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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롯데 월드타워를 보면서 <매드 맥스>를 생각한다 (2)





**스포일러 있음. 


일요일 조조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보았다. 마침 재개장한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점에서도 가장 크다는(세계에서도 가장 크다는) 슈퍼G관에서였다. 엉뚱하게도, <매드 맥스>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롯데 월드타워에 대한 느낌을 조금 적고 싶다. 


알려져 있다시피, 그곳은 공사중인 노동자가 사망하거나 수족관의 물이 세거나 극장에서 옆 상영관의 진동이 전달되는 등의 안전 문제가 지적돼 한동안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겼다. 물론 그 전에 석촌호수의 수위가 낮아지거나, 주변에 이유 없이 싱크홀이 생기는 등의 일로 좋지 않은 전조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극장과 아쿠아리움이 다시 문을 열었으나, 며칠 만에 작업중인 노동자 2명이 전기 작업을 하다가 화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속보'로 전해졌다. 


난 궁금했다. 롯데 월드타워에만 이런 사건이 자주 생기는 것인가, 아니면 여느 공사현장에서도 비일비재한 일인가. 추정컨대 후자의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다만 롯데 월드타워의 안전성 여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워낙 높다보니, 이런 사건이 곧바로 보도되고 그것이 대중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리라. 아마 여느 공사현장에서 인부 2명이 다쳤다는 소식은 언론이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늘을 나는 쇳덩어리'라 할 수 있는 비행기도 신기하고,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인터넷도 신기하지만, 난 초고층빌딩이야말로 현대문명의 경이로 보인다. 구름을 뚫을 듯이 우뚝 솟은 건물을 보고 있노라면, 저런 커다란 구조체가 어떻게 쓰러지지 않고 서있으며 또 사람들은 어떻게 아무런 걱정 없이 그곳을 드나드는가 궁금하기까지 하다. 배명훈 작가는 674층의 초고층 건물 하나가 그 자체로 국가인 곳을 배경으로 한 연작소설 <타워>를 펴낸 바 있는데, 이미 현대가 보유한 기술로도 이러한 거대 건물을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복제가 그러하듯, 초고층, 초대형 건물도 이를 만들기 위한 윤리적, 법률적,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울 뿐이다. 지금도 우리 집 거실에서 베란다쪽을 바라보면, 현재의 법률적, 정서적 제약을 이리저리 피해 만든 롯데 월드타워가 불을 밝힌 채 공사하고 있다. 이것은 분명 현대의 경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이 현대문명의 경이를 이루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다. 내년쯤 저 건물은 완공되고, 안전에 대한 우려도 조금씩 사라지고, 한국의 젊은이들과 중국의 관광객들이 수없이 드나들겠지만, 건물 어딘가에 죽은 이를 기리는 표식 하나라도 있을까. 고속도로 건설현장을 지나다보면 건설 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를 기리는 추모비가 있는데, 롯데 월드타워에도 그런 표식이 있을까. 있다 해도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딘가에 조그맣게 남겨지겠지. 언젠가 '도시 해킹'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책을 들춰본 적이 있다. 도시 내에 존재하지만, 일반인의 접근은 통제하는 곳만 찾아다니는 사람들 이야기다. 한국에 도시 해커들이 있다면, 현대의 건축적 경이를 이루다 세상을 뜬 노동자의 추모비만 찾아다니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보고 싶다. 사진 작가의 연작 작업으로도 괜찮을 성 싶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생각을 하다 많이 돌아왔다. 롯데 월드타워가 현대문명의 경이라면, <매드 맥스> 시리즈는 현대문명의 조각들을 이용하는 야만인들의 이야기다. 여느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서는 한 두 권의 책이라도 등장하는데(덴젤 워싱턴의 <일라이>는 단 한 권이 남았을지 모르는 성경을 찾는 이야기다),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에는 책은커녕 종이 한 장 나오지 않는다. 영화 내내 기억나는 글자는 맥스의 등에 새겨진 "O형. 수혈 가능" 문신 정도. 약간의 종교적 의식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분명 야만인이다. 


이 야만인들은 문명인들이 남긴 것들 중 자동차와 무기를 가장 사랑한다. 이들은 수렵시대의 조상들이 말, 활, 화살을 사용하듯, 자동차와 총을 사용한다. 그 사이 70대가 된 감독 조지 밀러가 연출한 어마어마한 자동차 추격전은 짐승을 사냥하는 장면처럼 촬영됐다. 총이 꽤 많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워보이들은 끝에 폭발물이 장착된 창을 던져 자동차를 사냥한다. 



거대한 짐승을 사냥하는 것처럼 촬영된 자동차 추격장면


독재자 임모탄의 세계에서 인간은 도구화돼있다. 뚱뚱한 여인들은 젖을 짜 우유를 만들고, 젊은 여인들은 임모탄의 아이를 낳는다. 남자들은 전쟁에 목숨을 거는 워보이로 길러지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들은 그나마 인간은 누군가가 정해준 기능만을 위해 도구적으로 살아선 안된다는 점을 깨닫고 있는 듯보이지만(뚱뚱한 여인들은 엔딩에서 물을 나눠주고, 젊은 여인들은 '아기 낳는 기계'가 되기 싫어 목숨을 건 도주를 감행했다), 남성들 중엔 제 정신 있는 이가 없다. 모두 입에 은색 라커를 뿌린 뒤 '순교'를 감행하려 든다. 죽기 직전엔 "기억해달라"고 외치는데, 트럭에 깔려 죽는걸 기억해달라는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연상되는 것은 가까이는 자살 폭탄 테러범, 멀리는 가미가제다) 


이 미친놈들의 세상에서 문명의 조각들은 인간을 문명화시키는데 아무런 구실을 하지 못한다. 단지 돌도끼, 칼, 활, 말보다 조금더 빠르고 조금더 치명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할 뿐이다. 조지 밀러는 우리가 이룩한 현대문명이란 것이 사실은 고작 그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롯데 월드타워에 죽은 노동자의 추모비가 세워지지 않는다면, 조지 밀러의 생각이 맞다고 할수 있겠다.  



톰 하디가 매드 맥스 역을 맡았다. 그러나 멜 깁슨의 개성에는 미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