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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거래>의 광화문

지난해 하반기엔 서울의 특정 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잇따라 나왔다. 검찰, 경찰, 스폰서, 언론 사이의 ‘부적절한 관계’를 그린 <부당거래>에는 광화문의 풍경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광화문 어디쯤에서 공사 중인 건물 옥상에 올라 추악한 거래를 성사시킨다. 몇몇 보수 언론사의 간판이 멀리 배경으로 잡힌다.

강동원·고수 주연의 <초능력자>는 세운상가가 주요 배경이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과 외로움에 시달린 초능력자는 눈빛만으로 사람을 조종해 작고 외진 전당포를 턴다. 조종당한 사람들은 마치 영혼이 없는 좀비처럼 비틀거린다.

<초능력자>의 세운상가. 강동원은 극중 이름이 없이 그저 '초인'으로만 불린다.

<카페 느와르>에는 청계천이 나온다. 사랑을 잃고 자살을 기도한 주인공은 기나긴 청계천을 유령처럼 떠돈다. 컬러였던 스크린은 흑백으로 바뀌고, 주인공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다. 그는 살아 있지만 죽은 사람이다.

이처럼 최근 영화 속에 담긴 서울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이미지의 공간이었다. 이곳에는 불길한 욕망이 이글거리고,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고, 살아 있는 사람도 외로움에 지쳐 있었다.

<카페 느와르>의 청계천

이토록 암울한 서울의 풍경은 포악한 식인괴물이 출현한 <괴물>, 끔찍한 연쇄살인마가 활보하는 <추격자>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영화가 어두운 스릴러 일색이었던 것은 아니다. 흥행에 성공한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나 <김종욱 찾기> <쩨쩨한 로맨스> 등 밝은 멜로와 로맨틱 코미디도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영화들은 대체로 실내에서 촬영됐다. 배경이 서울이라 하더라도, 광화문이나 청계천같이 서울임을 명확히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이 없었다.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가 주연한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젊은 남녀가 하룻밤 사이 비엔나의 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랑을 나누는 영화다. 이 영화에는 이렇다할 관광명소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두 남녀가 함께한 이름 모를 뒷골목, 카페, 묘지 곳곳엔 이국의 영화관객을 사로잡을 만한 진심과 낭만이 배어 있었다.

왜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서울 거리에서 <비포 선라이즈> 같은 멜로 영화를 찍지않는 걸까. 질문을 던졌지만 답은 이미 짐작할 수 있다.

지금 서울은 황폐하다. 약자들은 한겨울에 거리로 쫓겨나거나 단칸방에서 죽고, 악다구니 쓰는 자들, 낯 두꺼운 자들만 간신히 살아남는다. 사랑의 불모지가 된 서울은 영화감독들의 낭만을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 서울이 사랑을 허한다면, 영화는 기꺼이 그 사랑을 담아낼 것이다.

다들 아는 <괴물>의 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