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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정동, 스타식스 정동으로 더 익숙한 그 극장이 곧 문을 닫는다는 소식은 윤성호 감독이 먼저 알고 있었다. 난 이 극장이 자리하고 있는 건물에 매일 출퇴근을 하면서도 이 소식을 까맣게 몰랐다. 

윤 감독은 자신의 트위터에 "그간 중앙시네마나 씨네코아가 문을 닫는다고 하면 조금 의무적인 자세로 아쉬움을 표현했는데, 개인적으로 정동은 다르다. 1년에 극장마실 한번 가던 정도인 내가 그 심야패키지에 끌려 개봉영화 보는 버릇을 들이게 한 곳"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내게 시네마정동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다며 극장 관계자 연락처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시네마정동은 윤 감독 뿐 아니라 내게도 추억이 있는 곳이다. 


경향신문에 입사하기도 전인 2000년대 초반쯤, 난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의 여자친구와 시네마정동의 심야상영에 간 적이 있다. 8월 어느날로 기억되는 여름밤, 1만원에 3편을 보여주는 행사. 그날의 3편은 기막히게도 <A.I.>, <이웃집 토토로>, (팀 버튼의) <혹성탈출>이었다. 
<A.I.>는 지금도 내 페이버릿 무비 중 하나이며, <이웃집 토토로>의 명성은 따로 덧붙일 이유도 없다. <혹성탈출>은 버튼의 평작에 속하지만, 그래도 한여름 새벽을 맞이하면서 보기에 나쁘지는 않았다. 

서울 시내 어디서 있던 사람들인지, 5개관쯤 되는 심야의 극장에는 70% 이상 좌석이 차 있었다. 알고보니 그날 대학원 동료 한 명이 심야영화를 보러왔고, 새벽녘 서대문 지하철 역을 지나가는 나와 여자친구를 봤다고 훗날 증언했다. 
한여름밤의 이상한 열기와 설렘, 졸린 눈을 비비며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열기, <A.I.>의 기묘한 사랑, <이웃집 토토로>의 잊을 수 없는 고양이버스, 순진무구함, <혹성탈출>의 절망,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자친구. 이 모든 것이 어울린 그 여름밤은 지금 돌아보면 내 연애사를 통틀어서도 '10대 순간'에  꼽힐만하다. 

종로 인근의 극장가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거나 이름을 바꾸었다. 상권이 변화하고 젊은이들이 더 이상 종로를 찾지 않으면서부터다. 나보다 조금 윗 세대 사람들 중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단성사, 피카디리, 서울, 스카라, 명보에 얽힌 하나 둘씩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내 경우엔 신촌의 녹색극장, 이대 부근의 지금은 이름을 잊어버린 몇 개의 극장들, 대학로의 예술영화관, 양재동까지 가서 한참을 찾아 헤매던 이름모를 사설 시네마테크, 사당동의 문화학교 서울, 안국동의 서울아트시네마 등이 내 영화 혹은 청춘의 추억과 관련있다. 
물론 시네마정동도 포함이다. 난 일요일 조조 영화를 좋아했는데, 조금만 부지런을 떨면 영화 한 편을 보고서도 휴일 오후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었다. 이대 부근의 작은 극장에서 일요일 오전 <화양연화>를 혼자 봤던 기억이 있다. 영사실 아저씨는 내가 있는 것을 보고는 광고도 없이 바로 본편을 틀어줬다. 내가 없었다면 고스란히 휴식시간이었을테지. 
이대 부근의 또다른 극장에서는 알모도바르의 <라이브 플래쉬>를 봤다. 객석이 좌우로 넓게 퍼진 곳이었는데, 관객을 합쳐봐야 4~5명이었다. 영화는 에로틱한데 조그마한 소리에도 움찔움찔 놀라곤 했다. 

우리는 '영화 보러 간다'는 말만큼이나 '극장 간다'는 말을 자주 쓴다. 극장에 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문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극장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서고 연인과 만나고 팝콘이나 콜라를 사고 영화를 본 뒤의 데이트까지, 영화가 태양이라면 극장은 태양계다. 

2000년대 중반까지 영화 관객은 꾸준히 늘어났다. 요즘의 20대들은 예전의 20대보다 영화를 많이 본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들이 영화를 보는 곳은 시네마정동, 단성사, 서울아트시네마, 코아아트홀이 아닌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의 어느 지점이다. 
그들도 이곳에서 나름의 추억을 만들 것이다. 그러나 난 평론가 정성일의 냉소가 먼저 떠오른다. "멀티플렉스에 가는 건 테마파크에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CGV강변에서,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롯데 건대입구에서 때론 퀴퀴하고 때론 짜릿하고 때론 가슴저린 추억이 쌓일 수 있을까. 

난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난 그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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