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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모차 끌고 음악 페스티벌 가기
지산 밸리니, 펜타포트니, GMF니 하는 음악 페스티벌에 간 지 오래됐다. 공연을 보더라도 실내에서 앉아서 보는 것이 좋지, 서서 보기는 좀 힘들다. 물리적인 부분보다는 앉아서 듣는 종류의 음악에 요즘 더 끌리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GMF도 별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아내가 강력하게 가길 원했다. 동네에서 열리는데다가, 날씨도 좋고, 유모차를 끌고 다녀올 수도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음악 담당 선배에게 얘기했더니 "가는 대신 기사를 쓰라"는 거래를 역으로 제안해왔다. 아내와 선배 사이에 낀 나로서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음악 페스티벌에 다녀온다고?

세계 대중음악사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 페스티벌인 1969년의 우드스탁을 아는 이들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우드스탁은 진흙투성이였고, 도처에서 자유롭고 즉흥적인 사랑 놀음이 벌어졌으며, 무엇보다 환각제가 넘쳐났다. 어느모로 봐도 돌이 채 되지 않은 아기에게 유익한 환경은 아니다.

그러나 69년 이후 음악 페스티벌의 모습은 크게 변했다. 이번에 다녀온 곳은 매년 가을 서울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열리는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이었다. 2007년 처음 시작한 이 행사는 도심 속의 음악 페스티벌을 지향한다.

23일은 날씨가 좋았다. GMF의 메인 스테이지라 할 수 있는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는 잔디마당에서 열린다. 이날 낮에는 나루, 원 모어 챈스, 보드카 레인 등이 가을 햇살 아래 공연했다. 무대 전면으로는 스탠딩 관객을 위한 공간이 설치됐고, 나머지 잔디밭에는 피크닉 존이 몇 개의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피크닉 매트들이 깔려 있었다. 공간이 넓어 유모차를 끌고 들어가기에도 부족하지 않았다.

관객 구성은 남녀 커플이 가장 많았고, ‘여여’, ‘여여여’, ‘여여여여’ 등도 다수였다. 남자끼리 온 관객은 어디 숨었는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도 몇 차례 마주쳤다. 그러므로 여성이 훨씬 많았다. 대략 살펴봐도 여성 대 남성 비율이 7:3 정도였다. 
무대 위의 뮤지션들은 ‘여성친화적’ 멘트를 아끼지 않았다. 23~24일 공연한 팀은 양방언, 이소라, 페퍼톤즈, 이승환, 클래지콰이, 김윤아, 이지형, 이승열, 짙은 등이었다. 천둥벌거숭이같은 펑크 밴드, 노래하다 기타줄과 드럼 세트와 목청을 망가뜨릴 기세의 헤비메탈 밴드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덕분에 유모차 안의 아기도 꽤 오래 잠들어 있었다.





관객들은 좋아하는 밴드가 나오면 스탠딩 존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미동하지 않는 관객이 더 많아 보였다. 멀리 떨어진 피크닉 존에 앉아도 무대는 잘 보이지 않을지언정, 음악은 잘 들렸다. 대형 전광판이 있어서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잔디밭 위의 관객들은 가을바람보다 살랑살랑한 음악이 들리는 공원에 피크닉을 나온 듯한 분위기였다. 1일권이 6만6000원인 음악 축제에 와서 책을 읽는 사람도 많았다.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자는 이도 있었다. 서로 팔베개를 하거나 무릎팍에 누운 남녀도 눈에 들어왔다. 주최측은 “가족 관객이 있으니 과도한 애정 행각은 자제하라”는 공지사항을 일찌감치 띄워 두었다. 대단한 일탈자는 없는 듯했다.

GMF는 ‘친환경’을 강조했다. ‘마트에서 구입한 식음료, 패스트푸드, 배달음식’ 등을 규제한다고 했다. 환경 캠페인을 벌이거나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다. 음식을 파는 부스도 많았는데, 가격은 합리적이었다. 떡볶이 2000원, 커피 3000원, 맥주 3000원, 덮밥 6000원 수준이었다. 브리토, 나초, 봉지 칵테일 등 다양한 음식이 있었다. 그러나 역시 직접 싸온 닭강정, 샌드위치, 김밥, 유부초밥 등을 먹는 관객도 많았다.

한국의 록 페스티벌 초창기보다 발전한 점은 스태프의 역량이었다. 잔디마당에는 민트 브리즈 스테이지와 신인급 뮤지션이 서는 NB 카페 블로섬 하우스가 마주보고 서있다. 민트 브리즈의 공연이 끝나면 NB 카페 공연이 이어지는데 정해진 시간표에서 큰 오차 없이 진행됐다. 예전의 록 페스티벌에서는 밴드마다 사운드 체킹 시간을 조금씩 더 잡아먹는 바람에, 마지막 밴드에 이르면 예정보다 1시간씩 늦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제 록 페스티벌은 야성을 잃었다. 69년 우드스탁같은 문화 혁명의 기운은 떠올리기조차 민망하다. 우드스탁의 더러운 화장실과 바가지, 비좁은 숙소는 낭만이었겠지만, 이제는 불편이다.

대신 음악 페스티벌의 문턱은 낮아졌다. GMF는 이곳에서 공연한 뮤지션을 단 한 팀도 몰라도 즐길 수 있는 축제였다. 요즘의 음악 페스티벌은 위대하거나 혁명적이거나 파격적이지 않다. 나른하고 일상적이고 합리적이다. 지금의 음악, 그리고 생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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