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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 윤성현 vs 조성희

윤성현(왼쪽)과 조성희. 권호욱 기자


1990년대 한국영화의 산업적, 미학적 중흥기가 박찬욱·봉준호을 배출했다면, 2000년대 한국영화는 누가 책임을 질까. 젊은 감독들이 백가쟁명하고 있지만 뚜렷한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앞으로 윤성현(29)과 조성희(32)란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겠다. 이들은 3월 개봉한 <파수꾼>과 <짐승의 끝>의 연출자이며, 2009년 졸업한 한국영화아카데미 25기 연출전공 동기다. <파수꾼>은 개봉한 지 한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독립영화 흥행의 기준점인 1만명 관객을 넘어섰고, 봉준호 감독으로부터 “세밀하고 날카로운 연출력”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짐승의 끝>은 최근 독일에 수출됐고,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이보다 더 잘 만든 영화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는 극찬을 받았다. 조 감독의 전작인 단편 <남매의 집>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7년 만에 대상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영화아카데미 장편영화 제작연구과정의 일환으로 제작된 <파수꾼>과 <짐승의 끝>의 제작비는 5000만원 안팎. 배우와 스태프들의 희생이 뒷받침됐다고는 하지만, 역시 영화는 돈이 아니라 상상력의 산물임을 두 영화는 입증한다.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인 두 감독을 만났다.

<파수꾼>의 무시무시한 교실.

- 서로의 작품에 대해 평가한다면.

“<파수꾼>을 보고 굉장히 충격받았다. 보면서 ‘다음에 내가 써먹어야지’ 하는 부분도 있었다.(웃음) 제작 사정을 뻔히 아는데 그 집념이 보였다. ‘얼굴에 철판 깔고 못되게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웃음)”(조성희)

“성희형한테 장난 많이 치고 괴롭히지만 시실 굉장한 리스펙트(존경)를 갖고 있다. 둘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누가 잘되든 (잘되는 쪽에) 묻어가자’고. 솔직히 말하자면 <남매의 집>이나 <짐승의 끝>은 성희형이 가진 반의 반도 못보여줬다. 아직은 그의 예고편이다. 언젠가 믿을 수 없는 작품을 내놓을 것이란 확신이 있다.”(윤성현)

- 첫 장편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5000만원으로 찍으면 배우, 스태프에게 돌아가는 게 거의 없다. 물질이 다는 아니지만 중요한 것 아닌가. 돈도 못받고 일하는 사람들을 지치게 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좋은 작품 만들기 위해선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사람을 더 힘들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케이’ 하면 다들 행복해지는데 그렇게 하면 좋은 작품은 만들 수 없다.”(윤성현)

“43분짜리 단편을 찍어봤으니 그 두 배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일은 10배였다. 호흡이나 체력 조절 같은 부분이 어려웠다.”(조성희)

윤 감독은 무엇이든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고 한다. 만드는 것이 사진, 그림, 문학일 수도 있지만, 그에겐 영화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19살 때부터 한겨레영화학교를 다녔고 대학에서도 영화를 전공했다. 조 감독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컴퓨터그래픽 회사에 들어갔다. 매일 모니터만 보다 어느날 친구들과 단편영화를 찍어봤는데, “햇빛, 바람 맞으면서 일하니 살아있는 것 같아서” 이후로 영화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 영화를 하면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언제인가.

“구상할 때만 즐겁다. 나머지는 다 고생이다.”(조성희)

“작업을 시작하면 자기 에너지를 다 쏟는다. 한번에 불사르고 죽는 거다. 그걸 즐겁다고 표현하긴 힘들다. 살아있다는 생각은 하겠지만.”(윤성현)

두 감독은 이미 유력 상업영화사와 차기작 준비에 들어갔다. 조 감독은 SF를 준비 중이고, 윤 감독은 “입체적인 남자 캐릭터가 등장해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했다.

- 많은 관객에게 영화를 보여주겠다는 욕망이 있나.

“있다. 한국의 창작자나 관람자에겐 ‘귀족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어머니께 <남매의 집>을 보여드렸더니 조셨다. 가족들이 좋아할 영화를 만들고 싶다.”(조성희)

“관객 없이 영화는 없다. 혼자 할 거면 영화 안한다. 민폐는 민폐대로 끼치면서 나 혼자 즐겁자는 감독은 기본이 안된 거다. 난 <과속스캔들>을 재미있게 봤고, 강형철 감독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그런 스타일의 영화를 만드는 게 옳은지는 고민이다.”(윤성현)

한국영화계의 ‘앙팡 테리블’은 ‘테리블’하지 않았다. 이들은 건방지기보다는 겸손했고, 떠들썩하기보다는 조용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나니 뒤늦게 한마디가 기억났다. “기존에 한국에서 보여지지 않은 영화를 만들 겁니다. 우리 기수는 전설이 되고 싶습니다.”(윤성현)

<짐승의 끝>의 그녀와 그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