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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베리아, 시베리아





좋은 기회로 시베리아에 7박8일간 다녀왔다. 여정에는 13시간, 17시간의 버스 여정이 각각 한 차례씩 있었으니, 이틀은 그냥 버스 안에서 보낸 셈이다. 자다 깨니 나무, 자다 깨니 벌판, 자다 깨니 아까 그 나무... 정말 넓긴 넓었다. 카메라에 담아본 풍경을 올린다.  




이르쿠츠크에서 우스트일림스크까지 가는 17시간의 버스 여정 중 잠시 내려 찍음. 노르스름하게 물든 것이 자작나무다. 하얀 줄기에 손을 대면 하얀 가루가 묻어나온다. 



버스 창밖으로 찍은 풍경. 기계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땅이다. 




우스트일림스크의 숙소에서 바라본 앙가라강과 시가지. 300여개의 강이 바이칼호로 흘러들고, 그 중 하나만이 빠져나와 북으로 흐르는데 그 강이 앙가라 강이다. 





앙가라 강에 있는 세 개의 수력발전소중 가장 북쪽에 있는 우스크일림스크 수력발전소.




우스트일림스크에서 이르쿠츠크로 돌아오는 길. 돌아올 때는 조금 서둘러서 13시간밖에(!) 안걸렸다.



이르쿠츠크 공과대학의 자그마한 캠퍼스. 학생들이 담배를 피면서 노닥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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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정이었던 바이칼호수 방문. 좌판 주인이 자리를 뜬 사이 찍었다. 모터보트가 떠나간 작은 선착장. 




바이칼호에서 호연지기를 발휘하는 아라사 아가씨와 객기를 부리는 아저씨. 햇빛이 저래도 온도는 몹씨 차다. 



늦은 오후, 역광의 바이칼. 



춘원 이광수(1892~1950)가 시베리아를 여행한 것은 그가 23세였던 1914년이었다. 1913년 세계여행을 하겠다며 재직중이던 오산학교를 떠난 춘원은 샌프란시스코에 가기 위해 러시아 대륙횡단 열차에 몸을 실었다가 여비가 떨어져 바이칼호 근처에 머물렀다. 마침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춘원의 여행은 그대로 끝났다. 


비록 도중에 멈추긴 했지만 춘원의 여행이 완전히 무의미했던 건 아니다. 춘원은 이 때의 체험을 바탕으로 1933년 <유정>을 발표했다. 당시 춘원은 복잡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시국은 어수선했고 아내와는 불화를 겪었으며 제자뻘 되는 여성과 스캔들이 불거졌다. 춘원은 “순전히 정으로만 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일성과 함께 <유정>을 발표했다. 


친구가 세상을 뜨면서 맡긴 딸뻘 여성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유정>은 요즘 느낌으로는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지위와 명망을 갖춘 최석은 자신의 사랑을 갈구하는 아름다운 젊은 여성 남정임에게 흔들린다. 가정, 사회에 대한 윤리적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최석은 식민지 조선을 떠나 시베리아로 향하고, 남정임 역시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뒤늦게 최석을 찾아 나선다. 


이광수의 시베리아는 이렇게 광막한 고독의 땅이었다. 그곳에서라면 세속의 혼잡한 일, 감정 따위는 잊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곳이었다. 러시아 사람들에게도 시베리아는 머나먼 유배지였다. 낡은 제정 사회를 뒤엎으려다가 좌절한 청년 장교들(데카브리스트), 남편과 함께하려고 귀족신분까지 버린 채 유배길에 동행한 아내들이 향한 곳이 시베리아였다. 


시베리아의 중심도시인 이르쿠츠크는 데카브리스트들의 유형지였다. 데카브리스트들이 서유럽에서 일찌감치 받아들인 자유주의를 퍼트린 덕에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린다. 그러나 직접 가본 그곳은 역시 ‘파리’보다는 ‘시베리아’였다. 인천에서 대한항공 주2회, 시베리아항공 주1회의 직항편이 있는 국제도시라고는 하지만, 공항은 시골 간이역처럼 소박했고 다운타운도 한국의 시골 읍내 같았다. 


■버스타고 17시간

이르쿠츠크에서 시베리아 북단의 소도시 우스트일림스크까지 950㎞를 버스로 달려봤다. 나무 사이로 뻗은 끝없는 길이었다. 소나무, 전나무, 잣나무, 자작나무가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한국의 구불구불한 소나무와 달리 시베리아 소나무는 반듯한 자세로 하늘 향해 치솟아 있었다. 하얀 자작나무를 만지면 손에도 하얀 가루가 묻어나왔다. 


<유정>의 최석과 남정임은 썰매를 타고 눈 덮인 벌판을 한없이 달렸다. <유정>만 읽으면 시베리아에는 겨울뿐인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도 엄연히 사계가 있다. 9월 하순의 시베리아는 일찌감치 늦가을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자작나무는 노랗게 물들인 이파리를 털어낼 준비를 하는 참이었다. 


그러나 이런저런 감상에 젖는 것은 처음 두어 시간이었다. 눈을 아무리 붙였다 떠도 풍경이 똑같았다. 나무 아니면 들, 들 아니면 나무. 시베리아에는 산이 없다. 이미 봤던 것처럼 보이는 들이나 나무가 몇 시간 후에도 똑같이 펼쳐져 있었다. 물론 나무의 구성은 미세하게 달라졌다. 북으로 올라갈수록 자작나무가 드물어지고 소나무가 늘어났다. 그러나 그것도 누군가 알려줘서 눈치챈 것일뿐 그곳의 숲과 들은 세상 끝나는 날까지 달려도 마찬가지 모습으로 펼쳐진 것 같았다. 운전기사가 2명이 탈 때부터 심상치 않긴 했다.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거리가 950㎞다. 분단된 반도에 사는 사람에게는 실감나지 않는 거리다. 


기사는 한국인 승객 중 알아듣는 이가 아무도 없는 러시아 영화를 틀었다. 휴식을 취하는 다른 기사가 보기 위한 것 같았다. 교통경찰도, 속도탐지기도 없었지만 버스는 꾸준히 시속 80㎞대를 유지했다. 도로가 포장돼 있긴 했지만 버스는 가끔 심하게 덜컹거렸다. 중국산 버스의 문제인지, 도로 문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서너 시간마다 차를 세우고 휴게소에 들렀다. 간단히 요기를 하거나 요의를 해결했다. 그러나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던 일행들은 하나같이 손사래를 치며 나왔다. 차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 이럴 바에는 자작나무 숲에서 해결하는게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냈다. 일행은 한적한 길가에 버스를 대고 자작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다가 돌아오는 호사를 누렸다. 


가끔 불이 난 흔적이 있었다. 자연발화에 의한 불이라고 한다. 그곳에선 불이 나도 끄지 않는다고 한다. 사방이 나무라 끌 수 없을 뿐더러 소방차가 출동하는 시간도 한없이 걸린다. 그저 스스로 타다가 꺼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불타 죽은 나무 옆에는 여린 묘목들이 어느새 솟아 올라 있었다. 스스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시베리아 숲의 이치다. 


오후 8시가 넘어가자 해가 뉘엿뉘엿 저물었다. 버스는 왕복 2차선 도로 전방으로 뻗어나가는 희미한 헤드라이트에만 의존해 주행했다. 가로등도, 인가의 불빛도 없었다. 저녁에는 ‘과연 이 버스에서 내릴 수 있을까’라는 불안이 들더니 밤에는 체념이 밀려왔다. 3년 전 스마트폰에 넣어두었으나 한 번도 듣지 않았던 브루크너의 기나긴 9번 교향곡을 찾아 들었다. 여전히 버스는 어둠 속이었다. 


‘포기’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쯤 버스가 멈춰섰다. 출발 오전 9시 30분, 도착 이튿날 오전 2시 30분. 총 17시간이었다. 하긴, 이 정도를 달리고 ‘시베리아의 광막함’을 운운하는건 미안한 일이기도 하다. 우스트일림스크 북단으로 사람은 없지만 숲과 툰드라 지대가 2000㎞ 이상 뻗어 있다. 그 위로는 북극이다.  


■바다인가 호수인가, 바이칼호

바이칼호는 ‘시베리아의 진주’다. 2500만년 전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바이칼호는 이르쿠츠크에서 남쪽으로 60㎞ 정도에 위치해있다. 바이칼호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일행 중 한 명이 탄식하듯 말했다. “저게 어떻게 호수냐.” 


말 그대로였다. 누군가 호수인지 확인하겠다며 물을 찍어 맛보았다. 밍밍하다고 했다. 그래도 믿기 힘들었다. 가을 햇살을 받아 빛나는 바이칼호는 바다를 방불케했다. 남한 면적의 3분의 1, 세상 민물의 20%를 담고 있다는 호수이니 그럴만도 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이었지만 물은 제법 차가웠다. 그곳에도 호연지기를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덩치 큰 러시아 남자가 수영복을 입은 채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무로 짠 휴식처에는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음식을 사오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러시아 사람들은 훈제 오물(청어와 비슷한 바이칼호 특산 생선) 안주를 곁들여 바이칼 맥주를 마시며 일망무제 호수와 그 속의 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관광객들은 끝없는 물 풍경에 지친 듯, 돌맹이를 가공한 장신구나 음식을 파는 장터를 떠들석하게 오갔다. 


시베리아에선 들, 나무, 물이 모두 아득했다. 사람의 흔적이 많이 닿지 않아서인지 ‘러시아적’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광수의 인물들도 러시아로 도피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사람이 없는 곳, 인습이니 윤리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없는 곳을 찾았다. 이광수의 상상력은 “가이없는 벌판”이라고 묘사되는 시베리아로 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인천에서 4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이르쿠츠크 공항에 내린다. 이르쿠츠크는 한국과 시차도 없다. 이제 지구는 하나가 됐다.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사랑의 정념을 억누르기 위해 도피할 곳을 찾기란 이광수의 시대보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