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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삼겹살을 안 먹을 수 있을까, <동물을 위한 윤리학>





공장식 축산의 끔찍함 혹은 동물원의 열악함을 떠올리거나, 이 책과 같이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논변을 전개하거나, 결국 결론은 채식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우리는 삼겹살의 고소한 기름내를 멀리할 수 있을 것인가. 스스로 내려야 하는 실존적 결단만이 남았다. 아마 그런 결단은 어떤 깨달음의 순간에 따라와야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임순례 감독이 전한 순간은 이렇다. 시장에서 사와 마루에 둔 검은 비닐 봉지 속의 바지락들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동물을 위한 윤리학

최훈 지음/사월의 책/368쪽/1만8000원


철학은 생각의 한계를 시험하는 학문이다. 이렇게 확정된 생각의 경계는 그에 따르는 실천을 요구한다.


최훈 강원대 교수는 ‘채식주의 철학자’다. 이는 동물의 ‘도덕적 지위’(moral status)를 윤리학적, 논리학적으로 따진 뒤 얻은 결론을 실천에 옮긴 결과다. 그의 전작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동물 윤리를 사육, 도살 환경, 채식 등 현장의 지식과 연관해 풀어낸 대중서였다. 신간 <동물을 위한 윤리학>은 동물의 도덕적 지위에 대한 본격적인 철학서를 지향한다. 데카르트, 칸트, 존 롤스, 피터 싱어 등의 윤리학을 경유해 동물 윤리에 대한 기초를 세운다. 한국에선 보기 드문 시도다.


도덕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도덕적으로 의미 있게 고려한다는 뜻이다. 도덕적 지위를 갖는 대상에 대해 우리는 도덕적 의무를 져야 한다. 예를 들어 장난감에는 도덕적 지위가 없다. 실수로 장난감을 밟아 부숴뜨렸다면 그 장난감을 소유한 아이에겐 사과할지언정, 장난감에게 잘못을 느낄 필요는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대체로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았다. 동물을 장난감, 돌, 식물과 같이 여겨왔다는 뜻이다. 이 책은 동물에게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다. 여기서 키워드는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 즉 ‘감응력’이다. 인간과 동물은 모두 고통을 느끼기에, 인간에게 고통을 주어선 안된다면 동물에게도 고통을 주어선 안된다는 것이 논지의 핵심이다.


감응력은 도덕적 지위의 충분조건이다. 어떤 이들은 합리성, 언어를 통한 의사소통 등도 도덕적 지위를 부여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영·유아, 정신지체인 등에게 도덕적 지위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도덕적 지위의 기준을 낮게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감응력은 도덕적 지위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감응력이 있는, 즉 고통을 느끼는 존재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신경 쓸(mind/care) 수 있기에, 이런 존재에게 불쾌함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식물, 광물 등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신경쓰지 못하는 존재에겐 도덕적 지위가 없다.





저자는 동물과 인간을 다르게 대우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종차별주의자’라고 부른 뒤, ‘가장자리 인간’ 논증으로 이들을 곤란하게 한다. 가장자리 인간이란 유아, 식물인간, 지적 장애인 등 합리성, 도덕성이 없고 언어나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동물이 인간의 특성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차별해도 된다고 여긴다면, 이들 가장자리 인간을 차별하는 것도 정당화된다는 논리다. 종차별주의는 새로운 인간차별주의로 연결된다.


저자는 동물에게 고통을 강요하는 육식, 동물실험, 구제역 살처분 등의 사례를 검토한다. 특히 구제역에 감염됐거나 감염이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수백만 마리의 소, 돼지를 죽이는 대처방법을 비판한다. 인간을 전염병에 걸렸거나 전염병 창궐 지역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여서 매몰해서는 안되듯, 동물도 마찬가지다. 살처분이 정당화되려면 ①그 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②살처분 이외에는 대처 방법이 없다. ③감염된 동물과 감염되지 않은 동물을 구분할 방법이 없다는 조건이 만족돼야 한다. 하지만 저자는 살처분은 병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데다가, 현재의 공장식 축산 형태는 구제역이 발병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채식주의, 환경주의, 여성주의의 교차점을 검토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환경주의가 채식주의와 깊이 연관돼있다는 것이 세간의 인상이지만, 저자는 철학적으로 따져볼 때 두 진영은 예상외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한다. 환경주의는 도덕적 지위의 대상을 흙, 물, 식물 등으로까지 넓힌다. 하지만 감응력 이론을 따르는 채식주의자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동물 이외의 대상도 함부로 대해선 안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이는 그들에게 도덕적 지위가 있어서가 아니라 식물이나 물을 훼손하면 간접적으로 인간, 동물이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환경주의자들이 채식을 비판하거나 사냥을 옹호한다는 점도 채식주의자와 다른 점이다.


오히려 채식주의는 여성주의에 친연성을 보인다. 특히 생태여성주의는 “여성의 억압과 자연의 억압 사이에 역사적, 경험적, 기호적, 이론적으로 중요한 연관이 있다는 입장”인데, 이는 채식주의의 논리와 거의 유사하다. 여성의 몸에 대한 착취·소비를 비판하는 논리는 고기의 상품화 비판 논리와 통한다. 저자는 “일관적인 사고를 하는 합리적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동물을 도덕적으로 대하자고 말한다. 좀 더 간결하게는 “각 동물의 본성을 존중해 주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