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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군인의 삶을 통해 본 세계사, <군인>






이번 주 책은 재미있었다. 리뷰 말미에도 썼지만, 특정 입장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독자가 자연스럽게 어떤 느낌을 갖도록 한다. 동서고금의 방대한 군인, 전쟁의 사례를 읽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6장 '어떤 꼴로 죽었을까'는 판소리 '적벽가'의 죽음 대목처럼 해학적이면서도 처절하다. 그러고보니 전사를 '꼴'로 표현한 것 자체가 해학적이군. 저자 역시 참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군인

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열린책들/584쪽/2만5000원



로버트 하인라인의 SF <스타십 트루퍼스> 속 세상 사람들은 시민과 민간인으로 나뉜다. 시민은 참정권을 갖고, 민간인은 갖지 못한다.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군대에 다녀와야 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마찬가지다. 이곳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든 적이 있는 사람, 즉 군인만이 나라를 움직일 권리를 갖는 세상이다.


현대 사회에서 군인은 하나의 직업이며, 그다지 인기 있는 직종이라고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지난 3000년간 군인은 의사, 변호사, 경영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이 쓴 <군인>은 군인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를 살핀다. 아울러 앞으로도 오늘날과 같은 의미의 군인이 존재할 것인지 묻는다. 방대한 사례를 통해 “세계사의 큰 동력이자 공포와 경탄, 경악의 대상”인 군인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탐구한다.


루소는 인간이 원래 평화로운 존재였다고 봤지만, 저자는 인간이 싸움, 살인, 전쟁을 즐기는 잔인한 존재라고 전제한다. 동족을 사냥하는 생물은 인간과 쥐 뿐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1945년까지 인간은 다른 민족, 인종, 종족을 자신과 같은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타문화를 경멸하고, 타종족을 학살하고, 심지어 먹는 행위는 오랜 시간 자연스러웠다.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저격수 훈련을 받은 한 독일 군인은 “목표 인물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는 순간 그것은 내게 사람이 아니라 임무의 대상일 뿐”이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인간 사냥’은 수천년 전부터 존재했기에, ‘전쟁’이란 근대에 들어 이를 국제법적으로 규정한 어휘에 불과하다. 군안도 마찬가지다. 용병, 해적, 유격대원과 군인을 구분하는 선은 모호하다. ‘해적’ 프랜시스 드레이크는 엘리자베스 1세로부터 ‘나포 허가증’이란 이름의 종이 한 장을 받는 순간, ‘군인’이 됐다. 스페인 선박을 노략질하는 행위는 똑같았는데도 말이다.


군인들이 전쟁에 나간 이유는 가지가지다. 성경은 40년간 황야를 방랑한 끝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이르러 신의 이름으로 그곳 사람들을 처단하고 땅을 차지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술한다. 1차 대전을 앞두고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는 ‘조국의 거룩한 땅’을 위해 ‘성스러운 전쟁’을 치르자는 외침이 횡행했다. 때론 특정 인물이 군인의 참전 의지를 북돋웠다. 대표적 인물은 나폴레옹이었다. 폐위된 나폴레옹은 엘바섬에 유배됐다가 탈출해 프랑스 본토에 상륙했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달려온 군인들에게 “병사들이여, 내가 너희 황제다”라고 소리쳤고, 군인들은 마법에 걸린 듯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때론 순전히 ‘진기하고 자극적인 체험’을 위해 전쟁에 나서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작가 로베르트 무질은 참전 경험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 밤들…금박으로 찍어 낸 것 같은 커다란 별들이 총총하고, 초승달은 그 밤 한가운데에 등을 대고 누워 황홀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 안전이 보장된 삶에서는 어떤 것도 이렇게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전쟁에 나간다 해도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싸운 사람은 극소수였다. 근대 들어 징병제가 도입됨에 따라,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전쟁에 끌려나가야 했다. 지휘부는 적에 맞서는 전략을 짜기 이전에, 아군을 싸움터에 나서도록 다그치는 방법을 강구했다. 어수룩한 신병들은 혹독한 훈련, 인격 모독, 구타를 통해 지옥같은 실전을 미리 체험했다. “군인은 항상 적보다 아군의 대원수를 더 무서워해야 한다”는 것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내려온 군사 교훈이다. 군인들은 후퇴하면 받을 처벌이 두려워 전진해 싸웠다. 


그렇게 나가 싸운 군인들은 상상을 초월한 다양한 모습으로 죽어나갔다. 사실 대부분의 전쟁에서 군인들은 적이 아니라 전염병, 벌레, 설사, 오물과 싸우다 죽었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다 해도 마찬가지다. 2012년 뉴욕타임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사한 군인이 한 명이라면 고향에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은 25명이었다”고 보도했다. 저자는 말한다. “전몰장병 기념비? 이것들은 모두 가짜다. (…) 모든 전쟁의 군인들은 비참하고 쓸쓸하게, 울부짖고 헛소리를 지르며 죽어 갔다.”


이제 전통적인 군인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폭격기 조종사는 무인전투기로, 육군은 전투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다. 지금도 용병, 게릴라, 자살 테러범이 군인을 대신하고 있으며, 한편에선 피 한 방울 없는 사이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군인 시대의 종말’이 ‘전쟁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저자는 전쟁과 군인에 대해 특별한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다만 인류사를 관통하며 다양한 사례를 항목에 맞게 제시할 뿐이다. 그러나 이 박식한 이야기들을 듣고 있으면 인류는 어리석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냉소와 우울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