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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의 이윤기 감독 (1)
  2.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이윤기 감독의 전작 <멋진 하루>는 내 2000년대 한국영화 페이버릿 중 하나다. 그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에는 공교롭게 <밤과 낮>이 있어, 2008년의 개인적인 리스트에서 <멋진 하루>는 2위였다. 난 여전히 그 영화가 좋다. 이번에 이윤기 감독을 만나서도 <멋진 하루> 이야기를 한참 했다. 그는 <멋진 하루> 이후 하정우, 수애를 주연으로 찍다가 제작도중 촬영이 중단된 <티파니에서 아침을>이 <멋진 하루>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였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잘못 알고 와서 보다가는 화를 내는 관객도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일 것이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알고 영화를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석우 기자

현빈과 임수정의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성에 혹해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를 보러가려는 팬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겠다. 이 영화는 그런 영화가 아니다.

함께 살던 부부가 이별을 앞두고 있다. 여자에게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한다. 비가 억수같이 오던 날,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그 집 안에서 벌어지는 몇 시간 동안의 일이 이 영화의 전부다. 두 배우는 크게 웃거나 울거나 싸우지 않는다. 비가 들이치는 창문을 닫고, 찻잔을 정리하고, 요리책을 넘기고, 잠시 텔레비전을 보고, 외식 계획을 포기한 대신 저녁을 준비한다. 둘 사이에 무슨 일, 어떤 감정이 오갔는지는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에는 종일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이윤기 감독의 다섯 번째 장편 극영화다. <여자, 정혜>에서 시작해 <멋진 하루>까지 이어지는 이윤기 영화의 궤적을 따라온 관객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새로 유입될 관객에게는 낯선 영화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뒤 며칠 ‘잠적’했다가 나타난 그를 2월 28일 만났다.

“대중이 현빈, 임수정의 어떤 모습을 원하는지 판단할 수 있나요. 배우들은 여러 모습을 갖고 있는데, 전 그 중 한 모습을 보여줄 뿐입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당신들(관객)이 기대하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그는 “우리 나라는 배우 퀄러티가 제일 좋다. 제작자, 감독, 투자자, 기자보다도 그렇다”고 말했다. 그들의 능력치를 모두 보여주기엔 한국영화의 폭이 좁다는 것이다. 이 감독의 영화는 규모가 작았지만, 전도연, 하정우, 한효주, 김지수 등 스타 배우들이 잇달아 출연했다. 이번 영화에도 현빈, 임수정은 출연료를 받지 않았다. 다양하고 새로운 영화에 갈증을 가진 배우들이 이 감독의 “무모한 시도에 서슴없이 동참”해준다는 설명이다.

이 감독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 이은 ‘현빈 쓰나미’에 휩싸인 상황이 기분 좋지 않다고 했다. 그는 “현빈이 있어서 주목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티켓 파워로 연결되지는 않는다”며 “영화에 대한 논쟁은 환영이다. 하지만 ‘현빈 효과 없었다’는 식의 실패작으로 만들게 뻔해 미리 짜증이 밀려온다”고 말했다.

쓰나미의 주범. 이 영화를 찍은건 <시크릿 가든>을 준비하던 시점이었는데, <시크릿 가든>에서 머리를 어떤 컨셉으로 갈지 정해지지가 않아 일단 머리를 기르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저런 머리를 하고 <사랑한다...>를 찍었다.

<사랑한다…>는 섬세하고 느린 영화다. 드라마적 효과를 위한 음악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들리는 음향은 빗소리 뿐이다. 지하에서 3층까지 빗소리를 모두 다르게 설계해 녹음했고, 카메라 움직임에 따라서도 다르게 들리도록 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는 일반적 관점에서는 둘에 대한 정보가 없어 답답하다고 하겠지만, 애초 그걸 다루려고 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감독이 그린 것은 둘의 ‘마음 상태’다. 영화 시작부터 이어진 12분간의 롱테이크(길게 찍기)는 영화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연스럽게 하나도 빼지 않고 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나눠 찍으면 인위적으로 강조하게 되니까. 중요한 건 대화 자체보다 말의 뉘앙스, 표정, 시선이었습니다.”

여자가 바람 나서 집을 나가겠다는데 현빈처럼 묵묵히 반응하는 남자가 있을까. 이 감독은 현빈 캐릭터를 “감정 표현에 미숙한 사람”이라고 정리했다. “특히 사람 사이의 문제에 대해 너무 깊게 생각하다보니 그 안에서 길을 잃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속 임수정도 비슷한 사람이어서 둘은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었는데,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자 터뜨려 해결하기보다는 안으로 숨어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지만 속으론 곪아들어간 사람. 이별조차 시원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사랑한다…>의 주인공들이다.

지금까지 내놓은 5편의 작품 중 4편이 여성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이번 영화의 원작은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아레노의 단편 <돌아올 수 없는 고양이>이다. 그는 “원할 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프로젝트를 갖고 있다. 여성 소설가의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건 우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레이먼드 카버,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도 관심이 많으며, 모두 놀랄만한 대단히 상업적인 프로젝트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고인의 유고들을 재빨리 손대지 않고 출판한다고 해서 고인의 업적을 기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타계한 소설가 겸 번역가 이윤기의 컴퓨터 하드 디스크에 남아있던 원고들이 잇달아 출간되고 있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열전>은 그중 하나다. 딸이자 번역가인 이다희가 유고를 정리했다.

<풀루타르코스 영웅열전>을 저본으로 삼아 그리스 신화, 로마 역사 속 영웅들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여기에 한국 독자가 익히 알고 있는 동양 설화를 비교했다. 이윤기의 여느 인문 교양서가 그러하듯, 초등학교 고학년생도 읽을 수 있을 만큼 쉽게 쓰여졌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서양문화의 큰 뿌리인 헬레니즘의 초석이기에, 여기 인용된 상징적 표현, 촌철살인 경구를 익히면 현대 언어에 대한 지식도 풍부해진다. 그리스 영웅 중에서도 헤라클레스와 쌍벽으로 꼽히는 테세우스 이야기를 보자. 테세우스의 탄생은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들 유리왕 신화와 비슷하다. 주몽이 임신한 아내를 황급히 떠나며 아들을 위한 증표를 남긴 것처럼, 아테나이의 왕 아이게우스도 태어날 아이를 위해 가죽신과 칼 한 자루를 남겼다. 훗날 태어난 이 아이의 이름은 테세우스였는데, 이는 ‘감춰둔 보물’을 뜻한다. 또 이 이름은 사전을 뜻하는 영어의 ‘시서러스’(thesaurus)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윤기는 사전이란 “역사가 감추어둔 언어의 보물 창고 아닌가?”라며 이야기를 푼다.

마케도니아 출신 정복자 알렉산드로스는 신화와 역사 사이에 걸친 영웅이다. 그는 엄연한 역사의 인물이지만, 훗날 스스로 신격화를 시도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이 영웅은 역시 대단한 정복자이자 야심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무시했다. 독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탕약을 시의 앞에서 보란 듯이 마신 남자였지만, “개같은 인생”이란 화두의 철학자 디오게네스 앞에선 “햇빛을 가리지 말라”는 부탁을 받았다.

1990년대 말 신문 연재분을 다듬어 그림, 이야기를 덧붙였다. 다듬다 말았는지, 아니면 애초 인물 비중이 다르기 때문인지 영웅 19명에 대한 서술 분량이 천차만별이다. 신문 한 면이면 소화할 듯한 장이 있는가 하면,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뻗쳐나간 장도 있다.

여러 장에 걸쳐 겹치는 에피소드도 있다. 알렉산드로스와 디오게네스 이야기는 각 장에서 나온다. 각권이 212쪽, 204쪽인데, 한 권으로 만들 수 없었는지 궁금하다. 각권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