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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과 진보를 믿지말라, <불멸화위원회> (4)

불멸화위원회

존 그레이 지음·김승진 옮김/이후/300쪽/1만6500원


1983년 가수 민해경은 ‘서기 2000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서기 2000년이 오면 우주로 향하는 시대/우리는 로켓트 타고 멀리 저 별 사이로 날으리/그때는 전쟁도 없고 끝없이 즐거운 세상/그대가 부르는 노래 소리 온 세상을 수놓으리/사바 사바 사바 그날이 오면은/사바 사바 사바 우리는 행복해요” 


민해경의 ‘예언’은 일부 맞고 대부분 틀렸다. 성층권까지 올라가 자유낙하를 감행한 사내가 있긴 하지만, 우주여행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언감생심이다. 1, 2차 세계대전같은 대규모 전쟁은 없지만, 아프리카, 중동 지역의 국지전은 오히려 잦아졌다. 결정적으로 틀린 부분은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기대다. 한국인은 30년전보다 즐겁고 행복한가. 경제가 발전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지만, 자살률은 그보다 높아져 세계 2위다. 그러나 민해경을 탓할 건 없다. 미래엔 인류 모두가 번영과 행복을 누릴 것이며, 특히 과학 발전이 그것을 추동하리라는 기대는 많은 현대인이 공유했다.


현대보다 훨씬 급격한 과학 기술의 발전을 목도한 19세기 말 유럽의 지식인들은 조만간 도래할 유토피아의 환상에 휩싸였다. 심지어 이러한 환상은 지금까지 지구에 살았던 모든 인간이 거쳐야했던 최종 관문, 즉 죽음마저 물리칠 수 있다는 망상으로 이어졌다. 


런던정경대학에서 유럽 사상을 가르치는 존 그레이는 <불멸화위원회>(원제 The Immortalization Commision)에서 이러한 망상의 두 가지 사례를 살핀다. 하나는 빅토리아 시대 영국에서, 다른 하나는 혁명 초기 소련에서 일어났다. 이들은 과학적 방법론을 채택한 진시황의 후예들이었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당시 영국 지식인들에게 열광의 대상이자 불안의 근원이었다. 19세기 영국 사회가 대단한 종교적 열정에 휩싸여 있었다고 말하긴 힘들겠지만, 설령 불가지론자라 해도 인간이 지구에서 가장 특별한 종이라는 믿음은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윈은 <종의 기원>(1859)을 통해 이 믿음을 박살냈다. 인간이 자연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다른 모든 종과 같은 수준이며,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이란 없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게다가 다윈의 진화에는 진보도, 목적도 없었다. 인간이란 종의 출현은 신의 섭리나 우주의 목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우연한 사건에 의해서였다. 


지식인들은 명백한 증거 앞에 다윈의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종교인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지만, 다윈주의의 거대한 흐름을 막진 못했다. 그럼에도 지식인들은 불안해졌다. 정말 인간은 철창 너머 침팬지와 비슷한 존재란 말인가. 우리 삶에는 숭고한 목적이 없으며, 역사는 밝은 내일을 향한 진보가 아니란 말인가.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윤리관을 간직하고, 앞으로 펼쳐질 인류의 가능성을 믿었던 이들에게 이것은 난제였다. 윌리엄 제임스, 앙리 베르그송, 존 러스킨, 알프레드 로드 테니슨 같이 저명한 지식인들은 오늘날 보기엔 황당한 학회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이 회장을 역임하거나 모임에 참여한 ‘심령연구학회’는 초자연 현상을 “편향되지 않은 과학적 방법”으로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됐다. 심령연구학회는 심령 사진, 강신술 등에 얽힌 속임수를 폭로하면서도, 자신들이 과학적 방법으로 내세의 존재, 영혼의 불멸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동 기술(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글의 내용을 의식하지 못한 채 무언가에 이끌리듯 글을 쓰는 것)을 통한 교차 통신(망자가 저승에서 보낸 메시지를 복수의 영매가 따로 수신해 내용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이를 보여주려고 했다. 


심령연구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사상가 헨리 시지윅은 다윈주의와 기독교 신앙 사이에서 갈팔질팡했다. 다윈주의를 따르자니 도덕적 의무가 희미해질 것 같았고, 기독교 신앙을 고수하자니 비합리적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믿음이 아니라 과학으로 내세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목적 없이, 함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자 했다. “시지윅은 과학으로부터 구원받기 위해 과학에 기대었다. 과학이 세계를 탈주술화했다면, 과학만이 세계를 재주술화할 수 있을 것이었다.”


고전학자 프레데릭 마이어스는 처음엔 심령주의를 거부했다. 그것은 마치 “천국의 저택에서 앞문으로 내동댕이쳐진 다음에 뒷방 쪽문으로 다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목적 없는 과정’으로서의 다윈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인류와 과학의 진보에 대한 마이어스의 믿음이 너무나 강했다. 마이어스에게 진화란 이승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저승까지 뻗어나가는 것이었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라기보다는 우주적 진보의 한 단계였다.”


심령학자와 비슷한 시기에 왕성히 활동했던 우생학자는 모두 인간의 진보에 대한 신념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면모가 있다. 우생학자가 이승의 결함 있는 인간을 없애려 했다면, 심령학자는 저승의 육신이 결함 없는 상태라고 믿었다. 말하자면 심령학은 ‘정신의 우생학’이었다. 심령학과 우생학은 결합해 기묘한 계획을 세웠다. 사후 세계의 완전한 인간들이 이승의 여성에게 연락을 취해 ‘영혼의 아이’를 낳도록 한다는 계획이었다. 심령학자들은 이 아이가 인류를 혼돈에서 구원할 메시아적 임무를 갖고 태어났다고 믿었다. 당시 아이 아버지는 60세의 귀족이었는데, “자신이 속한 계급의 규범에 따라” 아이의 핏줄에 대한 의심을 공공연히 말하진 않았다. 어거스터스 헨리 쿰브 테넌트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케임브리지대를 졸업한 후 입대해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전역 후에는 첩보기관에서 일했으며 훗날 수도사가 돼 수도원에서 여생을 보냈다. 쿰브 테넌트는 어머니와 친밀했던 심령학자들의 ‘계획’을 전해듣지 못했는지 메시아를 연상시키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았다. 


매우 개인적인 감정에서 사후 세계를 연구한 이들도 있었다. 에드먼드 거니는 누이 중 세 명을 익사 사고로 잃었다. 견딜 수 없는 상실감을 이겨내기 위해 그는 내세의 누이들과 소통하려 했다. 누이의 영혼이 소멸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어딘가에 있다면, 당장의 슬픔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한 거니는 죽는 순간까지 영혼이 불멸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  


심령학자들의 교차 통신 연구는 1930년대 초에 끝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의 이끌림대로 써내려간 문자들을 하나의 메시지로 통합해낼 방법이 그들에겐 없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부 영국 엘리트들은 ‘혼돈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혼의 불멸성을 연구했지만, 그들은 정작 눈앞에 거대한 혼돈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바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다. 



이것은 '과학'입니다. 


마르크스주의를 선형적인 진보사관으로 해석한 소련의 혁명가들은 다른 맥락에서 죽음을 연구했다. 그들은 과학의 힘으로 죽음을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볼셰비키의 지도자들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은 나머지, 인간이 신격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건신주의라고 부른다. 소설가 막심 고리키는 이렇게 썼다. “나는 인간을 기계라고 상상하는 편을 좋아한다. 소위 ‘죽은 물질’들을 정신의 에너지로 스스로 바꾸어 내고, 먼 미래에는 세계 전체를 순수하게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 바꾸어낼 기계로 말이다.” 그들에게 혁명이란 사회구조의 급진적 변혁일 뿐 아니라 새로운 인간의 탄생이기도 했다. 


이제는 분명히 드러났다시피,스탈린 치하 소련 사회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새로운 인간으로 가득찬 사회를 만들겠다는 발상은 그럴싸하나, 이를 위해 새롭지 않은 인간은 제거돼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끔찍했다. 고리키는 말했다. “러시아 시골에 있는 반쯤 야만인에, 멍청하고 비협조적인 사람들은 죽어 없어질 것이다.…그리고 그 자리는 학식과 지성이 있으며 열정적인 새로운 종류의 인간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소련의 인간 불멸 프로젝트는 최초의 지도자 레닌의 시신 처리에서 상징적으로 표현됐다. 1924년 1월 21일 레닌의 사망이 발표되자 시인 마야코프스키는 “지금도 레닌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생생하게 살아 있다”고 말했다. 레닌의 장례식 주관자들은 이를 시적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다. 그들은 레닌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하기로 했다. 당시엔 레닌을 냉동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물론 냉동의 궁극 목표는 레닌을 되살려 내는 것이었다. “성자의 육신은 부패하지 않는다”는 러시아 정교회의 믿음은 소련의 과학 기술을 통해 실현됐다. 당시 레닌의 장례 위원회 이름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불멸화위원회’다. 


볼셰비키들은 스스로를 어떠한 신비주의도 거부하는 합리주의자라고 여겼다. 그러나 지상낙원이라는 신화를 구현하고 죽음을 정복하고 과학기술을 신처럼 숭배했다는 점에서 이들은 그 어느 시대의 종교인들보다 더한 신비주의자였다. 내일의 지상낙원을 위해 오늘의 사람들이 고통받았다는 사실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에도 출간된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추악한 동맹> 등을 통해 ‘반(反) 휴머니스트’의 면모를 보여준 그레이는 ‘달콤한 필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영국의 심령학자들처럼 사후 세계의 영혼들과 교신하려는 이도, 소련의 혁명가들처럼 정치적 구원의 가능성을 믿는 이도 드물지만, 여전히 인간이 풀 수 없는 문제를 풀겠다고 시도하는 이들은 있다. 그레이는 ‘불멸주의’가 ‘인간 소멸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불멸하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결국 인간으로서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과학과 주술은 달라 보이지만, 둘 다 세계가 어떤 법칙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전제한다. 그러나 그레이는 묻는다. “왜 세계가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혹은 이런 법칙들을 인간이 알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물론 과학을 통한 세계의 탐구, 정치적 진보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맹신해서도 안된다. 이것들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처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내세나 유토피아에는 낙엽이 지지 않는다. 그곳의 나뭇잎은 언제가 푸른색이다. 그러나 지금 창밖의 가로수를 보라. 서서히 노란빛으로 물들어가는 은행잎, 썩은 냄새를 풍기기도 하는 은행열매, 이것이야말로 현세의 아름다운 증거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