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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와 너의 연결고리, '컨택트'
  2. 그을린 사랑 리뷰+드니 빌뇌브 감독 인터뷰


음...영화를 이렇게 만들어놓으면 차기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아진다는 단점이 생긴다. 



타자와의 접촉은 위협인 동시에 축복이다. ‘나’의 경계가 무너지는 동시, 그 경계가 확장되기 때문이다. 

2일 개봉한 SF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는 세로로 선 거대한 조개 모양의 괴비행체(쉘)가 전세계 12개 지역에 동시에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쉘은 18시간마다 한 번씩 열리고, 각국의 과학자, 군인들은 이때 쉘 안으로 들어가 다리가 7개 달린 거대한 문어 모양의 외계인 헵타포드와 접촉한다. 언어학자 루이스(에이미 아담스)가 외계인의 언어를 알아내기 위해 나선다. 정부는 외계인이 왜 지구에 왔는지, 지구에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알아내려 한다. 하지만 외계인의 의도 파악이 늦어지면서, 인류는 점점 혼란에 빠진다. 

<컨택트>의 원작은 최근 가장 명망있는 SF 작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중편 <네 인생의 이야기>다. 테드 창은 지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소설들로 유명하다. 영화 역시 원작의 사색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외계인과 지구인의 접촉에서 예상되는 영화 줄거리, 즉 지구 자원을 둘러싼 전투라든가 환상적인 모험은 찾기 어렵다. 영화 전반부는 루이스가 헵타포드의 음성·문자 언어를 알아내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특히 뿌연 유리벽에 먹물을 원형으로 뿌린 듯한 헵타포드의 문자 언어는 요령부득이다. 헵타포드의 문자가 단지 이상한 모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헵타포드의 낯선 사유 방식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외국어에 몰입하면 사고의 방식도 그 언어를 따라 바뀐다”는 사피어·워프의 가설은 영화 후반부 중요한 반전을 예비한다. 




그러나 지성만으로 영화를 만들 순 없다. <컨택트>의 장점은 영화의 지적 논리들로 결국 감성을 자극한다는데 있다. 루이스는 헵타포드 언어의 비밀을 알아낸 후 큰 혼란에 빠진다. 이 언어는 인류의 사유 체계는 물론, 루이스의 삶조차 통째로 뒤바꿀 수 있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루이스의 삶은 이전과 같을 수 없다. 전통적인 인간의 감정으로 파악하면, 이는 커다란 행운일수도 불행일수도 있다. 루이스는 이 모든 감정과 사건들을 받아들인다. 그걸 ‘운명’이라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새로운 사유와 논리의 도래 앞에서 ‘운명’이란 전통적인 어휘는 어딘지 낯설다. 그저 기존의 루이스가 파괴되고 새로운 루이스가 태어났다고 말하는 편이 좋겠다.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광폭한 맹수나 자연 재해 아래 살아남으려 애쓰던 선사시대부터 그랬다. 새 사유 체계의 도래 앞에서 어떤 인간들은 어리석은 짓을 한다. 극중 중국 정부는 가장 먼저 외계인에 대한 공격을 결정한다. <컨택트> 후반부는 이 어리석은 결정을 막아내기 위한 루이스의 노력을 따라간다. 익숙하지만 낡은 사유를 고집할 것인가, 낯설지만 새로운 사유를 받아들일 것인가. <컨택트>는 그런 선택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새로운 사유 체계의 가능성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컨택트>는 가족애라는 지극히 고전적인 감정을 그린 <인터스텔라>보다는, 미지의 세상에 대한 경외감을 그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닮았다. 

에이미 아담스가 루이스 역을 맡아 거대한 경이를 차분하게 받아들이는 어려운 연기를 해냈다. 제레미 레너가 그를 돕는 물리학자 이안 역을 맡았다. <그을린 사랑>(2010), <시카리오: 암살자들의 도시>(2015)의 드니 빌뇌브 감독이 연출했다. 빌뇌브는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중 하나인 <블레이드 러너 2049>도 준비하고 있다.


<그을린 사랑>의 어머니 나왈. 자기만 빼고 다 죽은 참사의 현장에서.

어머니 나왈의 유언은 기묘했다. “관에 넣지 말고 나체로 기도문 없이 묻어주세요. 세상을 등질 수 있도록 시신은 엎어놔 주세요. 비석은 놓지 말고 이름도 새기지 마세요.”

아연실색한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어머니가 남긴 또 다른 당부를 듣고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잔느에겐 죽은 줄 알았던 생부를, 시몽에겐 존재조차 몰랐던 형을 찾아 밀봉된 편지를 전하라는 것이다. 유언은 이어진다. “침묵이 깨지고 약속이 지켜지면 비석을 세우고 햇빛 아래에 내 이름을 새겨도 됩니다.”


<그을린 사랑>은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가 그려냈을 법한 가족 드라마다. 또 양 극단의 원리주의자들이 끝없이 반목하는 현대 중동의 정세에 대한 정치 영화다. 아울러 과거와 현재를 능란하게 오가며 인간의 운명과 역사의 수레바퀴가 맞물린 지점을 찾는 역사 영화다.


나왈은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가 번갈아가며 서로를 학살하는 중동의 어느 나라 출신이었다. 나왈은 이교도와 사랑에 빠졌다가 ‘명예살인’을 당할 뻔한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그는 갓 낳은 아이를 멀리 떠나보낸 뒤 대학에 진학해 새 삶을 시작한다. 한때 민주화운동에 가담했으나 성모 마리아 그림이 그려진 총에 무고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을 본 뒤 테러리스트가 된다. 기독교 민병대 지도자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 그는 지도자를 살해한 뒤 감옥에 갇혀 15년을 보낸다. 어머니의 자취를 따라 아버지, 형을 찾던 잔느, 시몽 쌍둥이는 결국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몸서리칠 수밖에 없는 진실과 마주한다.


그 ‘진실’이 <그을린 사랑>의 핵심이다. 어머니는 감옥에 갇힌 15년간 표현하기 힘든 고초를 겪으면서도 삶의 의지와 신념을 잃지 않은 여인이었다. 그러나 불굴의 여인도 종국에 드러난 잔혹한 진실을 온전한 정신으로 감당하기 힘들었다. 나왈은 오래된 기계가 스스로 작동을 멈추듯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


진실을 찾는 과정은 차분하면서 흥미롭다. 잘 써진 추리 소설처럼 작은 퍼즐 조각들을 하나씩 던져준다. 퍼즐 조각을 다 맞추면 세계의 무심함, 역사의 잔인함이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드러난다.


고대 그리스 비극의 인물들은 신탁으로 전해진 운명 때문에 파괴됐고, <그을린 사랑> 속 인물들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세계 질서에 신음한다.


어머니의 유언장을 읽고 아연실색한 쌍둥이

 
배경이 된 나라는 레바논을 연상케 하지만, 지명은 모두 가짜다. 감독은 영화 속의 참담한 비극이 한 나라에 국한된 특수한 상황이 아닌 보편적 상황임을 드러내기 위해 가상의 공간을 설정했다고 한다.

한 인간이 세계와 역사의 저주를 이겨낼 수 있을까. 나왈은 냉소나 한탄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포용력을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그을린 사랑>을 만든 이의 태도는 그렇지 않아 보인다.
나왈과 함께 다음 계단으로 오르는 대신, 그런 나왈을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듯한 방관적인 태도다. 대개의 관객은 성인(聖人)이 아니기에, <그을린 사랑>의 모호한 태도는 오히려 설득력 있다.

캐나다의 연극 <Incendies>가 원작이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이 정확한 지점에 사용됐다. 21일 씨네큐브, CGV 강변, 서울극장 등 10여개 스크린에서 개봉한다.


캐나다 퀘벡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 영어로 답변지를 보내왔는데, '프랑스식 영어' 철자가 눈에 띄었다.

<그을린 사랑>의 감독 드니 빌뇌브는 캐나다 퀘벡 출신이다. 1998년 <지구에서의 8월32일>로 장편 데뷔해 <그을린 사랑>까지 4편의 장편을 내놓았다. 오늘보다 내일 더 주목받을 빌뇌브 감독과 이메일로 대화했다.

-원작 연극의 어떤 점 때문에 영화로 옮길 결심을 했나.

“내 안의 공포를 자극하는 연극에 매혹됐다. 그건 나를 사로잡는 현실을 탐구하는 길이기도 했다. <Incendies>는 분노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방식을 그린다. 끝나지 않는 순환의 구조가 나를 공포스럽게 했다.”

-그토록 큰 비극을 겪고도 미치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나.

“몇 달 전 어느 영화제에서 <그을린 사랑>을 상영했다. 2차대전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 있었다는 한 남자가 같은 질문을 했다. 난 ‘그러한 비극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섣부른 대답은 주제넘은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울면서 ‘(용서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이 영화 속 이야기는 작은 희망과 도움을 줬다’고 말했다.”

-그리스 비극을 연상케 하는 가족 이야기가 현대의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을린 사랑>은 전쟁이 아니라 가족에 대한 은유를 다루고 있다. 대부분의 가족은 과거로부터 전해진 분노, 독약 같은 적개심의 순환 구조를 경험한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을 사용한 것은 의외였다.

“라디오헤드의 ‘You and whose army?’는 <그을린 사랑>을 만든 첫날부터 함께했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의무와 같았다. 대체재는 없었다. 영화를 시작하는 완벽한 노래였다. 오페라같고, 최면을 거는 듯하고, 매혹적이고, 낯선 땅에 떨어진 듯하고, 극적이며, 완벽한 가사를 갖고 있다. 난 최면을 거는 듯 영화를 시작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라스 폰 트리에의 <유로파>, 프랜시스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은 그 완벽한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