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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신은 무엇을 팔 수 있는가, <장사의 시대>

잘 고르지 않는 종류의 책인데 이번에는 과감하게 골라봤고, 꽤 재미있게 읽었다. 영미권 저널리스트들의 책이 흔히 그러하듯 많은 이를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듣고 명쾌하게 정리했는데, 상당히 냉정한 현실인식에 기반해 있다.




장사의 시대

필립 델브스 브러턴 지음·문희경 옮김/어크로스/348쪽/1만5000원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성실하게 살아온 60대 남자 윌리 로먼은 최근 의기소침해졌다. 일거리는 줄어들었고, 두 아들 비프와 해피는 아버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급기야 직장상사는 로먼을 해고하고, 비프 역시 일자리를 구하는데 실패한다. 윌리 로먼과 두 아들은 화해를 위한 저녁 자리를 갖지만, 다시 말다툼만 시작한다. 이런저런 감정의 굴곡 끝에 비프와 화해한 로먼은 자신의 생명보험금을 아들의 사업자금으로 내주기 위해 자동차 사고를 위장해 목숨을 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한 비프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대 희곡사의 걸작이라 할만한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의 줄거리다. 윌리 로먼은 치열한 경쟁을 헤치고 세일즈 전선에 투신해온 남자다. 성공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고, 그래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무정한 세월, 잔인한 사회는 이제 늙고 지친 로먼을 내친다. 특히 사랑하는 아들마저 로먼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낸다. 


밀러의 희곡 속 묘사는 현대의 세일즈맨에 대한 한 시선을 표방한다. 억지스러운 미소를 지은 채 자기조차 쓰지 않을 물건을 냉담한 소비자에게 팔아야 하는 세일즈맨. 당연하게도 거절에 거절이 이어지지만, 세일즈 현장에서 도망칠 수는 없다. 도망치는 순간 굶어죽거나 적어도 ‘패배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한 장면. 필립 세이모어 호프먼이 윌리 로먼, 앤드류 가필드가 비프역인 듯. 


그러나 반대쪽 이야기도 있다. 벤저민 프랭클린, 데일 카네기, 워런 버핏 등의 이름에서 연상되는 세일즈맨은 건강하고 긍정적이다. 밝은 민주주의 사회의 산물인 세일즈맨은 성실성과 조금의 능력만 있으면 사회, 교육, 지위를 뛰어넘어 성공할 수 있다. 


영국 출신 저널리스트 필립 델브스 브러턴은 <장사의 시대>(원제 The art of the sale)에서 후자의 관점을 지지한다. 물론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문제에 눈감은 채 성공에 대한 거짓 희망을 불어넣거나, 성공하려면 남을 짓밟아야 한다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을 설파하는 건 아니다. 그에게 세일즈는 선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닌, 그저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행위다. 그는 우리가 세일즈맨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은 무언가를 남에게 팔아야 살아갈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세일즈 현장은 ‘인간 본성을 연구하는 가장 큰 실험실’이라고 본다. 


사실 세일즈에 대한 이런 관점이 보편적이진 않다. 잠시 언론사를 떠나 하버드 경영대학원 MBA 과정에 들어간 브러턴은 그곳에서 세일즈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교수에게 왜 세일즈를 가르치지 않느냐고 묻자 “꼭 세일즈를 공부하고 싶으면 어디 가서 한 2주짜리 야간 강좌를 들으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세일즈는 “비즈니스라는 마차를 끄는 말”이며 “경영의 핵심”이자 “현실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통로”라는 것이 브러턴의 관점이다. 검은 정장을 입은 경영자들이 깨끗하고 넓찍한 사무실에서 거드름을 피울 때, 세일즈맨들은 진창과 같은 현장에서 적대적인 고객을 설득해 돈을 벌어온다. 그것이야말로 ‘현실적인 무엇’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달라이 라마도 세일즈맨이었다. 1959년 티베트를 탈출해 세계로 나왔을 때, 그는 장황하고 불가사의한 불교 철학을 설파하는 젊은 승려였다. 서구 사람들은 그의 말을 이해하기는커녕, 티베트가 독립과 관련해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다는 메시지도 들으려하지 않았다. 달라이 라마는 새로운 ‘세일즈’ 방법을 채택했다. 대중 앞에선 친근한 미소를 띠면서 행복 철학을 설파했지만, 중국과의 분쟁에 대해선 단호한 입장을 취했다. 말하자면 “일종의 청중 맞춤형 판매 방식”이었다. 


넬슨 만델라도 마찬가지다. 폭력 노선으로는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오랜 수감 생활 동안 고객, 즉 백인의 사고방식을 이해하려 했다. 그들의 말을 배우고, 역사를 공부했다. 간수를 감화시키고 관료를 설득시켜 자신은 고객을 갈취하는 것이 아니라 숭고한 뜻을 전하려 한다는 점을 알려나갔다. 달라이 라마와 만델라 모두 타인의 심리를 조종해 원하는 목적에 다가갔지만, 이들이 자신의 이익에 눈먼 악당이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다. 


저자는 전세계의 유명한 세일즈맨들을 찾아나선다. 모로코에서 흥정은 여행의 일부다. 이곳 장사꾼들은 세계에서 가장 노련한 부류인데, “언제나 손님이 흥정을 잘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탕헤르의 마지드는 거물 상인이다. 입생 로랑, 자크 시라크,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그에게서 물건을 샀다. 


그는 말한다. “장사할 때는 거지처럼 온종일 매달리고 또 매달립니다. 저희 아버지는 장사꾼이라면 모름지기 품이 넉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가끔 죽이고 싶은 손님도 있어요. 그래도 죽여서는 안되지요.”


마지드가 말한 ‘넉넉한 품’을 좀 더 딱딱한 용어로 바꾸면 ‘회복탄력성’이다. 이는 “험한 일을 당해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능력”이다. 시인 키플링은 “성공과 실패를 만날 때/둘을 똑같이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것이 장사는 물론 인생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 좌절, 거절의 연쇄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성공만을 이어가는 듯 보이는 이도 있지만, 이런 사람일수록 단 한 차례의 좌절로 인생을 망치곤 한다. 성공만 해온 사람은 거듭된 좌절에 따른 잔근육이 없다. 실제 세일즈 세계에서도 ‘아니요’라는 말을 많이 들은 사람일수록 실적이 좋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세일즈는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다. 그래서 성공하려는 세일즈맨에겐 공감 능력이 필요하다. 고객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사소한 손짓, 장신구, 흘리는 말, 안색에서 고객이 원하는 바와 원치 않는 바를 알아내야 한다. 


그러나 공감만으로 부족하다. 결국 세일즈는 고객의 행동, 즉 구매를 이끌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자아 욕망이다. 이는 판매를 성사시켜 자부심을 높이려는 욕구를 말한다. 단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물건을 하나 팔 때마다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책은 몇 가지 세일즈 기술도 알려준다. 우선 장사란 좋은 이야기를 파는 일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숱한 케이블 채널 중에서도 홈쇼핑 채널에 눈길이 머무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걸레를 파는 이는 콜라를 통째로 바닥에 쏟은 뒤 허리를 굽히지도 않고 걸레로 닦아내는 시범을 보인다. 굴비를 파는 이는 가족 3대가 둘러 앉아 맛있게 음식을 먹는 광경을 연출한다. 이건 분명 “거부하기 힘든 매력적인 이야기”다. 


어쩌면 세일즈맨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종자들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의 전개를 발단, 절정, 결심으로 설명한다. 세일즈도 마찬가지다. 주방의 바닥이 콜라로 더렵혀지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느 청소 도구로는 아무리 해도 안되지만 광고중인 상품으로는 쉽게 닦인다. 그러나 보고만 있으면 안된다. 전화를 걸어 대걸레를 주문하는 결심을 해야한다. 


물론 고객마다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서 세일즈맨은 달라이 라마가 그러했듯 고객맞춤형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석 상인은 아내를 동반한 남편에게 “중요한 건 가격이 아닙니다. 웃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보세요”라고 말한다. 혼자 온 여자에겐 “가끔 나 자신을 위해 물건을 사면 해방감이 들지 않나요. 혼자 결정을 내리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라고 말한다. 


좋은 세일즈맨은 “에스키모에게 얼음을 팔 수 있나”와 같은 질문을 모욕적이라고 느낀다. 세일즈맨은 쓸데없는 상품을 팔지도, 소비만능주의를 조장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판매 행위가 소비자에게도 궁극의 이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현장에 나선다. 그것이 일종의 ‘마취’라 하더라도, 삶과 일과 가치관의 통합은 대부분 분야에서 성공의 조건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하루 또 하루를 버티는 식으로는 좋은 삶을 살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세일즈맨들이 볼만한 영화다. 이집트에 주둔한 영국 병사 로렌스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반목중인 부족들을 규합해 터키에 대항하려 한다. 부족민들이 파란 눈의 이방인을 미심쩍어하자 로렌스는 그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사막 생활을 함께 한다. 그들이 물을 마실 때만 마시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옷을 입고, 그들의 언어를 말한다. 이렇게 세일즈는 “자포자기와 거절과 속임수를 통해 금전적 보상을 추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섬세하고 영리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공동의 원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이다. 


미국의 아이들은 집 앞에서 레모네이드를 만들어 팔곤 한다. 어설픈 탁자 위에 레모네이드 한 주전자와 초콜렛 쿠키를 올려놓은 뒤 1잔에 50센트씩 판매한다. 이것은 미국 아이들의 통과 의례와도 같다. 레모네이드 판매를 통해 아이들은 타인의 노동에 기대지 않은 채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을 배운다. 아마 아이들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멋진 장난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일정 수준의 모순, 위선, 도덕적 난관이 잠복한 세일즈를 통해 아이들은 현실에 대한 감각을 기른다. 그리고 이상적인 자아와 현실적인 야망 사이의 균형점을 터득한다. 


<장사의 시대>는 경제·경영서로 분류되겠지만, 더 나은 삶을 위한 제언이 담긴 자기계발서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책들은 때로 현실과 당위를 뒤섞기에, 어떤 독자는 불쾌함과 저속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사의 시대>는 그런 위험을 잘 비켜나간다. 이 책은 기만이나 착취가 아니라 진심과 사랑을 강조한다. 진정한 세일즈맨은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며, 자신이 세상을 좋게 만들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한 선의와 낙관주의, 그 밑에 깔려 있는 냉엄한 현실인식이 이 책을 읽을만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