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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미다스의 손, 장민승




사적인 팁을 얻어 추진한 인터뷰였는데, 대단히 즐겁고 알찬 시간이었다. 그는 음악 만들고, 가구 만들고, 사진 찍고, 설치 한다. 다만는 글쓰기엔 좀 취약하다고 고백했다. 나로선 다행이다. 




장민승(36)은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음악을 하다가 가구를 만들었고 또 얼마 있다가 사진을 찍고 설치 작업을 했다. 그리고 모두 성공했다. 작업 매체를 바꾼 이유는 “싫증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평생 한 가지만 하고도 이름을 못떨치는 사람이 보기엔 복장 터지는 노릇이다. 


그는 최근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후보 3인에 올랐다. 서울 강남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는 그의 신작 <검은 나무여>가 전시중이다. 어두컴컴한 복도에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 6편이 수용성 종이에 인쇄돼 걸려있다. “파도는 차갑고, 물새도 잠들지 못하는구나” “꿈은 마른 들판을 헤메고 돈다” “검은 나무여, 에전엔 흰 눈 쌓인 나뭇가지였겠지”. 검은 방에 들어가면 스크린 속 검은 옷을 입은 여성이 수어(手語)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어디선가 파도 소리, 방울 소리가 들려온다. 


 


장민승 작가의 신작 <검은 나무여>의 영상(위)과 하이쿠를 적은 수용성 종이. 바쇼가 임종 직전 남겼다는 이 하이쿠는 수어로 옮긴 뒤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바쇼의 원래 구절과 조금 바뀌었다. 


작품은 아무 것도 지시하고 있지 않지만, 관람객은 즉시 <검은 나무여>에서 죽음, 특히 지난해 벌어진 커다란 참극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사건이 벌어진 날, 장민승은 절친한 친구이자 작업 동료인 정재일과 낮술을 마시고 있었다. 식당의 벽걸이 TV를 통해 거꾸로 곤두박질한 배를 보면서도 “전원 구조”라는 자막에 먹고 마시기만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은 곧 “사람이 가라앉아 죽어가는 모습을 하릴없이 보고 있었다”는데 대한 수치, 분노, 자괴감으로 뒤덮였다. 사건 이틀 뒤 에르메스 미술상 후보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기쁘지도 않았고,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지도 알 수 없었다.     


가톨릭 신자인 장민승은 수어 성가대의 공연에서 ‘소리 없는 들림’을 들었다. 사회의 차별, 갈등 속에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느꼈다. 우울할 때는 우울해하고, 슬플 때는 슬퍼해야 한다. 그는 “이 사회에선 우울한 사람에게 약 먹으라 하고, 슬퍼하면 경제 살리자고 한다”며 “조증으로 미친 사회에서 난 긍정적인 비관론자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장민승은 자신의 예술적 태도를 ‘울지 않는 상주’에 비유했다. 상주가 통곡하는 대신, 문상객들이 울든 웃든 이야기하든 마음대로 하게 자리를 마련해준다는 뜻이다. 그는 “누구에게나 부재하는 대상이 있다. 누구나 타인에게 공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머리와 표정에 힘을 준 장민승 작가. /김정근 기자


지금까지 장민승의 작품들은 그렇게 단단하고 차가웠다. 그것은 ‘예술’이라고 포괄할 수 있는 온갖 분야를 거치며 쌓아온 태도였다. 20세때 아버지인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의 영화음악으로 데뷔해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 등 20여편에서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영화 현장으로 치면 막내 연출부 나이에도 못미쳤으니, 초년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셈이다. 이 때는 홍대 앞 인디 음악계가 폭발한 시기이기도 했는데, 장민승 역시 아방가르드한 록음악을 들려준 황신혜 밴드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20대 후반엔 가구 만들기에 도전했다. 대학 전공이 조소였기에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데에는 자신 있었다. 그렇게 2~3년 가구를 만들면서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를 받고, 테이블 하나에 1000만원을 받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장민승은 공방에 머물지 않았다. “재능을 소수 부유층의 전유물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구를 만들 때 남의 사무실에 들르는 일이 잦았는데, 이때 공간과 가구에 개인 및 사회의 특성이 드러난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A multi-culture>(2008~2010) 프로젝트였다. 이는 브라질, 독일, 루마니아, 아랍에미리트연합 등 20개국 주한 대사의 집무실을 담은 사진 연작이었다. <수성십경>(2009~2010)은 옥인시민 아파트 철거 과정에서 찍은 수성동의 절경 사진 연작이었고, <상림>(2014)은 경남 함양의 숲을 영상과 음악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A multi culture> 프로젝트 중 브라질 대사관(위)과 숨막히게 아름다운 <수성십경> 중. 


장민승은 “개념, 논리로 이해하기보다는 감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엔 오랜 파트너인 정재일과 함께 영화를 찍어볼 생각이다.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영화가 될 전망이다. 그는 “한 분야만 잘하는 예술가가 많으니, 나같은 사람 한 명쯤 있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