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트웨인'에 해당되는 글 2건

  1. 냉소적인 부음, 소녀 수집하는 노인(+10가지 글쓰기 팁)
  2. 소년의 본능적인 정의감, <허클베리 핀의 모험>과 <올리버 트위스트> (2)





조이스 캐롤 오츠(1938~)의 단편집 <소녀 수집하는 여인>을 읽다. 살아있는 미국 작가 중 매우 각광받는 인물이라고 하며,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유력하게 거론된다. (올해도 도박 사이트에서 10위권 내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섯 편의 단편은 모두 영미권 문학 대가의 말년을 상상해 그리고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의 손에 의해 요리된 작가들은 다음과 같다. 마크 트웨인, 어니스트 헤밍웨이, 헨리 제임스, 에드거 앨런 포, 에밀리 디킨슨.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자다. 





내가 '요리'라고 표현한 건 이유가 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각 작가의 작품 혹은 삶에서 영감을 얻어 그들의 말년을 재현했다. 책을 읽기 전이라면 이것이 앞선 대가들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읽으면 조이스 캐롤 오츠가 그린 그들의 말년이란 것이 무척이나 끔찍해 때로는 거의 조롱이 아닐까 여겨지기 때문이다. 제목으로 뽑힌 '소녀 수집하는 노인'은 트웨인이다. 트웨인은 수십 년 째 이렇다할 히트작을 내지 못하는 처지지만, 가는 곳마다 재치 넘치는 입담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트웨인은 이런 연기가 지긋지긋하다. 그저 특정 나이대(10살 이상 16살 미만) 소녀들과 '특별한 우정'을 나누고픈 생각 뿐이다. 아버지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트웨인의 딸은 아버지가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도록 노심초사하지만, 이 백발의 늙은이는 자신의 삶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과년한 딸이 지긋지긋하다.  




젊은 날, 노년의 조이스 캐롤 오츠. 젊은 날 외모.



헤밍웨이는 만성적인 알콜 의존증세를 보이는데다가 모든 여자는 '보지'라고 생각하는 남자다. 헨리 제임스는 고매한 가문에서 자라 평생 따귀 한 번 맞아보지 않았으며, 상류층 사람들이 정교하고 우회적으로 느릿하게 이야기하는 소설을 써왔다. 1차 대전 부상병이 가득 실려오는 병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간 제임스가 기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제임스는 이상하게 이 병원의 팔, 다리 없고, 구더기가 슬고, 피를 쏟는 참상에 끌린다. 제임스는 간호사 등에게 모욕을 받으면서도 배설물을 치우고 피를 닦는 등 지저분한 일을 마다않는다. 그는 한 냉소적인 장교와 '우정'도 나눈다. 문제는 이 자원봉사가 단지 숭고한 인류애의 발현처럼 그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린 아내를 잃은 에드거 앨런 포는 칠레 부근의 한 등대지기 일을 하며 홀로 지내다가 조금씩 미쳐간다. 나중에는 지저분하고 기괴한 등대섬에 밀려온 이름 모를 암컷 생물체와....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19세기 여성 시인 에밀리 디킨슨이다. 디킨슨이 멀쩡한 이유는 소설에 실제 디킨슨이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 조금 속물적인 중산층 가정에 디킨슨의 복제품이 '입양'된다. 이 시대에는 과거 유명 인물의 정수를 프로그래밍한 로봇, '레플리럭스'가 개발됐다. 19세기식의 말투와 태도를 간직한 디킨슨은 '문학 소녀' 감수성을 가진 중년 부인이 쓴 습작시에 대해 점잖지만 냉소적인 평가를 내린다. 그러나 뒤늦게 시심을 발휘해 훌륭하지 않은 시를 쓰는 정도라면 타인에게 큰 해를 주진 않는다. 큰 문제는 남편이 저질렀다. 


살펴보면 이 책에서 남자들이란 문학 대가든, 평범해 보이는 시민이든 다들 어딘가 이상하다. 고집불통인데다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다. 난 조이스 캐롤 오츠가 남성 문학 대가들에 대해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부고를 썼다고 생각한다. 문학사를 다시 쓰는 동시, 대가의 관뚜껑에 못을 박은 셈이다. 이 대가들의 팬이라면 '장난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조이스 캐롤 오츠가 대가의 한 단면을 정교하게 잘라내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마치 캐리커처가 인물의 특징을 과장해 그려내는 것처럼, 이 단편들은 대가들의 죽음을 캐리커처하듯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찾다 보니 이 70대 할머니 작가는 트위터를 하신다. 지난해 자신의 트위터에 글 쓰기의 10가지 팁을 공개했다. 간단하니까 옮겨 보면


1. 가슴으로 써라. 

2. 첫 문장은 마지막 문장을 쓴 다음에나 쓸 수 있다. 초고는 지옥이다. 완고는 낙원이다. 

3. 후대인이 아니라 동시대인를 위해 써라. 운이 좋다면, 당신의 동시대인은 후대인이 될 것이다.  

4.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염두에 둬라. "조금 진지하면 위험하다. 대단히 진지하면 치명적이다."

5. 한 챕터를 어떻게 끝낼지 모르겠다면, 총 든 남자를 등장시켜라. (이건 내가 아니라 레이먼드 챈들러의 조언이다. 난 이렇게 해보지 않았다.)

6. 형식적 실험을 하고 있다면(덜컹거리고 모호하게), 단락을 나눌 가능성을 염두에 둬라. 

7. 당신 자신의 편집자, 평론가가 되라. 공감하면서도 잔인하라. 

8, 이상적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아니 아예 독자를 기대하지 마라. 독자가 있긴 하겠지만, 다른 책을 읽을 것이다 .

9. 열심히 읽고, 관찰하고, 들어라. 마치 당신의 삶이 거기 달려있는 것처럼. 

10. 가슴으로 써라.  




<빌러비드>를 읽은 김에 비슷한 시기를 다루고 있는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꺼내들었다. 오래전에 챙겨두었으나 계기가 없어서인지 손이 가지 않은 책이다. 


당연히 두 편의 소설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낸다. <빌러비드>가 처절하고 비극적이고 잔혹하다면,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유쾌하고 희극적이다. 가끔 잔혹한 대목이 있기는 하지만, <빌러비드>의 시이드가 벌인 일에 비하면 장난이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살인 장면이 잔혹하지 않은 것처럼. 


허클베리 핀은 주정뱅이에 폭력적이며 인종차별주의자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친다. 그렇다고 자신을 돌보아준 '문명화'된 여성들에게 의식주를 맡기고 싶지도 않다. 헉은 그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뗏목을 타고 내려가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싶을 뿐이다. 허클베리 핀, 그와 함께 한 도망노예 짐은 뗏목 위의 여정에서 영국 출신 왕과 귀족임을 자처하는 두 명의 사기꾼을 만난다.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그저 무기력한 인물일 뿐인 헉의 아버지보다 더한 악당이다. 가식 없고 본능적이며 허례허식을 싫어하고 자연 속에 파묻히길 좋아하는 미국 소년이 영국 성인들의 나쁜 행동을 폭로하는 과정은, 미국 문학이 영국 문학에 던지는 독립선언서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혼자 생각해본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 이전에 그런 작품이 있었다면 내가 잘못 말한 것일테고)


14세 소년 허클베리 핀에겐 '본능적인 정의감' 같은 것이 있다. 흑인도 백인과 같이 슬픔, 아픔, 그리움을 느끼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된다는 점을 '그냥 안다'. 그리고 그 앎을 실천한다. 비록 힘은 없지만, 온갖 기지를 발휘해서 상황을 헤쳐나간다. 허클베리 핀의 '기지'에는 '습관적인 거짓말'도 포함되지만, 이 소년의 거짓말을 비난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다. 


일 때문에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청소년판으로 읽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1885년, <올리버 트위스트>는 1838년 출간됐다. 50년 가까운 차이가 나는 샘인데, <올리버 트위스트>가 런던이라는 당대 최대 규모의 대도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미시시피 깡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당시 미국과 영국의 산업적 발달상이 너무나 확연히 차이난다. 그러니까 올리버가 헉보다 50년 앞서 산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인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우연에 우연이 남발되는, 현대의 작가라면 패러디를 위해 사용하거나 막장 대본을 위해 눈 딱 감지 않는다면 쓰지 않을 플롯이 등장한다는 점은 좀 난처했다. 


흥미로운 건 <올리버 트위스트>도 궁극적으로 소년의 '본능적인 정의감'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 올리버는 천애고아라 누구에게도 제대로된 윤리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도둑질을 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약한 사람을 괴롭히면 안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안다. 올리버의 본능적인 정의감, 선량함이 결국 그를 구원한다. 이 책에서 구원은 (유사) 가족을 되찾고, 돈도 조금 생긴다는 뜻이다. 반면 올리버를 괴롭힌 악당들은 사고 혹은 사형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50년 차이인데 두 작품을 비교하면 한 쪽이 훨씬 고색창연하다. 당시 사회의 변동, 작가의 테크닉 발전이 생각보다 빨랐다고 이해하고 넘어가보도록 하자. 아니면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대중문학의 규칙 같은 것이 있었던 영국, 없었던 미국의 차이라고 상상해보도록 하자. 




찰스 디킨스(위)와 마크 트웨인. 두 분 다 한 성깔 하게 생기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