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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돌에 대한 몰입과 거리감 '도쿄 아이돌스'
  2. 이민정이라 쓰고 대세라고 읽는다. <원더풀 라디오>


명성이 자자하던 다큐멘터리 '도쿄 아이돌스'(감독 교코 미야케)를 보다. 소재가 눈길을 끌거니와, 그 소재를 다루는 태도가 좋다. 일본 지하 아이돌과 그들의 팬덤을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적절한 비판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소재를 장악하는 동시, 그에 대한 거리를 유지한다. 저널리즘에 반드시 필요하지만 갖기 힘든 태도다. 

리오라는 지하 아이돌과 그의 팬덤이 중심이다. 팬덤은 주로 남성이다. 팬의 연령과 직업은 다양하다. 대체로 미혼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리오가 여는 소규모 콘서트에 빠짐없이 나오고, 씨디를 사고 또 사고, 악수회에 참여해 악수와 함께 1분 안팎의 대화를 한다. 리오의 인터넷 방송도 매번 시청한다. 한 팬은 좋아하는 여자와 결혼을 하려다 실패한 후, 결혼자금으로 모아두었던 돈을 모두 아이돌을 위해 썼다고 말한다. 

팬은 후회가 없다. 40대에 접어든 한 팬은 생에 이러한 열정은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한다. 10년 뒤쯤에는 여기 저기 아프고 병들텐데, 그 전까지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한다. 일본의 아이돌은 한국처럼 '완성형'으로 데뷔하기보다는, 춤이든 노래든 캐릭터든 어딘가 어색한 상태에서 데뷔해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례인데, '도쿄 아이돌스'의 아이돌들도 그렇다. 한국의 관점에서 보면 어설픈 노래와 춤을 선보이는데, 팬들은 땀을 흘리며 열심히 응원한다. 예전 '우정의 무대'에서 봤을법한 함성과 일사분란한 응원이 아이돌 무대 앞에서 재현된다. 

젊은 여성 하나를 둘러싸고 수많은 남성들이 소리지르며 응원한다. 무섭거나 기괴할 것 같은데, 막상 이 남자들과 대화하면 대체로 순박하고 쑥스러워한다. 아이돌들도 팬들이 아빠처럼, 오빠처럼 잘 대해준다고 생각한다. 예전엔 신체 접촉이 일절 금지돼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악수회'라는 '회색지대'가 생겼다. 아이돌은 청순한 이미지를 유지하고, 팬은 최소한의 성적인 접촉을 할 수 있다. 상상의 연애, 유사 연애가 이뤄진다고 할 수 있는데, 팬들도 이것이 '유사'임을 명확히 알고 있다. 아무리 아이돌과 친해져도, 설령 아이돌 팬클럽의 회장이라 하더라도, 아이돌과의 관계가 진짜 연애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히 알고 있다. 



'도쿄 아이돌스'의 중심인물인 아이돌 히라기 리오

'도쿄 아이돌스'는 아이돌과 남성팬의 관계가 현실의 연애를 대체하고 있다고 본다. 남성팬들은 거추장스럽게 실제 여성과 연애하지 않는다. 현실 연애에서 관계는 천변만화한다. 내가 아무리 정성을 다해도 상대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내 호의가 상대에겐 적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연애에선 미스커뮤니케이션이 다반사다. 그 모든 모순과 어려움을 견뎌내야 연애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돌과 팬은 그렇지 않다. 돈을 쓰고, 정성을 다하면, 아이돌은 그대로 받아들여준다. 아이돌은 팬이 정성을 쏟는만큼의 정확한 비례로 미소지어준다. 연애란 상대에 대한 독점욕을 동반하지만, 아이돌과의 가상 연애는 팬덤에 의해 공유된다. 팬은 연애의 독점욕을 포기하는 대신, 연애의 정직한 거래를 확보한다. 

연애같은 거 귀찮아서 안해. 대신 아이돌과 가상 연애할래. 사실 이해가는 태도다. 연애는 귀찮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돈도 든다. 정치인이나 사회학자나 인류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는데 대해 한숨을 쉴 것 같다. 하지만 난 항상 '후세의 일은 후세가 걱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왔다. 이 팬들에게 인구 걱정, 인류 걱정을 하라는건 가혹하다. 다만, '도쿄 아이돌스'의 엔딩이 10대 초반 아이돌을 보여주면서 끝난다는 건 기묘하고 아슬아슬하다. 아무리 '열린' 마음으로 봐도, 이제 초등 고학년이나 됐을 법한 소녀들이 아저씨들과 악수하는 모습은 이상하다. 그런 점에서 '도쿄 아이돌스'의 태도는 이 팬덤에 대해 끝내 비판적으로 보인다.  







이민정은 하고 싶은 의도를 명확히 말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인터뷰이였다.

/사진 이석우 기자


이민정(29)은 요즘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보며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버스 옆구리에 자신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포스터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2012년 만날 첫 한국영화인 <원더풀 라디오>(1월5일 개봉)는 이민정의 첫 타이틀롤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이민정은 왕년의 아이돌 그룹 출신 라디오 DJ 신진아로 등장한다. 이제는 알아보는 이 많지 않은 연예인이지만, 자존심만은 전성기 못지않다. 청취율이 저조해 폐지 위기에 몰린 프로그램 ‘원더풀 라디오’에 새 PD 이재혁(이정진)이 투입된다.

신진아와 이재혁은 티격태격하면서도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 와중에 청취자의 애절한 사연과 노래를 담은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원더풀 라디오’는 전기를 맞는다.

역할을 위해 기타를 배운 이민정. F코드만 빼면 대략 잡는다고.

영화는 최근 2~3년 사이 정상급 스타로 부상한 이민정의 매력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민정은 연기하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춘다. 이승환이 만들고 이민정이 부른 ‘참 쓰다’는 음원 차트에도 올랐다.

1990년대 아이돌 그룹 ‘퍼플’ 시절을 재연하는 장면에선 이제는 아무도 입지 않을 ‘요정’풍의 의상을 소화했다. 그 와중에 머리 절반가량을 뒤덮는 리본까지 달았다. 이민정은 “그 옷 입고 되게 많이 웃었다”고 전했다.

<원더풀 라디오> 현장에서 이민정은 순발력 있고 기본기 좋은 배우였다. 극중 신진아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컴퓨터를 많이 다뤄본 적이 없어 독수리 타법으로 작업하는 장면, 방송 중간에 과자 등의 주전부리를 먹는 장면, 매니저(이광수)와 티격태격하는 장면 등은 애초 각본에 없었다.

찐 옥수수를 먹는 장면에서 권칠인 감독은 “들고만 있으라”고 얘기했는데, 소품팀이 ‘지나치게’ 맛있는 옥수수를 구해오는 바람에 2개나 먹어버렸다.

<원더풀 라디오>의 신 스틸러 이광수(오른쪽)

대학 연기예술학부에 진학했지만 이민정은 애초 연출, 제작에 뜻을 품고 있었다. 학기 말 과제로 동료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다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 3학년 때 이윤택이 연출한 <서툰 사람들>에 출연한 뒤 ‘이 연극 보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관객의 평을 읽었다. 이민정은 “눈물이 났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직업이라면 내가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뒤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10대 초·중반부터 연예인을 꿈꾸는 소녀들이 즐비한 세상이었다. 출발이 늦었다.

오디션에 떨어진 횟수는 셀 수가 없다. 겨우 캐스팅까지 됐으나 대본 연습 전날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지금도 이민정은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캐스팅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독립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데뷔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민정은 “2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못해봐서 아쉽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자유인’으로 보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치면 ‘여신’이란 수식어와 함께 검색되는 스타지만, 이민정은 그 이전에 욕심 많은 배우였다. <원더풀 라디오>의 애초 시나리오에는 신진아의 추락이 좀 더 극적이고 과격했는데, 각색과 편집 과정에서 순화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상영시간의 제한 때문에 이재혁과의 감정신이 잘려나간 점도 안타깝다.

30대를 눈앞에 둔 이민정은 지금 ‘대세’다. 그러나 이민정을 대세로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닌, 배우 개인의 야심과 준비였다.

/사진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