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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구만으로 야구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가. <퍼펙트 게임>
  2. 야구라는 이름의 망령 (43)
솔직히 난 이 영화에 쏟아지는 호평이 조금 어리둥절하다. 영화 종반부, 여러 가수가 나워 부른 '그것만이 내세상'을 삽입한 것은 정말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야구는 올해 600만 관중 시대를 연 한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최동원과 선동렬은 한국 야구 역사상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최고의 투수들이었다. <퍼펙트 게임>은 둘의 대결을 그린 야구영화다. 둘은 현실에서 3번 대결을 펼쳤고, 승, 무, 패를 한 차례씩 거뒀다.

올해만 해도 <글러브>, <투혼> 등 2편의 한국 야구 영화가 나왔다. 전자는 청각장애학생들이 장애를 극복해가는 감동적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고, 후자는 그라운드 안과 밖에서 모두 방탕한 삶을 살던 남자의 후회와 각성을 그렸다. 두 편 모두에서 야구는 주인공의 목적이 아닌,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퍼펙트 게임>은 다르다. 실존 프로야구 선수를 다뤘다는 점에서 앞의 두 영화보다 야구 자체에 집중할 환경이 마련됐다. 특히 영화가 후반부의 많은 시간을 할애해 묘사하는 세번째 대결은 그 어떤 픽션보다 극적이다. 이 경기에서 두 투수는 연장 15회까지 마운드에 올라 200개 넘는 공을 던지며 팀의 패배를 막아냈다. 요즘 선발 투수의 투구수는 통상 100개를 간신히 넘는다는 점에서, 최동원, 선동렬의 ‘투혼’은 감동적이다.


그러나 야구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임에도, <퍼펙트 게임>은 야구라는 경기 자체에 무심해 보인다. 야구는 투수의 눈짓, 타자의 손짓 하나에 수많은 의미가 담겨있는 섬세한 경기지만, 영화는 이같은 세부를 담지 않는다. 심지어 주자가 나가는 상황도 보여주지 않는다. 마치 하이라이트 영상처럼, 타자가 안타를 쳐 이미 출루한 주자가 홈에 들어오는 과정만 보여준다.


야구영화에서 야구가 빠진 자리는 경기 외적인 요소들이 채운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양복 입은 남자들은 두 선수를 맞붙여 지역감정을 조장한 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술수를 꾸민다. 1군 경기 한번 못뛰어본 무명 포수가 아내와 아이에게 낯을 들지 못하는 설움이 묘사된다. 이 포수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영화 속에 묘사된 실제 경기에서는 결정적 활약을 펼친다. 최동원, 선동렬을 취재하는 두 명의 야구 기자도 등장한다. 이들은 야구팬이 아닌 관객에게 야구를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최동원·선동렬의 대결에 압도된 기자들의 모습은 마치 <나는 가수다> 무대에 반응하는 청중 평가단처럼 삽입됐다. 그러나 그 자체로 충분히 극적인 최·선의 대결에 덧붙여진 기자들의 반응과 해설은 제작진의 노파심을 드러낼 뿐이다.


<퍼펙트 게임>은 모호하다. 최동원·선동렬의 투혼에 찬탄하는지, 분노와 슬픔과 오기가 넘실대던 1980년대에 야구가 가진 의미를 찾는지, 무명 선수의 성공담에 감동하는지 확실치 않다. <퍼펙트 게임>이 애초의 의도대로 최·선의 대결에 집중했더라면 영화의 구성은 압축적이 되고, 상영시간이 127분에 달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야구 자체에 덧붙여진 이런저런 이야기들은 영화를 풍성하게 하기보단, 야구만으로는 영화를 만들기 힘들다는 약삭빠른 판단 혹은 자신감 결여처럼 보인다.


조승우가 최동원, 양동근이 선동렬 역을 맡았다. 조승우의 호연이 빛난다. <인사동 스캔들>로 데뷔한 박희곤 감독의 두번째 작품. 21일 개봉. 12세 관람가.



나는 망령에 사로잡혔다. 그 망령의 이름은 야구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베어스의 올해 야구가 끝났다. 플레이오프 5차전, 11회말 2사 만루 2-2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구원투수의 심경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심장마저 쥐어뜯는 상황, 임태훈의 머리와 가슴엔 얼마나 많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을까. 느리고 불규칙한 바운드의 땅볼을 향해 전력질주한 뒤 정확하게 잡아 송구해야 하는 유격수의 손에는 경련이 일어났을까. 난 그렇게 막중한 책임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는 정도. 그런 것 아무렇지도 않다. 난 연장전 만루에서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 그토록 크고 중대한 순간을 맞아본 적이 없다. 그 순간을 맞아 결국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을 난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경탄한다.

이번 플레이오프는 누가 이겨도, 누가 져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삶이 그렇듯 야구도 우연과 실수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잦다. 130여 경기를 치르는 기나긴 시즌은 우연과 실수를 확률과 통계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단기전은 다르다. 당일의 컨디션, 기후, 경기장 분위기, 그것도 아니라면 운, 신의 장난이 결과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든다. 냉혹하고 잔인하고 슬프게도, 포스트시즌의 야구에는 승과 패라는 이분법만 통용된다. 미묘하게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운동장에 작은 자갈이 깔려있는 바람에, 애드 벌룬이 바람에 휘말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누군가는 패배의 나락에 떨어진다. 포스트시즌의 1패는 정규 시즌의 1패가 아니다. 우연과 실수 때문에 정규 시즌에 1패를 기록한 뒤 재기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못난 선수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의 1패 때문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면, 그는 동정받아야 마땅하다. 인간이 그렇듯이, 운동선수란 힘없고 나약하다. 

그러므로 난 결승점을 준 빌미를 제공한 선수가 손시헌이라는데 안도한다. 정수빈이나 김현수나 임태훈이나 양의지가 아니라는데 안도한다. 누가 캡틴에게 돌을 던지랴.

야구의 망령은 선수와 팬을 사로잡는다. 희롱한다. 선수와 팬은 놀랍게도 기꺼이 희롱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힘들고 소모적인 일을에 왜 자발적으로 나서는가. 모른다. 시작부터가 누군가의 장난에 말린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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