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에 해당되는 글 2건

  1. '스타트렉'과 소화가능한 윤리적 딜레마
  2. 단 하나의 파격, <스타 워즈: 깨어난 포스> (3)





'스타워즈'는 신화적이고 '스타트렉'은 철학적이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금 유보적인 표현을 쓴 이유는, 이 두 시리즈에 대한 팬덤이 너무나 강력해 뭐라고 함부로 말을 보태기가 무섭기 때문이다. 


조셉 캠벨이 잘 지적했듯 '스타워즈'는 신화에서 볼법한 오랜 영웅 서사를 담았다.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이 자신의 고귀한 신분과 소명을 깨닫고 머나먼 여정에 나서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큰 고난을 당했다가, 결국 극복하고 목적을 성취한 뒤 고향으로 돌아온다. 여기에 루크 스카이워커와 다스베이더 부자의 오이디푸스 궤적도 엮여있다. 요즘 나오고 있는 시퀄 시리즈에선 고아 소녀 레이에게 루크의 궤적을 따르게 하는 것처럼 보였다가 조금의 뒤틀림을 줬는데, 이 때문에 팬덤에서는 거센 반발이 있다고도 한다. 이렇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구조에 기반한 '스타워즈'의 등장인물은 대체로 왕, 귀족, 기사, 유목민의 속성을 지닌다. 


하지만 '스타트렉'의 등장인물은 기본적으로 군인, 과학자, 탐험가다. 행성연방 소속의 우주선에 탑승한 이들 대원들은 미지의 우주를 탐험하는데, 그 과정에서 연방에 대항하는 적들을 만나 전투를 벌이거나, 미지의 행성 종족들의 낯선 풍습에 당황하기도 한다. 함선의 명칭과 대원들을 달리 하며 몇 차례의 시리즈가 이어져온데서 알 수 있듯, '스타트렉'에는 '스타워즈'에서 보이는 '중심 서사'랄 것이 없다. '스타트렉'은 기본적으로 단막극에 가깝고, 각 에피소드에서 각자 사건을 해결하고 윤리적 교훈을 주곤 한다. '스타워즈'는 전편을 보지 않으면 다음편에 정붙이기 어렵지만, '스타트렉'은 그 연계성이 희미하다. 


새로운 '스타트렉' 텔레비전 시리즈인 '스타트렉: 디스커버리'가 15개의 에피소드로 최근 끝났다. 두번째 시즌도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디스커버리'에는 몇 가지 새로운 설정이 있었다. 시리즈 최초로 선장이 아닌, 대원이 주인공이다. 게다가 그 대원은 반역죄를 저질렀다가 일시적으로 사면된 흑인 여성이다. 이 여성의 이름은 남성적인 마이클 버넘이다. 마이클이 보필하던 선장 필리파 조지우도 여성(양자경)이다. 조지우의 상급자인 제독도 여성이다. 남성은 악당이거나, 조력자 정도다. 중요한 또다른 남성 캐릭터가 있는데, 암시적이었던 예전 시리즈와 달리 동성애자임을 확실히 드러낸다. (동성 간의 키스신이 있다)


'디스커버리'는 9편까지 잇달아 방영되었다가 잠시 휴방후 10편부터 다시 방영되었다. 그리고 10~15편은 사실상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9편 마지막에 디스커버리호는 위험천만한 여정을 마치고 기지로 귀환하기 위해 스포어 점프를 시도하는데, 이후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도착한다. 디스커버리호가 도착한 곳은 일종의 평행우주로 드러난다. 그러니까 디스커버리호가 위치했던 우주와 정확히 같은 인물들이 살고 있지만, 역사는 전혀 달리 진행된 곳이다. 현우주의 인간이 민주적이고 이상적인 연방제를 추구한다면, 평행우주의 인간은 무력에 근간한 독재, 제국을 구성하고 있다. 현우주에서 민주적인 리더십의 선장 필리파가, 평행우주에선 피도 눈물도 없는 제국의 황제다. 디스커버리호는 우여곡절 끝에 현우주로 돌아오지만, 그 사이 연방은 숙적 클링온의 기세에 밀려 전쟁에 거의 진 상태였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전쟁을 이기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마이클이 현우주로 충동적으로 데려온 평행우주의 황제가 유용해진다. 연방은 평행우주의 독재자 필리파의 리더십을 빌리려 한다. 필리파는 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포로에 대한 고문을 서슴지 않는다. 승리, 생존이라는 목적을 위해 이상과 원칙에 어긋나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허용된다. 미국이 좀 더 효율적인 대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해 도입한 '강화된 심문기술' 같은 것. 


물론 '디스커버리'는 청소년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시리즈. 파국적이고 암울한 결말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건 '스타트렉' 시리즈의 이상적이고 희망차고 낙관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으니까. '목적을 위해 수단은 정당화되는가'라는 윤리학의 오랜 딜레마를 슬쩍 던졌다가 회수하는 솜씨는 미국의 텔레비전 시리즈가 허용하는 적절한 수준이다. 시즌 2를 보고 싶다. 





'스타트렉: 디스커버리'의 주인공 마이클 버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역력하다. 

현우주에선 자애로웠던 필리파 조지우 선장이 평행우주에선 무자비한 황제로 등장한다. 양자경이 상반된 역할을 잘해냈다. 솔직히 황제 역은 최고였다. 





**스포일러 있음


J J 에이브럼스가 바톤을 넘겨받은 스타워즈 신작 <깨어난 포스>를 봤다. 줄거리의 이음새가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며, 어색하지 않은 컴퓨터 그래픽 화면이 연말 극장가의 한 자리를 차지할 상업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솔직히 불만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에피소드 7, 8, 9가 아니라 70, 80, 90도 만들 수 있다. <깨어난 포스>의 구도는 에피소드 4와 거의 비슷하다. 다른 등장인물이 등장해 앞선 영화와 같은 역할을 할 뿐이다. 드로이드가 사건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고, 자신의 힘을 깨닫지 못한 영웅이 있고, 결국 이 영웅이 힘을 깨닫고 수련해 가는 과정을 예기하며, 악당은 대체로 한 점의 반성도 없는 순수 악 그 자체이지만, 그 중 행동대장 격인 인물은 일말의 망설임이 있다. 심지어 아버지 한 솔로가 아들 카일로 렌에게 찔리는 장면은 아들 루크 스카이워커가 아버지 다스 베이더에게 패배하는 장면의 패러디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래서 루크가 다스 베이더에게 당할 때만큼의 비장함은 없다) 



쓸 필요 없는 가면을 쓴 카일로 렌 


아마 원작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을 것 같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팬덤, 관련 산업의 규모, 문화적 영향력 측면에서 20세기 영화산업의 최고 히트작이라 할만하다. 원작 팬의 심기를 거스를 일을 하기는 사실상 힘들었을 것 같다. 감독은 이전 시리즈를 안 본 관객도 즐겁게 볼 수 있게 만들었다고 했고 그 말도 맞긴 하지만, 새 관객과 옛 관객이 느끼는 감격의 크기는 비교가 안될 것이다. 한 솔로와 추바카가 밀레니엄 팔콘 호에 올랐을 때, 한 솔로와 레아가 만났을 때, 레이가 루크의 라이트 세이버를 발견했을 때, 그리고 레이가 은둔한 루크를 찾아 그 라이트 세이버를 건냈을 때의 감격은 전작에 익숙한 관객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다리꼴로 올라가는 자막은 물론이고. 



이 분들 처음 나왔을 떄 우는 사람 있었을듯. 해리슨 포드는 정말 좋은 배우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퍼스트 오더의 기계같은 군인으로 훈육됐던 핀이 동료의 피를 본 뒤 각성해 스톰 트루퍼를 탈출한다는 설정은 흥미로웠다. 스타워즈에서 피가 명시적으로 나오는 건 아마 처음이고, 핏줄 혹은 운명에 의한 각성이 아닌 상황에 따른 각성을 한 인물도 핀이 처음인 것 같다. 다만 무고한 인간들을 죽이는게 싫어 군대를 벗어난 그가 옛 동료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죽이는 모습은 이상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깨어난 포스>는 앞선 시리즈의 광휘를 고스란히 물려받겠다는 선택을 했지만, 몇 가지 변화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큰 것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 어쩌면 이 변화 하나가 혁명적이다. 처음 보는 영국 여배우인 데이지 리들리가 연기한 레이란 인물은 (아마 앞으로 밝혀질) 출생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며, 수년간 수련을 쌓은 카일로 렌이 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포스를 갖고 있으며, 탁월한 비행술과 수리 능력도 갖고 있다. 아나킨 스카이워커, 루크 스카이워커도 보여주지 못한 능력을 레이가 보여준다. 분명한 영국식 액센트를 사용하고, 그래서인지 어딘지 젊은 시절의 키이라 나이틀리를 연상케하는 이 배우는 단선적일지라도 똑부러지게 제 역할을 해냈고, 그래서 루크 스카이워커의 법통을 이어받는 이가 여자라는 파격을 잊게 만든다. 레이가 우마 서먼처럼 칼질을 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카일로 렌, 핀, 스노크보다 레이가 겪을 운명이 더 궁금하다. <스타워즈>에 여자 주인공이 나온 마당에, 007을 여자로 만들거나, 배트맨 시리즈가 망하고 캣우먼 시리즈가 득세하지 말란 법도 없다. 하긴 <헝거 게임> 시리즈의 제니퍼 로렌스가 이미 여성이 주인공인 액션 영화의 가능성을 보이긴 했다. 레이와 핀의 관계가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처럼 보인다는 점도 생각해볼 여지를 남긴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니 <깨어난 포스>의 여성 주인공은 '신의 한 수'같고, 나는 이 점이 아니었으면 이 영화를 별로 재미있게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신의 한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