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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배를 부풀린 개구리, <하우스 오브 사담>

<하우스 오브 사담>은 BBC와 HBO가 2008년 공동제작한 4부작 텔레비전 시리즈물이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기 직전 부시 미국 대통령의 텔레비전 연설에서 시작하는 드라마는 1979년 사담 후세인이 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시점으로 돌아가 이란-이라크전의 발발,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유엔의 무기사찰을 거쳐 다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돌아와 후세인의 도피와 체포 과정을 보여주는데서 끝난다. 


이라크의 혼란한 정정이 다시 외신의 주목을 받고 있지만, <하우스 오브 사담>은 이라크 현대사를 정리하는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이라는 악명 높은 독재자의 개성과 통치술을 그리는데 더 많은 노력을 들인다. 실제 사담 후세인의 외모와 놀랍게 닮은 배우 이갈 나오르는 후세인의 개성을 생생하게 살려낸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독재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 드라마들은 저마다 그를 어느 정도 이해할만한 인물로 그리곤 한다. 광기에 사로잡혀 아무 곳으로나 총을 쏘아대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철저한 애국심과 자부심을 가진 강인한 인간. <몰락>이 그린 아돌프 히틀러가 대표적이다. <하우스 오브 사담>의 후세인도 비슷하다. 시리즈 속의 후세인은 이라크를 몹시도 사랑한다. 미군에게 쫓겨 은둔생활을 하던 오두막에도 이라크 국기를 세워두었으며, 도피하기 직전에도 국기에 입을 맞춘다. 미군에게 사살당한 아들의 무덤에 몰래 다가가 대형 국기를 덮어주고 오기도 한다. 


여느 독재자가 그러하듯, 문제는 후세인이 자신을 국가와 동일시했다는 점에서 시작한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곧 국가를 반역하는 것이라 여긴다.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혈족 지도체제와 국가를 등치시킨다. '나=정부=국가'의 공식이 세워진다. 나중엔 자신의 이성적 판단 뿐 아니라 감정에 거스르는 이도 반역자로 여긴다. 나라꼴의 험악한 일면을 조금이라도 전달하는 측근은 모조리 내친다. 결국 후세인 주변에는 진실을 전하지 않는 아첨꾼들만 남는다. 


'아랍권의 리더'를 자처하던 후세인은 현실의 권력을 강화하는데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함마드의 직계임을 알아냈다며 가계도를 그리는가 하면, 자신의 피를 뽑아 코란을 쓰게 한다. 현실의 권력에 과거로부터의 신적인 권위로 후광을 덧붙이려 한다. 후세인은 마치 옛 동화 속 배를 부풀린 개구리처럼 자아를 지나치게 확장시켰다.  


정치인은 기본적으로 낙관주의자여야 한다. 나의 정치 행위로 인해 우리의 정치공동체가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믿음이 없다면 애초에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긍정의 신호를 찾아내 그것에 의지해 행동해야 한다. 한 마디로 '멘탈'이 강해야 한다. 그러나 이 시리즈 속의 후세인은 멘탈이 지나치게 강한 남자였다. 쿠웨이트 침공 때 30개국의 연합군이 쿠웨이트를 돕기 위해 달려오자, 후세인은 "이라크는 이미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30개국의 강국을 혼자 상대하고 있다"고 말한다. 도피중에도 대국민 연설을 끊임없이 내보내고, 미군에 대한 불만을 자신에 대한 지지로 해석해 곧 온 이라크가 미국에 대항해 일어날 것이라고 여긴다. 


정치인은 비전을 가져야 하지만, 그 비전은 분명히 현실에 기반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정치인의 말로는 비극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