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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순례의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임순례 감독은 채식주의자다. 지난 부산영화제 때 어느 영화사가 회집에서 연 파티에서 만났는데, 그 많은 회를 두고 풀만 먹고 있었다. (물론 소주는 잘 마셨다.)
 
그가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이렇다. 된장찌개인지 무엇인지를 끓여먹기 위해 검은 비닐봉지에 바지락을 한가득 사왔다. 그것을 마루에 두고 잠시 잊었는데, 한밤에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더라는 것이다. 깜짝 놀라 살펴보니 살아있는 바지락이 껍질을 열고닫으며 바스락대고 있었다. 차마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던 바지락이 살겠다고 꼬물락거리는 모양이라니. 그는 이후 바지락은 물론 고기도 입에 대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동물보호단체의 대표다. 해마다 복날이면 인사동에서 개를 먹지 말자는 시위를 벌이고, 절을 찾아가 죽어간 개들을 위한 위령제도 올린다. 그의 전작은 <날아라 펭귄>, 막 개봉하는 영화는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다음 작품은 옴니버스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이다. 물론 앞의 2편에서 동물은 직접적 소재라기보다는 은유지만, 아무튼 재미있는 상황이다. 

임순례 감독의 인터뷰를 옮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지난 사랑의 잔여물을 되새기는 멜로드라마이자, 인간본성을 찾아나서는 불교 구도극이고, 한국의 아름다운 산하를 누비는 로드무비다. 소외된 이웃들의 비루한 삶을 정직하게 응시해왔던 임순례 감독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이 영화는 김도연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임 감독이 소설 원작을 각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도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이제 기존의 것과 조금은 다른 걸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4일 5번째 장편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의 개봉에 맞춰 임 감독을 최근 만났다. 


-김영필, 공효진이 ‘인간 주인공’이지만, ‘먹보’란 이름의 소가 눈에 띈다. 

“시나리오에선 암소라고 설정돼 있었는데, 황소 먹보를 보는 순간 비주얼에 흡입력을 느꼈다. 암소보다 출연료도 비쌌다. 트럭에 타고 내리는 정도는 먹보 혼자 연기했다. 다만 앉히는 게 힘들었다. 소가 잘 때 빼고는 잘 앉지 않는다. 1~2시간 산보를 시켜 피곤하게 한 뒤 앉히는 연기를 시키곤 했다. 촬영 중에 구제역이 발생해 도시 간 이동을 못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소에 관심이 많았나.

“평소 소에 대해선 눈이 착하다는 생각 정도였다. 두달 촬영하면서 저와 스태프 모두 소에 대해 많은 걸 얻고 느꼈다. ‘소가 이 정도로 인간과 교감이 가능한 동물이었구나’ 하는 것. ‘쫑파티’ 할 때 스태프들이 그랬다. 소를 고기로만 생각했지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조감독 2명이 소시장 헌팅 다니다가 팔려가면서 눈물 흘리는 소를 봤다더라. 그 뒤로 쇠고기를 못먹겠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영화 하면 (가난해서) 어차피 못먹을 텐데 그렇게 깨달음 얻고 안 먹는 게 낫겠다’고 했다.(웃음)”

임 감독은 동물에 관심이 많다. 현재 동물보호단체 카라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유기견 3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에 출연한 개 워리의 앞날이 불투명하자 직접 사서 안전한 집으로 분양했다. 차기작은 옴니버스 영화 <동물과 함께 사는 세상> 중 길고양이를 다룬 <고양이 키스>다. 그는 “소에게 연기를 시켰다고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존중하고 잘 대해줬다. 힘들거나 피로해하면 쉬게 하고 배려했다”고 전했다. 개든 소든 좋은 마음을 주면 좋은 마음과 연기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공효진은 어떻게 캐스팅했나. 


“쿨하고 당당하고 뻔뻔한 여자 캐릭터가 필요했다. 시나리오상에는 30대 후반 여자였는데, 공효진은 나이만 빼놓고는 잘 어울렸다. 게다가 공효진에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어떨 때는 발랄한 20대 같고, 어떤 때는 30대 중반 같다.”



임순례 감독


-김영필은 스크린에선 얼굴이 낯설다. 스스로도 ‘박해일 형’이라고 소개할 만큼 그와 느낌이 유사하다. 임 감독이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 박해일 느낌을 좋아하는 건가.


“박해일은 박근형 연출의 <청춘예찬>을 보고 캐스팅했다. 김영필도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다. 어떻게 보면 박근형 연출이 좋아하는 배우를 좋아하는 셈이다.(웃음)”

-현실과 환상이 뒤섞이는 후반부는 사실주의를 추구했던 임 감독의 영화에선 낯선 분위기다. 

“‘눈으로 보는 것이 진짜, 그렇지 않은 것이 가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불교에서 전하는 이 가르침이 영화 주제와 연결된다. 일부러 색다른 걸 만들려고 하진 않았다. 판타지를 구사했지만, 다른 감독과는 다르게 현실과 차별되지 않게 했다. 이게 현실인지 환상인지, 꿈인지 생시인지 관객들이 헷갈려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포스터만 보면 애잔한 멜로영화 같다. 영화의 의도와 마케팅이 어긋나는 것 아닌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스님이나 (극중 등장하는 절인) 맙소사, 연꽃을 마케팅할 수도 없고…. 멜로영화 보러와서 구도영화를 본다면 황당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덜 감각적이라 하더라도 관객들이 ‘이게 뭐야’ 하기보다는 ‘예상과 다른 걸 봤지만 좋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다. 게다가 관객들이 임순례에게 무슨 멜로를 기대하겠나.(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