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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권택, 오우삼, 호금전, 이소룡, 그리고 정창화

정창회 회고전 개막식에서 본 <죽음의 다섯 손가락>은 대단했다. 줄거리가 헐겁게 느껴지긴 했지만, 액션 장면의 역동성만은 엄청났다. <킬 빌>에서 따온 그 기괴한 음악하며, 주인공이 철장을 쓸 때 손바닥을 벌겋게 비춰주는 것 하며, 눈알을 뽑아 버리는 것 하며, 악당이 땅바닥에 내팽겨쳐질 때마다 먼지가 털썩 일어나는 걸 잡은 촬영하며... <킬 빌> 사운드 트랙을 리핑한 뒤 스마트폰에 담아놓고 벨소리로 저장해두었다. 
 

                                                                            젊은 시절의 정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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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82). 한국의 젊은 영화팬들에겐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1950~70년대 그의 활약상을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60년대말부터 아시아의 영화 중심지 홍콩에서 활동한 ‘글로벌’ 감독이었다. 임권택과 오우삼의 스승이었고, 전설적인 무협 명장 호금전(胡金銓)의 친구였으며, 쿠엔틴 타란티노가 <킬 빌>로 오마주(경배)한 대상이었다. 비슷비슷한 영화를 찍다 슬럼프에 빠진 이소룡은 정창화를 찾아가 새로운 느낌의 차기작을 의논했다. 그러나 신작의 촬영이 들어가기 전에 이소룡은 불귀의 객이 됐다.


정창화가 홍콩 영화사 쇼브라더스의 전속 감독이던 시절 연출한 <천면마녀>(1969)와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은 각각 유럽과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된 홍콩 영화로 기록됐다. 그러나 10년간의 홍콩 생활을 접고 귀국한 70년대 후반부터 그는 연출을 하지 않았다. 제작자로서 29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크게 성공한 작품은 없었다. 10분, 20분씩 뭉텅이로 필름을 잘라내던 검열 당국과도 마찰이 잦았다. “정치꾼과 장사꾼의 야합”에 지친 그는 90년대 들어 미국으로 떠나 은거했다. 그리고 조금씩 잊혀졌다.


서울 상암동 영상자료원에서는 ‘정창화 감독 회고전’이 열렸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을 비롯해 <황혼의 검객>, <사르빈 강에 노을이 진다> 등 그의 대표작 12편이 상영됐다. 이번 행사를 위해 귀국한 정 감독을 16일 만났다. 전날 열린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그는 오랜만에 만난 영화인들과 대취했다고 한다. 전설의 명장은 사람, 술, 영화가 그리웠던 것 같다.


 


 

그는 화려했던 홍콩 시절부터 돌이켰다. 1953년 <유혹의 거리>로 데뷔한 그는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한 멜로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던 한국 영화계에 속도감, 박진감 있는 액션 영화로 이름을 날렸다. 60년대 후반 홍콩 영화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감독 기근에 시달리던 쇼브라더스의 란란쇼 사장은 외인 부대를 모으기 시작했고, 그의 눈에 정창화가 들어왔다. 정창화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홍콩에 도착하자마자 하루에 3시간만 자면서 쇼브라더스 소속 50여명 감독들의 영화를 다 봤다”고 말했다. 첫 작품 <천면마녀>를 내놓자 란란쇼는 계약서를 새로 쓰자고 제안했다. 다른 곳에 빼앗기기 싫으니 톱클래스로 돈을 올려주겠다는 것이었다. 정 감독은 명성은 물론 개인 요트를 소유할 정도의 부를 누렸다.

정창화는 “어른들의 꿈을 판타지로 그리고 싶었다”고 돌이켰다. 무협영화를 만들면서도 “무용하듯이 치고받기만 하는” 홍콩 감독과 달리 이야기와 정서를 세밀하게 그렸다. 제작 시스템에 있어서도 선구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콘티(콘티뉴어티·장면 연결을 위한 스케치)를 철저히 만든 것이 대표적이다. 이전까지 콘티는 시나리오 옆에 간단한 메모로 남겨지거나, 그도 아니면 감독의 머리 속에만 있었다. 정창화는 장면의 구성은 물론, 음악이나 효과음까지 철저하게 적어 콘티로 남겼다. 그는 “감독이 콘티를 공개 안하니 조감독은 눈을 감고 영화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콘티를 공개해 조감독들이 영화를 빨리 배우고 현장의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했다”고 말했다.


<죽음의 다섯 손가락> 포스터

회고전 개막식에 참석한 김수용 감독은 “정창화가 홍콩에 가지 않았으면, 이만희가 술만 덜 마셨으면(그래서 요절하지 않았으면) 한국 영화사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도 “한창 무르익고 인생을 알 50대 초반 이후 연출을 하지 않아서 아쉬움이 많다”고 돌이켰다. 그는 또 “다시 태어나도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변화가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를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이 영화감독의 매력이라고 했다.

정 감독은 나이를 믿을 수 없을만큼 젊어보였다. 그는 “나이 먹은 사람하고는 접촉을 안한다. 내가 늙는 것 같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하고만 만나 대화하는데, 그래서 내가 정말 젊은 사람인줄 착각할 때가 있다”며 웃었다. 



 

정창화 감독/김영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