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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지 오웰, <위건 부두로 가는 길>




내가 대단한 직업적 자부심을 가지고 생활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고, 그래서 동료에게 이 직업에 대해 그럴듯한 충고나 조언을 할 처지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조지 오웰이 무려 74년전에 내놓은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 사회주의는 몰락하고 자본주의 역시 몰라볼 정도로 변형됐지만, 1937년이나 2011년이나 중간 계급 이하 사람들의 삶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책의 1부는 영국 북부 탄광 지대와 그곳 사람들의 삶에 대한 르포, 2부는 오웰 개인의 사상적 정체성이 형성되기까지의 성장기와 당대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과 지지다. 내 경우 2부보다는 1부가 읽을만했다. 특히 2부 후반부는 당대 사회주의가 지지받지 못하는 이유라든가, 파시즘의 발흥에 대한 경고 같은 것이 있는데,아무리 시차를 감안해 읽는다 하더라도 오늘날 사정에 꿰맞춰보기는 조금 어렵다. 특히 사회주의자=진보주의자=유물론자=기계문명 예찬론자의 공식을 기정사실화하고 생각을 풀어가는데, 오늘날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건 명백하지 않은가.

1부는 르포의 교과서 수준이다. 취재량이 풍부하고, 집필 의도가 명확하며, 문장이 정연하고, 분석이 날카롭다. 모든 기자가 이런 경지를 꿈꾸지만 대부분 실패한다. 이 네 가지 중에 두어 가지 요소라도 갖추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탄부들의 열악한 삶에 대한 리얼한 묘사야 그러려니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서 얻은 자본주의 밑바닥에 대한 통찰은 모골이 송연하다. 예를 들어 스물 다섯이지만 마흔은 돼보이는 슬럼가 여자를 본 뒤 "내가 그녀의 얼굴에서 본 것은, 까닭 모르고 당하는 어느 짐승의 무지한 수난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라는 묘사, 잠깐 막장에 들어갔다 뒤 "나는 육체노동자가 아니며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기를 신께 빈다"는 고백, 또 "혁명도 반동도 석탄이 필요"하다는 통찰, 노조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노동자들이 내놓은 "'그들'이 절대 그걸 허용하지 않으리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들'이 대체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능한 존재인 건 분명했다"는 설명, "실업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를, 특히 여자보다는 남자를 무기력하게 만든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는 지적 등이다.

또 있다. 뛰어난 노동자 문인이 나오기 힘든 이유에 대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안락과 고독 뿐 아니라 마음의 평화도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설명, 빈곤층이 도박을 하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는 이유에 대해 "모든 사치 중에서도 가장 값싼 도박", "실업자가 되어 못먹고 시달리고 따분하고 비참한 신세가 되면, 몸에 좋은 음식은 심심해서 먹기가 싫은 것", "실업으로 인한 끝없는 비참함은 께속해서 고통완화제를 필요"로 한다는 문장 등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절반쯤 읽은 뒤 그가 이 책이 나온 이듬해 내놓은 <카탈로니아 찬가>를 '마이 리스트'에 넣어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