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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티븐 킹의 <죽음의 무도>

스티븐 킹은 소설도 재밌지만, <유혹하는 글쓰기>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있다"는 유명한 말이 나온다. <죽음의 무도>도 읽어볼만 하다. 물론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책읽기의 즐거움이 배가된다. 타사에 나온 리뷰를 보니 '번역이 거칠다'는 평도 있던데, 킹 특유의 미국식 유머와 구어체가 섞여 있어서 번역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 부분을 죽이면 정갈하고 읽기 좋겠지만, 번역자는 원본의 느낌을 살리는 쪽을 선택한 것 같다.

 

먼저 퀴즈. 다이아몬드부터 쓰레기까지, 온갖 종류의 공포영화를 봤으며 스스로도 무시무시한 공포를 창조해내는 작가 스티븐 킹이 두려움에 떨다가 관람을 포기한 영화가 단 한 편 있다. 킹은 이 영화를 같이 보던 아들에게 “저 빌어먹을 영화를 꺼!”라고 소리질렀다고 한다. 정답은 글의 결말부에.

대중 소설을 경원시하는 독자도 스티븐 킹은 알 것 같다. 공포, 서스펜스, 판타지 등 장르를 아우르는 킹의 책은 전세계적으로 5억부 이상이 판매됐다. 2010년 현재 <캐리>, <쇼생크 탈출>, <샤이닝>, <스탠드> 등 49권의 책을 냈다. 이 중 상당수가 영화화돼 젊은 관객에게도 친숙하다.

<죽음의 무도>는 킹의 첫번째 논픽션이다. 1981년 처음 독자와 만났으며, 30여쪽의 머리말을 붙여 올해 개정판이 나왔다. 문학,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등 다양한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공포물에 대한 소개, 그것이 유통되는 이유, 즐기는 사람들의 심리를 다뤘다. 즉 공포에 대한 문화비평, 창작론, 작품평, 짧은 자서전이다. 킹의 필체는 입담이 좋은 나머지 때로 수다스럽고 때로 구성진 욕도 내뱉는 아저씨같다. 물론 언급되는 텍스트들이 대개 미국 대중문화권에 속한 것들이라, 개별 작품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지 않다면 읽는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래도 킹의 비평은 차가운 평론가가 아니라 뜨거운 애호가의 자세를 닮아서, 재치 넘치는 표현을 읽으면 해당 작품을 찾아 보고 싶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조차 액션 영화로 탈바꿈시킬 수 있을 것 같은 대중성 만점의 레니 할린 감독”(딥 블루 씨), “영화 결말이 당신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인생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미스트), “뻥이야! 그냥 장난삼아 넣어 봤어!”(처키의 신부).


킹을 비롯한 공포 소설가들이 기자, 비평가, 정치인, 대중에게 종종 듣는 질문은 이런거다. “사람들의 가장 끔찍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은 어떻게 해명하실 거죠?” 사실 어떤 이들에게 공포물은 모두 쓰레기다. 청소년이 무언가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 그의 방에서 경찰이 가장 먼저 찾아내고 언론에 알리는 것은 악마를 숭배하는 록음악, 공포영화, 괴기소설 등이다.


킹은 어린 시절부터 공포물을 좋아했고, 이후 공포물을 창작해 막대한 부를 쌓았다. 그러므로 킹은 위의 질문에 대해 그럴듯한 답변을 준비해뒀다. “공포가 우리에게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상징적인 방식으로 우리가 말하기 두려워할 만한 것들을 바로 직설적으로 말하고, 계속 짖어 대기 때문이다. 공포는 사회가 우리에게 억제하라고 부단히 요구하는 감정들을 운동시킬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또 “우리가 괴물스러움이라는 개념을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 열망하는 질서의 재확인이기 때문”이라는 것. 디오니서스적 무질서가 얼마나 끔찍한지 보여줌으로써 아폴로적 질서의 소중함을 깨우치게 하는 공포물은 매우 보수적이며, 공포 작가는 규범의 대리인이라는 것이다. 공포물은 ‘유사 죽음’을 체험케하는 스릴 만점의 롤러코스터다.



공포는 때로 당대의 사회상과 연결된다. 킹은 자신이 겪은 1957년 10월 오후의 공포를 들려준다. 갓 10살이 된 킹은 극장에서 폭력적인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는 내용의 <지구 대 비행접시>를 보고 있었다. 비행접시들이 미국 수도를 공격하려는 찰나 영사기가 멈췄다. 관객이 웅성대자 곧이어 무대에 오른 극장 매니저가 말했다. “러시아인들이 우주 위성을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렸습니다. 그들은 그것을…스푸우트니크라고 부릅니다.”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원인 모를 공포에 휩싸여있던 당대 사회는 ‘공포의 씨앗’이 자랄 수 있는 ‘비옥한 토지’였다.

그러나 킹은 ‘잘 만든 공포는 우리가 우리 자신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고 믿었던 마음 속 방의 비밀문을 찾아낸다’고 말한다. 공포는 좀 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작동한다는 뜻이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 상상하는 눈을 가졌지만, 논리와 합리에 길들여져가는 어른들은 눈 속에서 무언가를 잃어간다. 공포 작가는 한쪽으로 편중된 마음의 벽을 잠시 동안 부순다.


“우리는 자궁에서 무덤으로, 하나의 암흑에서 또 하나의 암흑을 향하여 추락하면서, 이전의 암흑에 관하여 거의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앞으로 닥칠 암흑에 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이렇듯 단순하면서도 실체가 보이지 않는 불가사의들 사이에 끼어있는데도 우리가 제정신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룩하다고 할 만한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한 퀴즈의 정답은 <블레어 위치>다. 킹은 영화가 끝나고 제작진 명단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겁에 질린 10살짜리 어린아이로 퇴행했던”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했다고 한다. 조재형 옮김.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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