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에 해당되는 글 2건

  1.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애플의 삼국지, <디지털 워>
  2. SF민주주의, 무의식민주주의, DB민주주의,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디지털 워

찰스 아서 지음·전용범 옮김/이콘/464쪽/1만7000원


총알, 폭탄이 없고 사상자도 없었다. 하지만 1998년 이후 실리콘 밸리에서는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예전의 많은 전쟁이 그러했던 것처럼 이 ‘디지털 전쟁’ 역시 우리 삶의 양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동양 고전 <삼국지>에선 위·촉·오가 천하를 두고 겨뤘는데, ‘디지털 전쟁’의 주역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이었다. 


‘디지털 전쟁’의 초반, 마이크로소프트는 천하를 거머쥐고 있었다. 애플은 한때 융성했으나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 듯 보였다.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원을 그만둔 25세 동갑내기 청년 둘이 창고에 세운 자그마한 정보기술(IT) 회사에 불과했다. 당시 구글은 닷컴 호황기에 거품처럼 생겼다 터질 수많은 벤처 회사의 하나처럼 보였다. 전쟁의 시작 시점을 98년으로 잡은 것도 바로 이 해 에 구글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IT 전문기자가 지은 <디지털 워>(원제 Digital Wars)는 세 회사가 치른 격전의 양상, 경영자들과 기술자들의 전략, 전쟁의 승패를 가른 소비자의 욕망과 반응을 상세하고 알기 쉽게 전한다. 


98년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업가치는 2500억 달러였고, 43세의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부자였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는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PC)의 95%에 설치돼 있었다. 그러나 돈으로 존경을 살 수는 없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느덧 <스타워즈> 속 ‘악의 제국’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들은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비열한 행동을 했다. 윈도우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다른 부문에서도 강압적인 이득을 얻으려 했다. 웹 브라우저 시장의 경쟁자인 넷스케이프를 고사시키기 위해 윈도우에 자사 제품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판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PC제조업체들에겐 윈도우를 팔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소비자들은 피해를 입었다. 일단 다양한 웹 브라우저를 선택할 권리를 잃었다. 악성 바이러스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통해 윈도우 시스템 전체를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아진 것도 또다른 피해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 행위를 조사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그들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 회사가 쪼개지는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그러나 반독점 소송은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프로그래머들은 이후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또 반독점법을 위반하는 건 아닐까” 하는 체크리스트를 떠올려야 했다. 결정적인 타격은 프로그래머들의 자부심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실리콘 밸리의 프로그래머들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는 것이 양심을 파는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후 실력있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선 마이크로소프트에 들어가길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다. 


신생기업 구글이 내건 모토는 당시의 이같은 흐름을 반영한다. “사악하지 말자”(Don‘t be evil). 구글의 공동창업자인 1973년생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웹서핑을 하면서 자라난 세대였다. 이들은 온라인 시장의 잠재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회사 중역이 된 뒤에야 인터넷을 만난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이 인터넷의 중요성에 대해 잘 몰랐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1990년대 후반에도 알타 비스타, 야후 등 몇 가지 검색 엔진이 나와 있었으나 이 검색 엔진 회사의 최고경영진들은 검색의 정확성을 높이기보다는 광고수익을 올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이들은 오히려 너무 정확한 검색 결과를 알려준다면 네티즌들이 곧바로 해당 사이트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은 필요치 않다고까지 했다. 이는 전통적인 기업 논리에서는 자연스러웠다. 


페이지와 브린은 전통적 기업인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글을 각종 광고와 포르노 사이트로부터 해방시키려 했다. 오직 정확하고 신속하게 검색 결과를 찾아내 사용자에게 제시하는데 집중했다. 구글의 메인 페이지는 구글 로고와 검색창 하나로만 구성됐으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이렇다할 마케팅도 하지 않았다. 그 돈이 있으면 출장 요리사를 고용해 직원들에게 최고의 요리를 제공하는데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구글 직원들은 맛있는 점심 식사를 찾아 실리콘 밸리는 헤매는 대신, 구내식당에서 일급 요리를 먹은 뒤 다시 일을 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돈이 안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다. 바로 사용자의 충성심이다.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다. 네이버에 길들여져있으면 네이버만 찾는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 검색 엔진이라 하더라도 손에 익지 않으면 어색하게 느껴진다. 구글은 철저히 공학도의 회사였다. 그들은 디자인에도 돈을 쓰지 않았다. 구글 로고 역시 설립자 중 한 명이 포토샵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가장 실용적인 길을 걸은 덕분에 구글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뉴스와 정보에 대한 링크를 제공한 유일한 사이트가 됐다. 


공룡 마이크로소프트는 뒤늦게 검색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가장 쉬운 방법은 구글을 사버리는 것이었다. 2003년 마이크로소프트는 구글에게 제휴 혹은 인수를 제안했으나 페이지와 브린은 이를 거절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영향력 아래 들어가는 순간 관료적으로 경직돼고 혁신은 둔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글을 살 수 없다면 이겨야 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신만만했다. 돈과 재능을 무한정에 가깝게 쏟아부을 수 있었기에, 곧 구글을 따라잡을 것이라 자신했다. 


그러나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는 대군도 게릴라를 이기기 힘들다. 인터넷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익숙하지 않은 곳이었다. 멋진 식당에 여러 부서 사람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던 구글과 달리, 마이크로소프트는 각 부서별 실적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거액을 투자해 내놓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검색 사이트는 엉망이었다. 구글을 진정한 경쟁상대라고 여길 정도의 혜안을 가진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내에선 빌 게이츠 뿐이었으나, 이미 그는 경영 일선보다 사회사업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든 애플에서 쫓겨났다가 그 회사가 위기에 빠진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애플이 구색 맞추기로 내놓은 제품 대부분의 생산을 중단했다. 애플의 부활은 디지털 음악 시장에서 시작됐다. 페이지와 브린이 공학도였다면 잡스는 디자이너에 가까웠다. 그는 디지털 음원을 재생할 수 있는 아이팟의 용량, 기술적 특성보다는 외형적 특성에 집착했다. 하얀 이어폰이 꼽힌 아이팟을 들고 있는 것만으로 무언가 멋진 사람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잡스의 목표였다. 잡스는 아이팟을 월마트 같은 대형 유통망에 납품하지 않았다. 그곳이 진열대에 놓여 다른 MP3 플레이어와 비교되는 순간, 아이팟은 똑같은 싸구려로 전락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이팟을 전시하는 애플 매장은 고급 자동차 매장처럼 꾸며졌다.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애플의 스티즈 잡스


소비자들은 잡스의 뜻대로 움직였다. 마이크로소프트 액셀을 사용하거나 구글 검색 엔진을 사용한다고 멋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팟을 들으면 멋져보인다고 소비자들은 느끼기 시작했다. 아아팟, 아이팟 미니, 아이팟 나노 등이 잇달아 인기를 끌었다. 이제 애플 제품은 하나의 생태계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아이팟의 판매가 정점에 오르기도 전, 잡스는 선지자적인 안목으로 새 사업을 은밀히 구상하고 있었다. 잡스는 노키아, 모로토라 등의 거인이 자리잡고 있던 휴대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다들 잡스를 비웃었다. “휴대폰은 PC와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잡스는 직원들을 미치기 직전까지 닥달했다. 아이폰 개발 연구소가 은밀하게 자리잡은 건물 복도에는 문을 세게 닫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바람에 손잡이가 부서져 연구실 안에 사람이 갇히는 일도 있었다. 


잡스의 복안은 ‘터치’였다. 그는 아이폰에 단 하나의 버튼만 달기를 원했다. 그 이외 모든 것은 ‘터치’였다. 잡스 이전엔 그 누구도 인터넷을 손으로 어루만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내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다시 한번 열광했다 태평양 건너편에서도 밤을 새면서 섬세하게 연출된 잡스의 신제품 발표회를 기다리는 팬이 생겼고, 애플 신제품이 출시되는 날 새벽부터 줄을 서는 풍경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이번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혼란에 빠져 있었다. 회의를 하다가 빌 게이츠가 전화를 받느라 자리를 비우면 최고경영자 스티브 발머가 한 가지 얘기를 하고, 발머가 자리를 비우면 게이츠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명확히 알려주는 이가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한 휴대폰 회사 데인저의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고민 끝에 내놓은 아이디어들은 계속 묵살당했다. 갈수록 힘이 빠졌고 제품에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만 분명해졌다. … 지도자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순간, 우린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 스마트폰으로 시장을 장악하는 대신, 자신들이 쌓아온 특허로 유력 스마트폰 회사의 발목을 잡는데 집중했다. 


2011년 8월 9일, 애플의 시가총액은 3415억 달러까지 상승해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회사가 됐다. 그날 마이크로소프트는 2143억 달러, 구글은 1851억 달러였다. 98년 세 회사의 가치는 각각 애플 55억4000만 달러, 마이크로소프트 3446억 달러, 구글 1000만 달러였다. 애플이 62배, 구글이 18510배 몸집을 불린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3분의 2로 줄어든 셈이다. 애플이 아이패드로 태블릿PC 시장에서 선전하고, 구글이 휴대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로 승승장구하고 있으니 이러한 구도는 당분간 고착될 가능성이 많다. 


한국에서 애플과 스마트폰 시장의 양강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삼성에 대한 언급은 없을까. 몇 차례 나오긴 한다. 2009년 12월 한 삼성 직원이 아이패드의 추정 출시량, 스크린 주문량 등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했는데, 출시전까지 엄격한 비밀주의를 고수한 잡스가 이 소식을 듣고 삼성 스크린 구매 계약을 해지했다는 정도가 주요한 내용이다. 저자의 시선에 삼성은 그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이용하는 덩치 큰 휴대폰 제조회사, 즉 구글의 말(馬) 정도다. 실리콘 밸리 회사만을 IT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서구 저자의 편견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 견해가 틀리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일반의지 2.0: 루소, 프로이트, 구글

 아즈마 히로키 지음·안천 옮김/현실문화/320쪽/1만5000원


한나 아렌트나 위르겐 하버마스는 틀렸을까. 아렌트는 사람들이 함께 활동하고 대화함으로써 정치적인 장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 말을 나누지 않는 인간은 자기 생명을 유지하는데만 관심있는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한다고 했다. 하버마스는 18세기 영국, 프랑스의 신문, 카페를 살폈다. 여기서 저널리즘이 생기고 토론하는 공중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두 사상가는 의사소통이 정치의 근본이라고 여겼다. 


당연하면서 상식적인 이야기다. 그러나 오늘날 정치 상황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다. 국가의 거시적 정책부터 시민 사회의 미시적 실천까지, 전쟁을 방불케하는 피아의 구분이 이뤄지고, 논의는 끝없이 제자리를 맴돈다. 공청회는 요식 행위고, 토론은 파행이다. 누군가는 정치인의 역량 부족을 탓하겠지만, 4년에 한 번 있는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이 대거 바뀌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나마 투표율은 해마다 떨어지고, 정치적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는 제한돼 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좌절, 열광과 환멸의 사이클”을 이야기했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화를 통한 의사소통과 공론장의 형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회의에 빠질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민의 역량을 고양시키는 동시, 정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고 믿을 것이다. 일본의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는 다르다. 그는 민주주의 사회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요약하면 아즈마의 민주주의는 ‘소통 없는 민주주의’다. 그는 논의와 타협을 거치는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폐기처분해야 하는 헛된 이상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아즈마가 주목한 이는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다. 루소는 자연 상태에 있는 ‘야생인’의 행복을 노래한 개인주의자(에밀)인 동시, 각 구성원의 권리를 공동체에 양도할 것을 주장하는 전체주의자(사회계약론)이기도 한 모순에 찬 인물로 비친다. 아즈마는 바로 이 루소의 모순에서 새로운 민주주의의 돌파구를 찾아낸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일반의지’ 개념을 도입했다. 사람은 자유롭고 고독한 존재로 태어나지만, 어느새 집단 생활을 하면서 사회계약을 맺는다. 사회계약이란 인민 모두가 자신의 권리와 자기 자신을 공동체 전체에 완전히 양도하는 것인데, 그 결과 탄생하는 것이 개인 의지의 집합체인 ‘일반의지’다. 일반의지를 따르지 않는 정부는 언제라도 전복될 수 있다. 정부 역시 일반의지의 손발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데 루소의 일반의지는 흔히 생각하는 ‘여론’과도 다르다. 루소는 “일반의지는 항상 옳고 항상 공공의 이익을 향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루소가 인민의 선의와 이성을 믿어서가 아니라 일반의지 자체가 공공성의 기준을 정의하기 때문이다. 즉 일반의지는 ‘수학적인 존재’다. 


이러한 일반의지를 추출하는 과정은 급진적이다. 루소는 “주권은 대표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인민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져 숙고할 때, 시민들이 서로 어떠한 의사소통도 하지 않는다면, 작은 차이가 많이 모여 그 결과 항상 일반의지가 생성되어 숙고는 항상 바른 것이 될 것이다.…각 시민이 자기 자신에게만 따르며 의견을 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사회계약론>은 전한다. 즉 일반의지의 성립 과정에는 시민 간의 토의, 의견 조정이 필요 없다는 뜻이다. 아즈마는 이를 “일반의지는 집단 구성원이 하나의 의지에 동의해가는, 즉 의견 차이가 사라지고 합의가 형성되는 것을 통해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다양한 의지가 서로 간의 차이를 내포한 채 공공의 장에 나타남으로써 순식간에 성립한다”고 해석했다. 그런 면에서 일반의지는 언어보다는 물질, 인간의 질서가 아닌 사물의 질서에 속한다. 


이것은 말이 되는 소리일까. 사실 루소 시대엔 말이 안됐다. 일단 이러한 일반의지를 추출할 방법이 없었다. 일반의지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선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즈마는 정보기술혁명이 진행중인 21세기엔 일반의지를 드러낼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검색엔진 구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트위터, 포스퀘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드러나는 수천만, 수억명의 데이터에서 ‘개개인의 의도를 뛰어넘은 무의식적인 욕망 패턴’을 추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즈마는 현대사회를 ‘총기록사회’라고 정의한다. 검색 엔진, 블로그,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을 통해 개인의 일상과 정보가 낱낱이 기록된다. 총기록사회는 이전 세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본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해도, 데이터베이스는 알고 있다. 여기서 아즈마는 “일반의지란 데이터베이스를 의미한다”고 선언한다. 일반의지 1.0은 실재하지 않았지만, 일반의지 2.0은 실재한다. 일반의지 2.0은 “이념도 이야기도 아니며, 구체적인 데이터베이스로 어딘가의 서버에 들어있다.” 일반의지 2.0이 존재한다면 더 이상 누군가가 우리의 의지를 대의할 필요가 없다. 


정부 2.0은 일반의지 2.0의 하인이다. 미래의 정부는 시민들의 명시적인 의견을 듣는 대신, 광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새겨진 욕망의 집적, 집합적 무의식에 충실하면 된다. 국민을 억압하거나 감시하지 않으며, 오직 시민 생활과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플랫폼으로서의 정부 2.0. 인터넷 서점이 개인의 구매 이력을 축적했다가 관련 서적을 자동으로 추천하는 것처럼, 정부 2.0은 개인 정보를 파악해 교육·의료·구직 등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스마트폰의 위치 정보, 고속도로 이용료 징수 정보, 개인의 트위터 등이 모두 일반의지를 이룬다. 정부 2.0이 그리는 미래에서 공적인 토론은 무용하다. “정치의 위기에 대한 응답은 사회사상의 개념 조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기술적인 도전을 통해 시도되어야 한다”고 아즈마는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아는가. ‘그렇다’라고 말하는 것은 근대의 사고 방식이다. 많은 현대의 사상가들은 인간 이성이 이성 외부의 그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대표적이다. 일반의지 2.0의 시대는 공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의식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에 주목한다. 데이터베이스는 거대한 무의식의 총합이다. 인간은 연약하고 비사교적인데다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지만, 수많은 개인이 참여해 만들어낸 구글의 검색어 자동 완성 기능은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아즈마는 일본의 검색 엔진에서 ‘남편’을 치면 ‘남편 죽었으면 좋겠다’, ‘남편 용돈’, ‘남편 싫다’ 등이 함께 검색된다고 전하는데, 한국에서는 ‘남편이 바람피는 꿈’, ‘남편에게 사랑받는 법’, ‘남편의 외도’ 등이 나왔다. 아무튼 이것은 “수백만, 수천만에 이르는 사람들이 어떤 문자 배열에 이어서 수없이 입력해온 배열의 흔적”이다. 


‘큰 공공’ 혹은 ‘거대 담론’은 사라졌다. 사회 전체가 동의하는 내용이란 있을 수 없다. 현대사회는 지나치게 복잡하다. 대중은 선거 때마다 플라톤의 철인과 같은 위대한 정치인을 기다리지만, 그것이 헛된 기대임은 투표 용지에 기표하는 순간부터 명백하다. “인류 정치학자가 평범한 베스트셀러나 대중서에 눈물을 흘리고, 일류 경제학자가 인터넷 우익과 다름없는 편견을 갖고, 일류 수학자가 뻔한 국가관이나 가정관을 늘어놓는 것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선량의 뛰어난 의지와 대중의 우매한 의지가 충돌한다는 생각은 낡았다. 인간은 때로는 선량으로, 때로는 대중으로 존재한다.  


미래의 국가는 국민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한다. 아즈마는 정부 2.0이 수도 사업국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비유한다. 우리는 수도 없이 살 수 없지만, 수도의 체제나 운영에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물론 물이 제대로 배분되지 않으면 시민이 먼저 나서 그 문제점을 따지고 관련자를 문책하라고 요구하겠지만, 그건 예외적인 경우다. 


몇 가지 거센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혹시 일반의지 2.0의 시대는 대중의 무의식 혹은 동물적인 욕망만을 따르는 극단적인 포퓰리즘의 시대가 아닐까. 아즈마는 선량이 대중의 뜻에 그대로 따르거나 선량이 대중의 폭주를 억누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대중의 재잘거림으로 선량의 폭주를 억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법안을 논의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생중계되면, 그 중계를 보는 대중의 재잘거림이 국회에 떠오른다. 정치인은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혹시 ‘동물적인 삶의 안전은 국가가 보장하고, 인간적인 삶의 자유는 시장이 제공’하는 것은 극단적인 신자유주의 사회의 모습 아닐까. 아울러 모든 생활정보를 기록하는 ‘총기록사회’는 감시국가의 또다른 면모 아닐까. 아즈마는 미래의지 2.0의 시대가 시장 원리주의와 연계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회민주주의와도 연계될 수 있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적’인 사회라고 말한다.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아즈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민주주의를 실현한다’는 식의 뻔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 정치나 통치의 이미지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의지 2.0이 만들어가는 ‘무의식 민주주의’ 시대에는 대중의 무의식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시화된 대중의 무의식에 숙의(熟議)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논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일반의지 2.0의 시대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의 무의식이 국회의사당에 침투하는 시대, 개인과 국가의 관계가 ‘쿨’한 나머지 국기에 대한 경례나 국가 제창 같은 것은 할 필요를 못 느끼는 시대, 대중의 의지가 물질적으로 드러나는 시대다. 어쩐지 1990년대 일본의 SF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기발하면서도 위험하면서도 아슬아슬한 느낌이다. 그러나 일본 대중문화의 상상력은 우리의 미래를 덜컹거리며 선취해왔다. 실제로 가라타니 고진의 뒤를 이어 2000년대 일본 사상계의 ‘스타’ 대접을 받는 아즈마 히로키는 대중소설, 애니메이션, 게임 등 하위문화 비평가로도 이름이 높다. 


그래도 여전히 아즈마의 논의가 “말도 안된다”거나 “위험천만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즈마는 <일반의지 2.0>의 1장을 이런 문장으로 시작했다. “이제부터 필자는 꿈을 논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