발리아>의 주인공은 말이다. 안장을 얹지 않은 말들이 무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달려가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어봐야 2초일 것이다. 그런데 자꾸만 그 짧은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카발리아>의 한 장면. 카발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