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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죽도록 일하는 여자, <굿모닝 에브리원>
이 영화에선 해리슨 포드가 꽤 근사하다. 그의 벌레씹은 듯한 표정과 말하기 싫다는 듯한 말투가 재미있다.


여자는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일해야 합니까.

성공하기 위해선 누구나 죽도록 일해야 하는 사회입니다. 가끔 삼신 할머니가 돈 많고 권세 있는 가문에 점지해줘서 노력 없이도 높은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계실 겁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 속에서 여성이 성공하기는 남성에 비해서도 훨씬 힘듭니다. 2009년 중앙행정기관 41곳의 고위공무원 1428명중 여성은 40명이었고, 대기업 여성 임원 비율은 1%대입니다.


<굿모닝 에브리원>의 베키(레이챌 맥아담스)는 지역 방송사의 모닝쇼 프로듀서입니다. 인력 감축으로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그는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다가 뉴욕의 중앙 방송사에 어렵사리 취직합니다. 그러나 베키가 맡은 프로그램은 경쟁사 프로그램들에 완전히 밀려 최악의 시청률 기록을 세우고 있는 모닝쇼 <데이 브레이크>입니다. 의욕이 넘치는 베키는 전설적인 앵커 마이크 포메로이(해리슨 포드)를 영입해 완전히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강직하지만 고지식한 언론인 포메로이는 모닝쇼의 말랑말랑한 아이템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냅니다.


베키는 취직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한다”고 소개합니다. 퇴근한 뒤에도 핸드폰과 노트북 컴퓨터를 내려놓지 않고 일합니다. 그렇게 해서 연애가 될리 없습니다. 소개팅을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없습니다. 


예전에는 영화와 드라마 속 남성들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습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노력과 집념으로 직장에서 성공한 뒤 행복한 가정도 꾸린다는 것이 대략적인 줄거리였습니다. 그러나 요즘 남자 배우를 주인공으로 삼아 그런 작품을 만든다면 시대착오라는 비판을 감수해야 할 겁니다. 사랑을 버리고 야망만 추구하는 남자 주인공의 끝은 결국 파멸입니다. 직장에서 경쟁자에게 제거되거나, 가난한 시절 버린 연인에게 복수당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인 <굿모닝 에브리원>의 엔딩이야 다들 짐작하는 대로죠. 그러나 이 영화의 문제는 여성이 성공하기 위해선 ‘일벌레’ 혹은 ‘악마’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긍정하고 심지어 분홍빛으로 치장하는데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와 시나리오 작가를 공유하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역시 악마같이 일하는 패션잡지 여성 편집장을 영웅처럼 그려냈습니다. 


100만 관객을 동원한 <블랙 스완>의 흥행도 같은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발레리나 니나는 꿈에 그리던 <백조의 호수> 주역으로 발탁되지만, 정상의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중압감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를 파괴하기 시작합니다. 성공에 대한 갈망과 실패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는 니나의 모습에 많은 젊은 여성 관객이 쉽게 동일시한다는 얘깁니다.


악마, 벌레, 마녀가 아닌 멀쩡한 여성도 성공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일중독과 성실, 착취와 경쟁을 혼동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더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