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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잉마르 베리만과 1년간의 특별전

안락한 영화관 의자에 파묻혀 길고 길고 길고 느리고 느리고 느린 영화를 보고 싶은 변태같은 욕망이 들 때가 있다. 90년대의 영화팬들은 모두 '잉그마르 베르히만'이라고 불렀던 감독에 대한 이야기.

 

그 유명한 <제7의 봉인>의 한 장면. 많은 영화에서 패러디됐다.


베리만은 데뷔작 <위기>(1946)부터 마지막 작품 <화니와 알렉산더>(1982)에 이르기까지 40여편의 극장용 영화, 20여편의 텔레비전용 영화, 여러 편의 연극을 연출한 다산의 예술가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칸국제영화제 등에서 수상했다. 20세기 ‘예술영화’를 대표하는 이름이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인’으로도 꼽힌다.


미국의 명감독 우디 앨런은 베리만의 열렬한 추종자 중 한 명이다. 그는 2007년 베리만의 타계를 즈음해 뉴욕타임스에 ‘The man who asked hard questions‘(심오한 질문을 했던 사람)라는 제목의 추도문을 기고했다. 앨런은 이 글에서 “난 그에게서 주어진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성공과 실패가 번갈아오는 세상에 굴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영화감독이라는 호사스러운 자리를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는, 다만 영화를 만들고 또 만들어야 한다는 점을 배웠다”고 썼다. (참조 http://www.nytimes.com/2007/08/12/movies/12alle.html)


이번 특별전은 예술영화를 주로 수입·배급해온 영화사 백두대간이 기획한 ‘명불허전: 우리 시대 최고의 명감독’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 프로젝트는 “국내 예술영화 관람 문화와 지형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자 야심차게 기획”됐으며 “점차 저변이 취약해지고 있는 예술영화 문화에 든든한 토양을 마련하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마련됐다. 다음 특별전에선 독일의 빔 벤더스를 조명할 예정이다.

<페르소나>


성공할 수 있을까. 백두대간의 인식대로, 한국의 예술영화 관람 문화는 날로 척박해지고 있다. 길고 난해한 영화의 대명사와도 같은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3만명 관객을 모으고, 동숭씨네마텍, 씨네큐브, 코아아트홀 등 예술영화 극장이 젊은 관객으로 북적거리던 것은 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러나 부가판권 시장이 붕괴되고 젊은 관객이 새롭게 유입되지 않으면서 예술영화관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주자인 자장커의 <24시티>(2009년 개봉)는 2137명,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엉클 분미>(2010년 개봉)는 6487명이 관람했다. 2006년 이후 종로 씨네코아, 명동 CQN, 압구정 스폰지하우스 등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한선희 백두대간 시네마테크 사업팀장은 “지금 한국의 고전 예술영화 관람 문화는 90년대 중반 예술영화 붐 이후 형성된 패턴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며 “나이 들어가는 시네필은 물론 새로운 세대의 눈길을 끌 기획과 관람 환경을 만들려는 노력이 부재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예술영화 관객이 감소하고 있는 프랑스는 젊은 관객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어린이용 영화로 인증받은 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을 예술영화관으로 분류한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예술영화관 개념을 탈피해 갤러리, 공연장과 결합한다거나, 건축, 미술 등 인접 예술 장르와 교류하는 기획전이 하나 둘씩 열리고 있다.


한 팀장은 “‘문학은 죽었다’고 탄식하지만 교양으로서의 문학에 대한 수요가 사라지지 않았듯, 고전 예술영화 관객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소비 양식이 바뀌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라며 “기획을 통해 고전 예술영화의 가치를 제대로 교육하고 인식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한다면 예술영화의 세대 전승은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특별전의 베리만 전시회를 기획한 디자이너 안데르스 라베니우스는 “베리만이 던진 질문은 모든 인간의 경험, 본질과 관련돼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고 보편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