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스틱포르노'에 해당되는 글 1건

  1. 여자에게 직장이 무슨 소용? <하우스 와이프2.0>



시카고 트리뷴에 근무하다 퇴사한 한 여기자의 사례를 골라 써서 그런지, 사내 여기자 몇몇이 급관심 보임. 



하우스 와이프2.0

에밀리 맷차 지음·허원 옮김/미메시스/432쪽/1만6800원


‘도메스틱 포르노’(domestic pornography)란 말이 있다고 한다. 이상한 생각은 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는 ‘완벽한 살림에 대한 사진을 보여주는 책, 잡지, TV쇼, 블로그’를 뜻한다. 미국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한국에서도 블로그 세계에서는 ‘완벽한 살림’을 전시하는 이들이 있다. 음식, 육아, 인테리어 등에서 타의 모범이 돼 파워블로거로 등극하기도 한다. 물론 운영자는 대부분 여성이다.


이 블로거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하우스 와이프2.0>은 좋은 교육을 받고 사회에서 일정 수준의 성취를 이룬 여성들이 가정으로 돌아가는 현상에 주목한다. 주부들처럼 직접 텃밭을 가꾸거나 가축을 기르고, 음식을 하고, 자녀를 홈스쿨링으로 교육하며, 직접 뜨개질한 옷을 입거나 소규모로 판매한다.


에밀리는 대학 졸업 직전 지역 신문사에 취직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조금씩 큰 신문사로 옮겨갈 수 있었고, 결국 유력매체인 시카고 트리뷴에 입사하기에 이른다. 그때까지만 해도 에밀리는 자신의 일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거대한 시대 변화를 맞이한 신문사는 길고 보람 있지만 수익은 안나는 기사 대신, 짧고 시시한 기사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회사는 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강조했고, 봉급의 인상폭은 늘어나는 생활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환경보호론자였던 에밀리는 시간에 쫓기는 삶 때문에 일회용기에 포장된 저녁 식사를 하고, 출근에 필요한 새 옷을 수시로 사고, 출퇴근을 위해 먼 거리를 통근했다. “세금 징수 기사가 뭐라고 아이가 자기 전에 얼굴도 한 번 못 본단 말인가”하고 생각하던 에밀리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소도시로 돌아갔다. 출판사를 위해 일주일에 몇 시간만 프리랜서로 재택근무하고, 나머지 시간은 아이를 돌보거나, 요리하거나, 빨래 비누를 직접 만든다.


전통적인 주부에게 가정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수였다. 사회 진출 기회가 많지 않았고, 기회가 온다 해도 가정에 남아 있는 것이 주부의 미덕으로 여겨졌다. 1960~70년대의 페미니스트들은 격렬한 투쟁을 통해 사회 진출의 길을 열었다.


그런 페미니스트들에게 이런 ‘전업주부 2세대’의 출현은 당황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여성들의 ‘퇴행’을 우려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38세의 멜라니는 말한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우리에게 유리 천장을 뚫고 어디든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직장으로 나갔고, 곧 깨달았지요. ‘이런 거지 같은 삶을 봤나’ (…) 세상에 직장과 가정생활의 균형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더라고요.”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에 대한 불만만이 전업주부 2세대를 만든 것은 아니다. 친환경적이고 규모가 작은 삶, 육아에 대한 애착도 이들을 가정으로 불러들인다. “우리가 먹는 음식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직접 만드는 것 뿐이에요.”(26세의 캣) “내가 하는 가사일 중 야채를 직접 기르는 것과 천 기저귀를 사용하는 것은 내가 지구를 위해 나의 본분을 다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에요.”(29세의 칼라) “자연이 여성에게 부여한 재능인 돌봐 주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페미니스트적인 결정이 어디 있겠어요?”(유명 블로거 컬래미티 제인)


전업주부 2세대의 등장은 양면적이다. 이는 페미니즘 운동의 역주행일수도, 새로운 흐름일 수도 있다. 안전한 식품, 적정 수준의 환경보호, 좋은 육아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좌절인 동시에 새로운 형태의 삶에 대한 희구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몇 가지 조언을 전한다. 남자들을 끌어들일 것, ‘자연적인 것’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버릴 것, 경제적인 독립을 우습게 보지 말 것 등이다. 특히 경제적인 독립은 너무나 중요해서, 몇 쪽의 조언으로 끝내기엔 부족하다. 많은 여성들이 환멸을 느끼면서도 직장을 떠날 수 없는 것도 경제력에 대한 고민 때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