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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웨이팅 포 언아더 슈퍼맨, <슈퍼맨 리턴즈> (6)

먼지 쌓인 DVD 선반을 보다가 <슈퍼맨 리턴즈>에 눈이 머물렀다. 그동안 뜯지도 않은 비닐을 벗겨내고 플레이어에 넣었다. 아마 잭 스나이더의 슈퍼맨 영화인 <맨 오브 스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내 안의 무언가를 자극했겠지. 


2006년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시원치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찾아보니 2억 달러 제작비를 들여 전세계적으로 3억9천만 달러를 벌여들였으니 장사는 생각보다 잘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슈퍼맨 신작을 기다려온 대중을 충분히 만족시킨 것 같지는 않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가 잘나가던 엑스맨 시리즈를 버리고 슈퍼맨 프로젝트로 합류한 브라이언 싱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아마 엑스맨의 팬들은 "어디 잘되나 보자"는 심정이었을테지) 아니나 다를까,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 차기작 소식은 사라졌고, 결국 배우와 감독을 모두 바꾸어 새로운 슈퍼맨이 나오기 직전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데 난 다들 시큰둥했던 이 영화를 그때에도 좋아했다. 이번에 다시 <슈퍼맨 리턴즈>를 보면서 당시 내가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와, 관객이 별로 안좋아했던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싱어의 슈퍼맨은 너무나 종교적이다. 그렇게 보지 않을 수 없을만큼. 아버지 조엘은 하나뿐인 아들 칼엘을 지구로 보낸다. 독생자 예수, 아니 칼엘. 그는 지구 상공에 떠서 한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인간들의 고통을 듣는다. 그리고 그들을 돕는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는데도. 



피...피에타?


그도 인간의 희로애락을 느끼는가. 그런 것도 같다. 옛 연인 로이스 레인은 슈퍼맨이 지구를 비운 5년 사이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클라크 켄트로 변장한 슈퍼맨은 살짝 동요한다. 그러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브랜든 라우스라는 이름의, 이 영화 이전과 이후의 출연작이 눈에 띄지 않는 그 배우가 연기를 별로 못했기 때문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겉보기엔 침착하지만 속으로는 인간적인 감정이 솟구치는 남자를 원했다면, 브라이언 싱어는 아예 다른 배우를 선택했을테지.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은 그렇게 인간적인 감정을 어느 정도 넘어선 남자다.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기엔, 지구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 슈퍼맨이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원하니 어쩌겠는가.  


종반부의 한 장면. 다시 한번 지구를 구한 뒤 탈진한 모습으로 성층권 높이에서 지상으로 자유낙하하는 슈퍼맨. 그는 양팔을 어깨 높이로 벌린채, 두 다리는 가지런히 모은 채 떨어진다. 2000년전 누군가가 십자가에 못박힌 바로 그 포즈로. 아마 대형 교회에서 이 영화를 함께 보면서 간증의 시간이라도 갖는다면 어떨까. 



세상을 굽어보시는 전능하신 슈퍼매느님


예수가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가졌다면, 슈퍼맨은 인성과 외계인성을 동시에 가졌다. 그 비율은 2:8 정도가 아닐까. 억만장자 배트맨은 사회가 처한 도덕적 딜레마에 부딪히고, 그만큼의 억만장자 아이언맨은 바람끼를 주체하지 않고, 신의 아들 토르마저 권능을 잃고 지상으로 내팽겨쳐지는 요즘 영화계에서, 자질구레하지만 막상 겪는 이에겐 태산 같을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을 입가의 보일까 말까한 미소 하나로 표현하는 외계인, 기계, 강철 같은 남자에게, 어느 관객이 스스로를 이입할 수 있을 것인가. 아이언맨이 섹시한가, 슈퍼맨이 섹시한가. 그건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나 브랜든 라우스의 개인 역량을 넘어서는 물음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슈퍼맨은 애정이 아닌, 숭배의 대상이다. 우리는 원하기만 하면, 그를 맞이할 수 있다. 슈퍼맨은 말한다. "언제나 당신 곁에 있겠다"고. 많은 남자들이 연인에게 이런 약속을 하지만, 진짜 그 약속을 지킬 수는 없다. 변심해 헤어질 수도 있고, 친구들과 술마시느라 미필적 고의로 연인의 문자를 씹을 수도 있고, 설령 바보같이 착하고 연인에게 충실한 남자라 하더라도, 바다 속으로 반쯤 들어간 난파선 속에서 가라앉아가는 연인을 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슈퍼맨은 한다. 


물론 우리는 슈퍼맨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연인에 대한 사랑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사랑일 수밖에 없다. 내가 마음 먹기만 하면 언제나 나를 찾아오는 남자, 슈퍼맨, 그리고 예수. 사랑을 갈구하는 이들, 특히 여성들이 교회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의 악당 렉스 루터 역시 조금 이상하다. 천하의 악당 배우인 케빈 스페이시가 머리를 밀고 나왔는데도, 존재감 아니 사실감이 없다. 마치 슈퍼맨이 인간적이지 않은 것처럼, 렉스 루터 역시 악당이 있긴 있어야 하니까 존재하는 인물 같다. 그는 스스로가 신으로부터 불을 훔친 프로메테우스인 듯 행동하지만, 크립토나이트 하나 믿고 슈퍼맨에게 덤비는 그의 모습은 차라리 애처롭다. 할리우드의 슈퍼히어로물을 보면서 악당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그래도 <슈퍼맨 리턴즈>의 렉스 루터만큼 아무런 긴장감을 못일으키는 인물도 없을 것 같다. 대머리에 힘이 약하고 그다지 철저하게 사악하지도 않은 인간이 신의 아들을 이길 수 있을리 없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맨 오브 스틸>의 악당은 인간이 아니라 크립톤 행성 반란군이라고. 그래. 이 정도는 돼야 슈퍼맨의 적수에 이름을 올리지)





<슈퍼맨 리턴즈>의 슈퍼맨(위)과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 아래쪽은 빨간 팬티를 입지 않았다?  


슈퍼맨은 단순한 정의감으로 뭉친 영웅이다. 배트맨의 윤리적 딜레마를 겪지도, 아이언맨을 괴롭히곤 하는 자기파괴의 수렁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는 하나의 몸을 가졌지만, 누구나 간절히 원하면 언제나 그곳에 나타난다. 무소부재. 그것은 신의 속성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