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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머와 자학, 서민 교수 인터뷰 (1)

좋은 과학책을 읽으면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가끔은 인생의 지혜를 배우기도 한다. 그런데 과학책을 읽으며 웃기는 정말 힘들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을유문화사)은 이 힘든 과제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는 박멸된 것처럼 여겨져 좀처럼 대중의 화제에 오르지 않는 기생충에 대한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저자인 서민 단국대 교수(46)는 알만한 사람에겐 알려진 유명인사다. 신랄하고 기발하고 유머 넘치는 정치·사회 풍자 칼럼으로 강력한 팬덤을 누리고 있으며, 여세를 몰아 MBC TV <컬투의 베란다쇼>에도 고정 출연중이다. 서민은 “앉아있으면 주위 사람들이 ‘기생충, 기생충’ 하면서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실로 오랜만에 탄생한 ‘스타 과학자’다. 



자신의 신간 <기생충 열전>을 들고 있는 서민 단국대 교수/ 김정근 기자


18일 경향신문사에서 마주앉자마자 ‘연구에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짓궃은 질문부터 던졌다. 그는 “올해가 2013년이니까 논문 목표를 13편으로 잡았는데 지금까지 5편 썼다”고 답했다. 그리고는 재빨리 “2019년에는 죽어나가지 않을까 한다”고 농을 쳤다. 폭력적인 아버지에 대한 불만, 못생긴 얼굴에 대한 컴플렉스 때문에 소심하고 위축된 성장기를 보낸 그는 남을 웃겨서 인기를 얻는 것이 생존비결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노력했으나 “개미 한 마리 못 웃긴” 그는 의대에 진학한 뒤에야 자신의 유머가 통한다는 걸 느꼈다. 물론 의대생을 웃긴다고 정말 웃기는 사람은 아니다. 워낙 지루한 삶을 살던 의대 친구들은 말도 안되는 유머에 웃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친구는 가만 있는 서민을 보고 “네가 웃긴 얘기를 할 것 같아 웃었다”며 선제적으로 웃기도 했다.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유머 감각은 <서민의 기생충 열전>에서도 발휘된다. 인간을 종숙주(계속 살아갈 숙주)로 삼는 기생충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 인간의 영양분을 빼앗는다 해도 밥 한 숟가락 정도다. 그러나 인간을 중간숙주로 삼은 뒤 종숙주로 옮겨가는 기생충은 인체에 치명적일 때가 있다. 서민은 이를 화장실 사용 매너에 비유한다. 공중 화장실(중간숙주)은 험하게 쓰는 사람도 집 화장실(종숙주)은 깨끗하게 쓴다는 것이다. 항문 주변에 알을 뿌리기 위해 변기에 빠지지도, 방귀에 휩쓸리지도 않아야 하는 요충의 고충, 3만년 전 인간의 몸 속에서 벌어진 면역세포와 회충 사이의 전쟁과 평화 등 과학 지식을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풀어놓는다. 


마치 남의 집 살이 하는 사람처럼, 최대 25m나 되는 광절열두조충이 숙주(인간) 눈치 보느라 5m 남짓한 소장에서 이리저리 몸을 접은 채 숨죽이고 사는 모습을 상상하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는 크기는 큰데 증상은 없는 광절열두조충이야말로 ‘기생충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한다고 말했다. 서민은 아직 감염원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이 기생충을 찾기 위해 송어회집에 손님으로 가장해 들어가 송어를 뒤지기도 했으나 끝내 실패했다고 한다. 


연구를 위한 ‘살신성인’ 에피소드도 있다. 기생충학자들은 대개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삼아왔다. 회충알이 뿌려진 딸기를 먹은 연구자, 팔에다 십이지장충을 뿌린 연구자도 있다. 충북대 엄기선 교수는 도살장에 가서 돼지 5000여 마리의 간, 내장을 뒤진 끝에 희귀한 촌충 유충을 발견했는데, 그걸 직접 삼킨 뒤 75일간 2m 가까이 몸 속에서 길렀다. 서민은 “그 귀한 걸 젊은 연구원 주기엔 아까워서 직접 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민 역시 동양안충을 자신의 눈에 넣은 적이 있지만, 동양안충은 하춘화, 이나영 같이 눈이 큰 사람을 좋아하기에 “내 눈에서 자라는 건 불가능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서민의 말에는 기묘한 유머와 재치와 자학과 반어가 뒤섞여 있었다. 텔레비전에 출연하다가 ‘연예인병’에 걸릴까봐 “나는 쓰레기다”라고 수시로 다짐한다고 했고, 칼럼에 달리기도 하는 악성 댓글에 대해서는 “내가 마조히스트라서 거칠게 다뤄주는 것이 좋다”고 했다. “기생충이나 연구해라” “못생겼다”는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시사 칼럼이 “주구장창 냉소하고 비꼬는, 인간이 가져선 안되는 감정에 호소한다”고 했다. 자신이 글을 잘 쓴다고 한 번도 생각한 적은 없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의아하게 여기는 중이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2011년에 서문을 써놓고 기뻐하다가, 그 사이 <기생충, 우리들의 오래된 동반자>(정준호·후마니타스)라는 책이 나와서 이곳 저곳에서 추천받고 상도 타는 바람에 “배가 아팠다”고 전했다. 그래도 서민은 ‘대인배’인 척 하려고 그 책에 대해 호평을 하고 다녔지만, 이제는 자신의 책으로 기생충 서적의 시장을 빼앗고 상도 타려는 꿈을 꾸고 있다고 슬쩍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