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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

존 카치오포, 윌리엄 패트릭 지음·이원기 옮김/민음사/400쪽/2만2000원


영화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척(톰 행크스)은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던 국제 택배회사의 직원이다. 해외출장중 비행기 사고를 당한 그는 무인도에 표류한다. 다행히도 비행기에 싣고 가던 화물들이 무인도의 해안으로 떠밀려왔다. 척은 이 화물들을 이용해 무인도에서의 생존법을 익혀나간다. 


그런데 수많은 화물 중에서도 척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평범한 배구공 하나였다. 척은 제조사의 이름을 따 배구공에게 윌슨이라는 이름을 붙인 뒤 친구로 삼는다. 자신의 손에서 흐른 피로 배구공 표면에 눈, 코, 입을 그리고, 마른 풀잎 같은 것을 머리카락처럼 꽂아놓는다. 


척은 윌슨이라는 ‘친구’ 덕에 절망적인 무인도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 폭풍우 치는 밤에도, 몸이 부서질 듯 아픈 날에도 윌슨은 묵묵히 척을 지켜주었다. 척은 윌슨에게 미국에 있는 연인에 대한 그리움, 무인도 생활의 고통 등을 털어놓는다. 물론 관객은 그것이 혼잣말이라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세상에 홀로 남아 외로운 척에게 윌슨이라는 가상의 친구는 의식주 이상으로 중요했다. 척은 마침내 얼기설기 만든 뗏목을 타고 죽든 살든 무인도를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4년간 동고동락했던 친구 윌슨도 물론 함께였다. 거센 파도에 윌슨이 뗏목에서 벗어나 바다로 떠밀려가자 척은 목숨을 걸고 바다로 뛰어든다. 윌슨을 구하지 못한 척은 세상을 잃은 듯 절규한다. 




윌슨(위)과 척. <캐스트 어웨이>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문득 생각이 나 디비디가 얼마 하나 봤더니, 이미 절판됐고 중고는 2만원...


왜 척은 바람 빠진 배구공에 그토록 집착했을까. 그것은 인간의 장구한 진화 과정과 관련 있다. 인간은 수십 만년 동안 외로움을 피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심지어 외로움은 감정에 해를 끼치는 것을 넘어 신체 건강이나 뇌의 인지, 판단력 같은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즉, 외로움은 사회적 유대가 끊어졌을 때 이를 회복하라고 몸이 보내는 신호다. 그것이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을 아우르는 ‘사회신경과학’의 대가인 존 카치오포 시카고대 교수가 <인간은 왜 외로움을 느끼는가>(원제 Loneliness: Human Nature and the Need for Social Connection)에서 내린 결론이다.


책 앞부분에는 단정적으로 보이는 인포그래픽이 실려 있다. 사회적인 사람은 외로운 사람에 비해 사고 능력이 30% 활성화 돼있고, 신진대사율이 37%, 염증 억제력이 13%, 소득 수준이 8% 높다. 반면 외로운 사람은 사회적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 수치가 50%, 고혈압 발병률이 37%,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41% 더 높다. 여기서 외로움은 UCLA가 만든 20가지의 질문지에 의해 측정된다. 질문지에는 “주변 사람들과 ‘유대감’을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자신이 동료 의식이 없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어려울 때 도움을 청할 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얼마나 자주 느끼는가” 등의 질문이 포함돼 있다. 



이런 인포그래픽이 떡....


사회적 유대감이 강한 사람은 시련을 겪어도 잘 극복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스페인 그라나다에서 열리는 국제학술대회에 가려던 그는 비행기 티켓을 끊은 비서의 실수로 서인도제도의 그레나다에 도착했다. 그날 중 돌아갈 길이 없어진 그는 하는 수 없이 그곳 리조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는 학술대회에 불참하거나 엉뚱한 나라에서 방황하는 일이 “세계의 종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꼈다. 자정이 넘은 시각 호텔의 바에 들른 그는 떠들석한 관광객들에게 자신의 실수를 이야기하며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었다. 


반대로 카치오포가 유대감, 소속감에 문제가 있는 상태였다면? 그는 자신의 비서를 원망하고, 비행기 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자신을 한탄하고, 스페인의 학술대회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동료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웃고 떠드는 관광객들을 증오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욱 울적한 기분에 빠져들어갔을지도 모른다. 책에는 외로움이 신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실험결과가 수두룩하다. UCLA 외로움 측정 기준으로 볼 때 외로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주의력이 떨어졌다. 미래에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들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리능력, 공간능력, 언어이해, 추리능력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즉, 친구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낙담은 수학 시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다. 


마치 ‘몰래 카메라’를 보는 듯한 실험은 또 있다. 미래에 외톨이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들은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영양가는 높지만 맛은 불쾌한 음료를 적게 들이켰다. 반대로 초콜렛 쿠키는 두 배 가까이 먹었다.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만으로도 자제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앞에서 언급했듯, 외로움을 피하려는 속성은 진화에 의해 추동됐다. 숲, 동굴에서 벗어나 평야로 나온 초기 인류는 무리를 지을 때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함께 있으면 즐겁고 홀로 있으면 불안한 유전자가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았다. 한 번에 하나의 아이만 낳는데다가, 그 아이가 오랜 시간에 걸쳐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인간의 생태도 유대감을 강조하는 원인이 됐다. 


부모와의 유대감을 느끼지 못한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실험을 통해 알아내기는 어렵다. 그런 실험은 비윤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는 국가적으로 이 실험을 했다. 루마니아는 1966년 피임, 낙태를 금지했는데, 그 결과 고아원은 아이를 키울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부모들이 버린 아이들로 넘쳐났다. 이곳은 정서적인 강제수용소가 됐다. 직원 한 명이 20명의 아이를 돌보았다. 그들은 아이와 눈을 맞추거나 미소 지어주거나 정을 주지 않았다. 1989년 차우셰스쿠 정권이 무너진 뒤 고아원의 실태가 공개됐다. 아이들의 신체 성장 정도는 하위 3~10%였고,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다. 고아원 출신 아이들 중 상당수가 잔인무도한 비밀경찰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유대감은 인체의 화학적 구성에도 영향을 준다.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감에 의해 생성되는 화학 물질이다. 옥시토신은 스트레스 반응을 줄여주고, 고통을 누그러뜨리며, 주의 집중력을 높인다. 옥시토신은 안거나 쓰다듬는 등의 접촉을 할 때 생성된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불안해하는 옆사람의 손을 잡아주거나, 엄마가 아파하는 아이의 배를 문질러주거나, 코치가 선수의 어깨를 치며 격려해주는 것은 매우 과학적인 행동이다. 


외로움은 일종의 ‘자기충족적 예언’이 된다. 외로움의 수준이 높은 사람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면서 위축되는 경향이 강했다. 반대로 외로움의 수준이 낮은 사람은 실패하면 “운이 따르지 않았다”고 하고, 성공하면 “내가 잘해서 그랬다”고 여긴다. 외로움의 악영향은 외로움을 벗어나라는 신호지만, 사실 외로운 상태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외로우면 사회적 인지, 판단 능력이 떨어지고, 이것이 외로움을 강화하는 부정적인 피드백 고리가 형성하기도 한다. 객관적 현실이 부정적 인식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 현실에 자리를 내준다. 


책은 외로움에 대한 이론적 분석과 함께 외로움의 부정적 피드백을 벗어날 수 있는 몇 가지 행동 지침도 소개한다. 사회적 유대감을 갖는 간단한 방법은 ‘EASE’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다른 사람에게 손내밀기’(Extend yourself)는 “안전한 장소에서 작은 일부터 간소하게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갑자기 천생연분을 찾겠다거나가 오늘부터 새 사람으로 거듭나겠다고 다짐하기보다는 주변 사람에게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라는 인사로 시작하는 편이 좋다. ‘구체적인 행동 계획’(Action plan)은 진로를 스스로 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자신의 처지, 능력을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일로 유대감을 추구해야 한다. ‘선택’(Selection)은 자신의 행동으로 에상되는 관계가 바람직한지 따져보는 것이다. 수줍어하고 몸을 움직이는데 자신이 없는 사람은 살사 동호화에 가기보단 독서 클럽에 가는 편이 좋다. ‘최선을 기대하기’(Expect the best)는 최선을 기대하면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뜻이다. 주변 사람의 시선은 즉시 바뀌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시 두려움과 좌절에 빠지기 보다는 더욱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미국이나 한국의 초대형 교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도 있지만, 이들의 ‘성공’ 요인은 현대 사회가 잃어가고 있는 사회적 유대감을 돌려준데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물론 이들이 비교도까지 포함하는 인류애를 보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문제긴 하지만, 현대인의 정신적 고립감을 해소하는 제도, 기관이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인터넷 가상 세계를 통해 유대감을 맺을 수 있다는 시각도 있겠지만, 저자는 “만남의 물리적, 신체적 맥락이 없는” 인터넷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물론 카치오포의 연구를 독신자나 홀로 있는 고요한 시간을 좋아하는 이들에 대한 미심쩍은 시선으로 연결해선 안된다. 혼자 점심을 먹는다고 외로운 것은 아니며, 수많은 팬에 둘러싸인 스타가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외로움에 대한 개인의 감성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연구는 인류의 윤리, 종교가 강조해온 이타적 행위, 사회적 연대의 효과를 과학적으로 지지해주는 작업에 가깝다. 19세기 영국의 성직자 헨리 멜빌은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 수는 없다. 천 개의 가닥이 우리를 우리 동료 인간과 연결해 준다. 교감의 실(sympathetic thread)인 이 가닥들을 따라 우리의 행동이 원인으로 전달되었다가 다시 결과가 되어 우리에게 되돌아온다”고 말했다. ‘교감의 실’이란 개념은 현대 과학이 다루기에는 추상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이 말이 인간 유대감의 중요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자력, 인력을 과학으로 해명할 수 있듯, 교감의 실로 표현된 유대감 역시 충분히 과학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