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에 해당되는 글 2건

  1.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 '카페 소사이어티'
  2. 불안증의 공포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우디 앨런의 수작. 새로 내놓은 티비 시리즈는 반응이 미적지근하다. 


언젠가부터 우디 앨런(81)은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는 듯, 수작과 범작을 번갈아가며 매년 1편씩의 영화를 선보이고 있다. 7월 개봉한 <이레셔널 맨>이 범작이라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개막작인 <카페 소사이어티>(14일 개봉)는 수작이다. 인생의 아이러니, 사랑의 씁쓸한 뒷맛, 호사스런 삶에 대한 동경과 경멸 등 앨런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드러난 주제들이 능란하게 제시돼있다. 

1930년대 미국. 뉴욕 출신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성공을 꿈꾸며 할리우드로 건너가 유능한 에이전시 대표인 삼촌 필(스티브 카렐)을 찾아간다. 필은 비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바비의 길 안내를 부탁한다. 바비는 첫눈에 보니에게 빠지지만, 보니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한다. 보니의 숨은 남자친구는 다름 아닌 필. 바비는 이를 모른 채 계속 보니의 환심을 사려 노력한다. 마침내 필은 보니와 헤어지고, 바비와 보니는 연인이 된다. 바비는 보니에게 속물스러운 할리우드를 떠나 뉴욕으로 가자고 제안한다. 






바비는 우디 앨런의 영화에 자주 나오는 유대인 가정 출신의 야심찬 청년이다. 그는 낯선 할리우드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져들어 구애한다. 끈질기지만 거칠지는 않은 바비의 구애는 결실을 맺는 듯 하지만, 세상 많은 일이 그렇듯이 문제는 타이밍이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하다. 그걸 ‘운명’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당사자에겐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한 발짝 떨어져 보는 관객에게는 코미디다. 물론 그 코미디는 영화 속 대사대로 “가학적인 작가가 쓴 대본”을 따른다. 

가학적인 코미디 같은 인생에서 누군가는 사랑하지만 또 누군가는 죽는다. 앨런의 영화 속에선 죽음의 무게조차 깃털처럼 가볍기에, 영화 속 시신들은 짐짝처럼 취급된다. 앨런이 죽음을 가벼이 여겨서 그런 건 아니다. 앨런은 인터뷰 때마다 빼놓지 않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어처구니 없이도 쉽게 죽어나가는 영화 속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앨런은 관객 모두 운명의 장난에 휘둘릴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카페 소사이어티> 속 인물들은 노예다. 이들은 세월의 노예, 감정의 노예가 되어 무기력하게 흔들린다. 이런 사실을 우리의 모든 부도덕과 범죄와 변절의 면죄부로 삼을 수는 없겠지만, 인정할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디 앨런의 주인공처럼 나약하다.



우디 앨런 영화 보면 코미디인데, 실제로는 공포다. 한국판 표지 역시 귀업게 표현하려 했다. 저자는 최대한 담담하게 쓰려 하고, 또 가끔 유머를 발휘하려고도 하지만, 웃기기보다는 끔찍하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스콧 스토셀 지음·홍한별 옮김/반비/496쪽/2만2000원


우디 앨런은 자신의 컴플렉스를 기막힌 작품으로 만들어버렸다는 점만으로도 대단한 예술가다. 앨런이 연출하고 주연까지 맡은 영화 <애니홀>(1977)의 주인공 앨비 싱어는 뉴욕에서 활동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어린 시절의 싱어는 “우주가 계속 팽창하다가 결국 터져버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을 하며 나날을 지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불안증을 극복하지 못한 싱어는 15년째 정신과에 출입하고 있는데, 별로 나아질 기미는 없다. 싱어의 불안은 그의 직업, 대인관계까지 잠식한다.


실제의 앨런을 연상케하는 싱어의 불안은 관객을 포복절도케 한다. 그런데 가족이나 절친한 친구 중에 실제로 앨런 같은 사람이 있다면? 아니면 나 자신이 앨런 같은 불안에 시달린다면? 그건 코미디가 아니라 무시무시한 공포영화다.


미국의 유명 잡지 애틀랜틱의 저널리스트인 스콧 스토셀은 영화 바깥으로 나온 우디 앨런이라 할만하다. 그는 기억이 닿는 한 최대치의 유년기부터 각종 불안에 시달렸으며, 지금도 그렇다. 약물, 상담, 명상, 독서 등 온갖 방법으로 불안을 다스리려 했지만 영구적이고 확실한 효과를 낸 것은 없었다. <나는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원제 My age of anxiety)에서 스토셀은 자신의 불안 증상의 이력,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과 실패담을 털어놓는다. 그는 이를 위해 고대 그리스의 문헌에서 시작해 다윈, 프로이트의 저작을 거쳐 현대 의학 서적까지, 불안에 관한 수십만 장의 글을 8년에 걸쳐 읽었다.


생의 주요 고비는 물론, 가벼운 일상의 와중에도 불안은 스토셀을 덮쳤다. 결혼식을 치르면서는 하도 땀을 흘리고 몸을 떠는 바람에 신부, 주례, 하객의 걱정스러운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첫 아이가 태어나는 날, 간호사들은 산모를 내버려두고 창백한 얼굴로 쓰러진 스토셀을 돌봤다. 강의나 발표를 하기 위해 나섰다가 얼어붙어 버린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데이트 약속을 했다가 못나가고, 취업 면접을 보다가 나와 버린 적도 많다. 좀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도 마찬가지다. 스토셀의 어머니는 야간 로스쿨에 다녔는데, 어머니를 기다리던 그는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거나 아예 가출했을 것이라는 공포에 시달리곤 했다.





가장 심각한 건 구토공포증(emetophobia)이다. 스토셀은 “내 일상에서 놀라울 정도로 많은 부분이 구토를 피하는 일과 만에 하나 구토를 하는 사태가 벌어질 때에 대비하는 일에 소비된다”고 적었다. 스토셀은 1977년 3월 17일 구토한 이래 한 번도 구토를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구토공포증을 벗어나지 못했다. 구토할리 없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몸은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의사들은 온갖 요법을 적용했다. 대표적으로 ‘노출 요법’은 공포의 원인이 되는 대상에 환자를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는 방법이다. 스토셀은 거대한 텔레비전을 통해 사람들이 토하는 장면을 끝없이 지켜보기도 했고, 구토를 유발하는 토근 시럽을 마시기도 했다. 그러나 스토셀이 수시간이 지나도록 구토를 참는 바람에 요법은 실패했고, 오히려 이를 지켜보던 의료진이 구토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약으로 해결할 수 없을까. 실제 미국에서는 발륨, 프로작 등 불안증, 우울증 약이 보편적으로 상용화된 상태다. 불안이 생물학적, 의학적 요인으로 발생한다는 설명을 믿으면, 약을 먹는게 큰 도움이 된다. 스토셀 역시 각종 약을 상시 복용해왔으며, 현재까지도 의지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특정한 약이 등장하면서 듣도 보도 못했던 병이 유행처럼 번지는 경우도 있다. 오늘날 미국인 중 1100만명이 공식적으로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는데, 1979년까지만 해도 이러한 병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공황 장애라는 개념은 이미프라민이라는 약의 개발과 함께 나왔다. 젊은 정신과 의사 도널드 클라인은 자신이 치료하는 정신과 환자 대부분에게 무조건 이미프라민을 투여하기 시작했고, 특히 불안 발작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클라인은 이미프라민이 효과가 있는 증세를 불안 발작(훗날의 공황 발작)이라 불렀다. 약에 대한 반응이 병을 정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발륨이 나오자 모든 증상은 ‘불안’과 연관됐고, 프로작이 나오자 같은 증상이 ‘우울’로 해석됐다.


불안은 선천적일까 후천적일까. 스토셀의 아내는 불안증이 없고, 스토셀 자신도 불안증을 절대 드러내지 않으려 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린 두 딸이 일찌감치 이런저런 불안증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 스토셀은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디 앨런 유전자’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유전자 변이가 있다. 이 유전자들은 부정적 정서를 강조하거나, 강박적인 몰두를 유도한다.


그러나 불안은 또한 환경에 의해 조성되기도 한다. 유방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 유방암이 발현되는 건 아니듯, 불안 유전자가 있다고 해서 모두 불안에 떠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불안이란 문명의 산물이기도 하다. 현대인들은 돌림병이나 맹수에 의해 고통받지 않고, 전기나 상하수도 시설이 갖춰진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이런 편의가 없었던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큰 불안에 떤다. 신분이 고착화돼 있었고 문명 발달이 더뎠던 옛날 사람들은 일종의 만성적 체념 상태에 빠져 있었지만, 현대인들은 인생의 수많은 선택지에서 갈등하고 또 불안에 떤다.


스토셀은 불안의 정의를 내리고, 또 자신의 불안증을 고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하지만 수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정리해 책을 썼어도 불안증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건 키케로, 마하트마 간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타이거 우즈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로마의 위대한 웅변가 키케로는 재판 도중 몸이 얼어붙어 그냥 내려온 적이 있고,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무대공포증 때문에 15년간 공연하지 못했다. 타이거 우즈는 “내가 긴장하지 않는 날은 골프를 그만두는 날”이라고도 말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불안은 현대인의 존재 조건이다.


많은 불안은 그 불안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불안을 호소했다가는 “나약하다”거나 “호들갑 떤다”는 핀잔을 받기 일쑤다. 스토셀의 안타까우면서도 솔직한 고백은 불안에 떠는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