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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 수입사의 '개입'에 대해. <아마조니아>와 <숀더쉽>의 경우 (1)




휴가 기간중 아이와 온전히 며칠을 보낼 일이 생겨 두 차례 극장 나들이를 했다. 방학임에도 어린이 영화의 회차가 매우 적어 한정된 시간을 노려야 했다. 처음 본 영화는 다큐멘터리 <아마조니아>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아마존의 생태계를 다룬 영화다. 프랑스, 브라질 합작의 이 영화는 도시에서 자란 샤이라는 새끼 원숭이가 비행기 사고로 아마존 한복판에 추락한 뒤 그곳에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이야기다. 샤이는 당연히 아마존의 생태에 대해 무지하고 생존 능력도 떨어지지만, 이런저런 조력자의 도움과 유전자에 내재한 능력으로 어떻게든 생존해 나간다. 제작진은 야생동물 보호소에 있던 꼬리감는원숭이를 아마존에 적응시킨 뒤 영화에 '출연'시켰다고 한다. 


한국의 수입사는 <아마조니아> 상영본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아마도 어린이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티비 자연 다큐에서 볼법한 해설자를 등장시켰고, 샤이를 비롯한 각 동물들에 따로 대사를 줘 목소리를 입혔다. 원본이 어땠는지 확인할 길은 없으나, 난 한국 수입사가 이런 대사들을 '창작'했다고 강하게 의심한다. 일단 대사가 지나치게 디테일하다. 대사는 동물들이 처한 상태는 물론, 감정까지 모조리 해설한다. 대사는 때로 해설을 넘어 해석까지 시도한다. 제작진 역시 샤이라는 원숭이를 '출연'시킴으로써 최소한의 플롯을 구성했다고 할 수 있지만, 한국 수입사는 이 플롯을 사실상 재창조했다. 원본 영상은 느슨하지만 큰 흐름을 이해하는데는 무리가 없었으나, 한국 상영본은 꽤 수다스러워졌다. (역시 해외 예고편을 보니 대사는 물론 해설도 없다.) 샤이와 포식자를 교차 편집하는 것만으로 관객은 샤이가 위험에 처해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만, 대사는 샤이의 공포를 다시 한번 강조한다. 83분짜리 영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어린이들이라면 이 정도 장면은 대사 없이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설령 이해하지 못했더라도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친절한 한국 수입사는 자연을 그대로 담은 영상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아마조니아>의 '주연', 샤이. 


<숀 더 쉽>은 영국의 클레이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아드만 스튜디오의 신작이다.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들이 그래왔듯이 영특한(혹은 영악한) 동물, 어수룩한 인간이 나온다. 수면, 기상, 식사, 양털깎기, 운동 등의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양들은 약간의 기지를 발휘해 농부를 수면 상태에 빠트린 뒤 작은 일탈을 도모한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져 농부는 얼떨결에 대도시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기억을 상실하고, 양들과 양치기개가 농부를 찾아 도시에 나가 소동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숀 더 쉽>에는 대사가 거의 없지만, 한국 수입사는 이번에도 결정적인 순간 개입했다. 바로 오프닝 크레딧에서 'The Farmer'라고 표기된 농부를 '아빠'라고 번역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자막을 읽은 아이는 내내 농부를 양들과 개의 아빠로 인식했다.) 인간이 양과 개의 아빠일 수는 없지만, 동화의 세계이니 허용된다고 치자. 그런데 그냥 농부를 농부라고 표기하지 않고, 굳이 아빠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수입사의 고민이 이해안되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을 강요하는(심지어 양들은 털깎기를 상당히 무서워한다) 농부를 사실상 기절시킨 뒤 농부의 집에 들어가 티비를 보거나 요리를 하면서 '반란'을 꾀하던 반항기 있던 양들이 갑자기 위기에 빠진 농부를 구하기 위해 도시로 나가 죽음을 불사한다는 이야기가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양들은 심지어 압제자의 수족인 개와도 연대한다. 양의 입장에서 보면, 개는 같은 동물이면서 인간의 편에 붙은 배신자다. 양의 반란의 덕을 본 것은 오히려 돼지다. 돼지들은 양들이 농부를 찾아 도시로 나간 사이, 집을 그야말로 엉망으로 만들면서 즐긴다. 양은 왜 자기가 쫓아낸 압제자를 불러오기 위해 떠났는가. 한국 수입사는 그 압제자가 '아빠'였다면 이 동기를 이해하기 쉽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농부와 양의 관계를 압제자와 피압제자가 아닌, 노동자와 사용자 같은 일종의 계약 관계라고 보면 어떨까. 그래도 한국 상황에서는 이런 계약 관계에서 그토록 끈끈한 연대의식이 발휘될 것이라고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아빠'라는 호칭은 이런 난제를 풀기 위한 고육책일 가능성이 크다.  



네네. 비틀스는 영국의 자랑스러운 밴드고, <숀 더 쉽>은 영국영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