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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야구라는 이름의 망령 (43)

나는 망령에 사로잡혔다. 그 망령의 이름은 야구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베어스의 올해 야구가 끝났다. 플레이오프 5차전, 11회말 2사 만루 2-2에서 공을 던져야 하는 구원투수의 심경을 나는 감히 헤아리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심장마저 쥐어뜯는 상황, 임태훈의 머리와 가슴엔 얼마나 많은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을까. 느리고 불규칙한 바운드의 땅볼을 향해 전력질주한 뒤 정확하게 잡아 송구해야 하는 유격수의 손에는 경련이 일어났을까. 난 그렇게 막중한 책임의 순간을 느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마감에 쫓기며 글을 쓰는 정도. 그런 것 아무렇지도 않다. 난 연장전 만루에서 공을 던져본 적이 없다. 그토록 크고 중대한 순간을 맞아본 적이 없다. 그 순간을 맞아 결국 이겨낸 적이 있는 사람을 난 마음으로 부러워하고 경탄한다.

이번 플레이오프는 누가 이겨도, 누가 져도 납득할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삶이 그렇듯 야구도 우연과 실수에 의해 지배되는 경우가 잦다. 130여 경기를 치르는 기나긴 시즌은 우연과 실수를 확률과 통계로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단기전은 다르다. 당일의 컨디션, 기후, 경기장 분위기, 그것도 아니라면 운, 신의 장난이 결과를 지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든다. 냉혹하고 잔인하고 슬프게도, 포스트시즌의 야구에는 승과 패라는 이분법만 통용된다. 미묘하게 스텝이 꼬이는 바람에, 운동장에 작은 자갈이 깔려있는 바람에, 애드 벌룬이 바람에 휘말려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누군가는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누군가는 패배의 나락에 떨어진다. 포스트시즌의 1패는 정규 시즌의 1패가 아니다. 우연과 실수 때문에 정규 시즌에 1패를 기록한 뒤 재기하지 못했다면, 그는 그냥 못난 선수다. 그러나 포스트시즌의 1패 때문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면, 그는 동정받아야 마땅하다. 인간이 그렇듯이, 운동선수란 힘없고 나약하다. 

그러므로 난 결승점을 준 빌미를 제공한 선수가 손시헌이라는데 안도한다. 정수빈이나 김현수나 임태훈이나 양의지가 아니라는데 안도한다. 누가 캡틴에게 돌을 던지랴.

야구의 망령은 선수와 팬을 사로잡는다. 희롱한다. 선수와 팬은 놀랍게도 기꺼이 희롱의 대상이 된다. 이렇게 힘들고 소모적인 일을에 왜 자발적으로 나서는가. 모른다. 시작부터가 누군가의 장난에 말린 것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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