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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가 당신의 몸을 가졌는가. <보라>+<하얀 정글>
천재적인 예술가 찰리 채플린은 현대 산업사회가 인간의 몸에서 고혈을 짜내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시각화했다. 노동자들은 돼지떼처럼 공장에 출근한다.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을 하다보니 몸이 이상 반응을 한다. 심지어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거대한 기계 안으로 빨려들기도 한다.

이 영화의 제목은 의미심장하게도 <모던 타임즈>(1936), 즉 ‘현대’다. 우리의 현대는 채플린의 현대로부터 얼마나 멀리 왔을까. 한 주 간격으로 개봉하는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두 편은 그 간극이 크지 않다고 말한다.

<보라>

■ 고발과 사유, <보라>

최근 열린 시사회에서 <보라>의 이강현 감독은 “이 영화는 개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도발, 파격에 관대한 각종 영화제에서는 입소문을 탔지만, 136분의 실험적 다큐멘터리는 무방비의 일반 관객이 관람하기엔 힘들 수도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상시고용 50인 이상 300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자’는 산업의학 전문의에게 3개월에 한 번씩 보건관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라>는 이 법률에 근거해 이뤄진 현장보건관리를 1년간 촬영한 기록물에서 출발했다.

카메라가 찾은 곳은 마네킹 공장, 피아노 공장, 채석장, 딸기 농장 등이다. 의사는 법을 따라 노동자를 만나지만, 이들의 건강을 ‘관리’하기는커녕 제대로 된 상담도 쉽지 않다. 하루종일 분진, 소음, 열기에 시달리는 노동자는 의사의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의사), “으응, 소주 두 병 정도 먹지”(노동자) 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보라>

의사와 노동자의 대화가 엇나가는 것은 청력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자의 통증과 증상은 현대적 의학 용어를 사용하는 의사의 그물망에 포획되지 않는다. 의사는 “언제부터 아팠냐”고 묻는데, 노동자는 “솔찬이 됐다”고 답한다. 노동자의 뚱한 표정, 모호한 답변은 종종 의사와 그 편에서 바라보는 관객까지 당황하게 한다. 게다가 단순반복작업을 오랫동안 하면 나타나는 근골격계 질환을 단시간의 검진으로 파악해내기는 애초에 무리다. 영화 제목의 ‘보라’는 통증을 의미하는 색이다. 통증은 있지만 그 원인은 알 수 없는 현대 산업사회의 분위기를 <보라>는 냉정하게 담아낸다.

중반부까지 산업재해 실태를 고발하는 듯하던 <보라>는 후반부에 들어 낯선 곳으로 도약해 육체의 움직임을 사유한다. 카메라는 갑자기 용산 전자상가의 컴퓨터 수리점, 초고속 인터넷의 서버 관리자, 리틀 야구장, 수영장, 카메라 동호회원들의 활동을 비춘다. 한쪽 인간의 몸은 돌가루, 농약, 유독성 페인트를 들이켜고, 다른 쪽 인간의 몸은 인터넷 롤플레잉 게임의 아바타로 확장된다. 몸이 아프듯이, 하드디스크도 고장난다. 눈은 나빠지지만, 카메라는 고급이 된다.

<보라>는 세상이 온통 시퍼렇게 멍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장하는 대신 보여준다. 내레이션은 없고, 음악은 최소한으로만 사용됐다. 얼마나 많은 관객이 <보라>를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보라>처럼 고발과 사유를 동시에 하는 영화는 흔치 않다는 점이다. 24일 서울 신사동 인디플러스, 건국대 KU시네마테크 등에서 개봉한다.

<하얀 정글>


■ 선동과 확신, <하얀 정글>

<보라>가 관조한다면, <하얀 정글>은 확신한다. 그리고 그 확신을 관객에게 최대한 각인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현직 산업의학과 전문의이기도 한 송윤희 감독은 직접 내레이션을 하고, 갖가지 방법으로 영화에 개입한다. 송 감독은 “이 영화는 시장에 내맡겨진 의료 제도의 한계 때문에 갈등하는 환자들과 의사들의 이야기”라며 “나는 의사로서, 이 영화에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것”이라고 선언한 뒤 영화를 시작한다.

돈 몇 만원 때문에 진료를 포기한 사람들이 인터뷰 대상으로 등장한다. 배에 정체 모를 덩어리가 있는데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않았다는 사람, 수술비가 없어서 치료를 포기하고 남은 가족들에게 사망 보험금을 챙겨주겠다는 사람, 입원비를 독촉하는 원무과 직원을 죄인처럼 피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극빈층으로 거의 무상 의료를 지원받은 한 할머니는 “정부에 미안하다”며 더 이상 치료받기 싫다고 말한다. 부당청구된 치료비를 돌려달라고 했다가 “재발하면 치료 안해준다”는 병원의 협박을 들은 환자도 있다.

반대편에는 병원이 있다. <하얀 정글> 속 병원의 목적은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인다. 고가의 검진·치료 장비를 앞다퉈 들여놓은 뒤, 이윤을 뽑기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를 한다. 의대 교수회의 시간에는 파워포인트로 과별 실적 순위를 공개하고, 각 의사에게는 외래 진료 환자의 숫자를 문자 메시지로 보낸다. 일반 병실은 줄이고 고급 병실을 늘린다. 그래서 호텔보다 비싼 병실을 사용하도록 유도한다. 어느 종합병원 의사는 평균 30초당 1명꼴로 환자를 진료한다. 이 같은 현상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의료 민영화’다. 국민의 건강을 시장에 맡기겠다는 정부와 이에 화답하는 대형 병원이 이를 추동한다. 이 과정에서 의사는 일정 수준의 면죄부를 얻는다.

<하얀 정글>은 프로파간다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학을 고려하기보다는 전투를 하자고 독려한다. 전반부는 「PD수첩」과 같은 시사 프로그램의 형식을 따오고, 후반부는 마이클 무어의 선동적인 다큐멘터리를 연상케 한다. 의료 민영화는 언론에서 자주 다뤄온 문제지만, ‘편파적’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그 어느 ‘객관적’ 보도보다 힘이 세다. 12월1일 씨네코드 선재, CGV압구정·상암 등지에서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