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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상한 고객들>, 류승범

김문석 기자

영화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너스레를 잘 떨고 크게 웃고 때로 공격적일줄 알았다. 그러나 실제 만난 류승범은 목소리가 침착했고 뜻을 천천히 설명했으며 때로 예민해 보였다.

형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에 얼떨결에 출연한 것이 벌써 11년 전이다. “내가 영화배우될지 누가 알았겠나”라고 말하는 그는 어느 새 상업영화의 단독 주인공이 됐다. 신작 <수상한 고객들>에서 류승범은 ‘보험왕’을 꿈꾸는 배병우 역을 맡았다. 높은 실적을 인정받아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 되기 직전인 그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함부로 가입 받았던 2년전 고객들이 마음에 걸린다. 삶의 벼랑끝에 서있던 그들이 집단으로 자살이라도 한다면 병우의 경력에도 금이 간다. 병우는 고객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이 삶에 의욕을 갖도록 감언이설을 푼다.


“지금도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지만, 자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매스컴이나 주변에서 한창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 이 시나리오를 읽었습니다. 비극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처지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했습니다. 저도 극단적이진 않지만 비관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병우는 버려진 버스에 사는 소녀가장, 남편이 죽은 뒤 홀로 네 아이를 키우는 억척 과부, 지하철 역사에서 노숙하는 청년 등을 차례로 만난다. 전작 <부당거래>에서 황정민과의 1:1 연기 대결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다수의 배우들을 상대로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야 했다.


“오히려 제가 이끄는게 아니라 이끌림 당했어요. 절 내던졌어요.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처럼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시작했어요.”


애드리브가 분명하다고 느껴지는 연기가 있었지만, 류승범은 스스로 애드리브를 많이 하는 배우가 아니라고 말했다. 어디까지나 대본에 충실하고, 대사가 끝내 입에 맞지 않으면 감독과 상의해 고치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암울하고 긴박했던 전작 <부당거래>에서조차 류승범은 수시로 관객을 웃겼는데, 그는 관객을 웃기는 기술을 잘 알지 못한다고도 했다. 오히려 자신의 코미디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다고 것이다. <수상한 고객들>에서도 가난한 아이들이 떡볶이, 어묵 등을 마구 얻어먹자, “소주까지 한 잔 하지 그러냐”는 대사를 던지는 식이다.


‘보험왕’을 연기한 류승범이지만, 정작 그가 들어놓은 보험은 자동차 보험이 전부다. 그는 “아직 애다. 보험 같은 것에 대해 전혀 인지를 못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그렇지 않아도 골치 아픈데 일 벌리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거의 매년 한 편씩의 영화를 내놓을 정도로 한국영화계에서 단단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배우가 무슨 고민일까. 그는 지금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했다. 한때 ‘패셔니스타’로 불린 적도 있지만, 요즘은 옷에 대한 관심도 시들하다. 무엇이 관심이냐고 물었더니 “생각, 의식”이라고 분명히 답했다.


“지금 엄청난 생각들이 오가고 있어요. 제가 10년 정도 배우 생활 했어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죠. 그 시간을 되돌아보고, 지금을 생각하고, 앞을 내다보고 있어요. 또 일을 떠나서 30대에 대한민국 남자로 산다는 것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영화 배우로 산다는 것에 대해, 사사로운 것부터 커다란 일까지 온갖 것을 생각해요.”


<수상한 고객들> 시사회가 끝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류승범이 언론의 질문에 대부분 단답형으로 응한 것을 두고 말들이 있었다. 그는 “제가 진지했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제게도 영화를 보고 되새길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물론 그곳이 제 생각을 정리하는 자리가 아니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것을 안다. 가면무도회에 가면을 안쓰고 나간 셈”이라고 덧붙였다. 


배우란 원래 가면을 쓰는 직업이다. 대중 앞에서, 투자자 앞에서, 감독 앞에서 가면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가끔 가면을 쓰지 않고 맨얼굴을 보여 흥미진진한 배우가 있다. 류승범은 그런 배우다.

<수상한 고객들>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