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에어'에 해당되는 글 2건

  1. 제인 에어 vs 제인 오스틴 (5)
  2. 왜 이 여자를 사랑하는가-<제인 에어>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는 진취적이고 굳센 의지를 가진 여성상, 적당히 음산하고 기괴한 고딕 분위기, 소설 중반 이후까지 지속되는 미스테리, 무엇보다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는 낭만성 덕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여성 독자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책이며, 여태껏 22번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막상 이 소설을 읽어보면 현대 독자가 받아들이기엔 터무니없는 설정들이 있다. 브론테가 태어난 이듬해 죽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는 그런 황당한 설정이 전혀 없다는 점, 현대의 독자를 빨아들이고 현대의 작가를 반성하게 할만큼 합리적이라는 점, 그런 점이야말로 브론테의 '무리수'를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다.

예를 들어 이런 것. 로체스터가 "끔찍하리만치 못생긴" 집시 노파로 변장해 제인을 비롯한 여성들에게 점을 쳐주겠다며 접근하는 대목. 로체스터는 점을 쳐주면서 자신에 대한 제인의 속마음을 떠본다. 멀쩡한 부잣집 남자가 집시 할머니로 분장해 목소리까지 바꾸는데, 하루 전까지 그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전혀 못알아본다는 설정하며, 황당하게 속마음을 들킨 제인이 별 화를 내지도 않는다는 것하며, 이상하기 짝이 없다. 

또하나의 문제는 종반부 제인이 세인트 존의 열정 혹은 독선 혹은 광신에 거의 넘어가 그와 결혼해 인도로 선교 활동을 가기로 결정하는 순간, 자신을 부르는 로체스터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다는 설정. 그건 마음의 목소리도 아니고, 실제 제인이 그 목소리를 들은 것으로 나오는데, 제인은 그 순간 "어디 계세요"라고 외쳤고, 실제 마차로 며칠 거리에 떨어져있던 눈먼 로체스터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제인의 이름을 불렀고, 제인의 답도 들었다는 설정. 낭만주의 로맨스 소설이 순긴간에 텔레파시의 존재를 증명하는 SF로 장르를 바꾸는 대목이다. 

게다가 제인의 행동에도 못마땅한 구석이 있다. 제인은 주제넘게도 별로 친하지도 않은 세인트 존에게 인근의 상냥하고 아리따운 아가씨인 로저먼드와의 결혼을 대뜸 제안한다. 둘이 서로 좋아하고 있다고 확신하며, 잘 어울리겠다는 감에 의지한 발언이긴 하지만, 그래도 술자리에서 이상한 분위기로 몰아간 뒤 장난으로 "결혼해! 결혼해!" 외치는 것도 아닌 마당에 무슨 오지랖인가.

얼마전 본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제인 에어>는 이런 황당한 대목들을 잘 정리해(삭제해) 각색했던데, 누가 이 대목들만 이어붙여 기발한 패러디물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아무튼 결론은 제인 에어가 아니라 제인 오스틴의 승리!


제인 에어 역의 미아 와시코브스카. 발음하기에 익숙해져야 할 이름.

제인 에어를 사랑하시겠습니까.


가진 돈이 없습니다. 고아입니다. 양육을 맡은 외숙모는 그녀의 성격이 “엉큼하고 반항적”이라고 평합니다. 학교 이사장은 “불길과 유황이 타고 있는 구렁 속”에 떨어질 거짓말쟁이라고 말합니다. 외모도 평범합니다. 심지어 그녀의 연인과 친구들조차 그녀의 외모에서 아무런 매력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그래도 관객은 제인 에어가 계속 보고 싶은가봅니다. 20일 개봉한 <제인 에어>는 샬럿 브론테 원작의 22번째 영화입니다.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 역을 맡았던 미아 와시코브스카가 제인 에어, 마이클 파스밴더가 로체스터 역을 맡았습니다. 신예 캐리 후쿠나가 감독이 연출했습니다.


영화는 에어가 문을 힘껏 열고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어둡고 답답한 집 안에서 밝고 넓은 바깥으로, 에어는 달려갑니다. 무엇엔가 쫓기듯 숨차게 달려가던 에어는 조그마한 집 앞에서 쓰러지듯 몸을 기댑니다. 선한 이웃이 이 익명의 방랑자를 도와줍니다. 원작을 읽은 관객이라면 이 장면이 어느 대목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로체스터와의 결혼에 실패한 에어가 상처와 추억을 동시에 준 손필드 저택을 나가 새 삶을 시작하려는 부분입니다.


로체스터와 제인의 즐거웠던 한 때

<제인 에어>가 처음 출간된 것은 1847년,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아버지, 남편, 친구의 도움 없이 여자 혼자 삶을 살아나가기란 지독히 어려웠을 겁니다. 영화판 <제인 에어>가 소설 중·후반부에 놓인 이 장면을 도입부로 설정한 건, 에어의 굳센 성격과 홀로 서기가 160여년간 사랑받은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일겁니다.


남녀 주인공의 모습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이 로맨스 소설의 경향일진데, <제인 에어>처럼 두 주인공이 못생겼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는 소설도 드물 겁니다. 로체스터를 두고서는 대놓고 ‘추남’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물론 영화에선 그럴듯한 외모의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그래도 여느 영화에 비해선 평범한 편입니다.


내세울 것 하나 없어도 에어는 굴하지 않습니다. 없는 재산이나 외모를 아쉬워하지도, 남자의 사랑을 갈구하지도 않습니다. 터무니 없는 자신감에 넘치거나 체념이 빨라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에어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에어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그녀를 사랑할 자격이 있습니다. 이성을 사귈 때 ‘이상형’이라는 걸 묻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상형은 현실에 없기 때문에 이상형입니다. 사랑은 연역이 아니라 귀납이며,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시작합니다. 로체스터는 왜 에어를 사랑합니까. 원작을 아무리 읽어봐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에어를 이루는 모든 구성요소가 로체스터를 총체적으로 매혹시켰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겁니다. 매혹의 임계점을 넘으면 사소한 결점들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출발하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기. <제인 에어>의 계속된 리메이크는 대중이 이것을 얼마나 원하며 또 역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줍니다.

안개 속의 제인 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