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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슨 영화를 보겠다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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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경향신문 근무</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Tue, 9 Jun 2026 22:19:49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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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agingEditor>백승찬</managing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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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무슨 영화를 보겠다고</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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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모범적 지식 소매상, '바디: 우리 몸 안내서'</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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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까치)를 감탄하면서 읽다. 브라이슨은 생물학자도 의사도 아닌데, 피부와 털에서 시작해 뇌, 심장, 뼈, 소화기관을 거쳐 생식기, 질병, 현대 의학의 문제까지 우리 몸과 관련된 온갖 상식들을 흥미롭고 알기 쉽게 풀어낸다. 가끔 '평균적인 인간이 평생 내놓는 똥의 양은 6톤' 같이 '굳이 이런걸 알아야 하나' 하는 지식도 있지만, 저 지식을 내가 책을 들추지 않고 적을 수 있는데서 알 수 있듯 이 지식들은 기억에 남을만큼 재미있다기도 하다. 수많은 책을 살피고, 수많은 전문가를 만나 취재한 공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지식 소매상'이란 말은 이 정도 글을 쓴 뒤에 자칭해야 하지 않을까.&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인간의 몸에 대해 500페이지 이상 서술한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모른다'는 말이다. 수많은 인체 기관의 용도, 역할에 대해 우리는 아직 많이 모른다. 최근에야 그 역할이 밝혀진 기관도 있고,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짐작만 하는 기관도 있고, 아예 왜 그런지 모르는 기관도 있다. 우리는 왜 딸국질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왜 하품을 하는지도 모른다. 왜 다치면 치명적인 고환이 인체 바깥에 돌출해있는지도 모른다. 왜 만성 통증이 생기는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뜨거운 불에 데었거나 가시에 찔렸을 때 급성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몸을 보호할 수 없다. 즉 급성 통증은 '좋은 통증'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 수 없이 몇날 며칠간 사라지지 않는 만성 통증은 '몸의 보호'와 상관 없다. 대부분의 암 통증은 나타나는 시기가 너무 늦어 암 치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저 죽어가는 암 환자를 오랫동안 괴롭힐 뿐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마취 기술이 거의 없었고 각 장기의 기능에 대해 현대보다 훨씬 무지하던 시대에 행해진 각종 수술과 시술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너무 끔찍해 몸서리가 처졌다. 존 에프 케네디의 여동생 로즈 메리 케네디가 23살 때 받은 이마엽 절개술은 직전에 읽은 '살갗 아래'(아날로그)에도 나와 있어서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의학적 처치는 대부분 실패해 환자를 죽게 했지만 간혹 성공해 의학의 신기원을 열기도 했다. 환자가 아니라 자기 몸을 대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한 과학자, 의사도 많았다. '영웅적'이라 해도 될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몸에 대한 책의 결말이 '죽음'인 건 자연스럽다. 현대인의 사망 원인 중 암이 손꼽히는 건, 옛날 사람들은 암에 걸릴만큼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설령 모든 암을 완치시킬 방법이 나온다 해도, 인류 전체의 기대수명은 단 3.2년 늘어난다. &quot;가려서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해도, 어쨌든 죽는다.&quot; 생명체가 죽는 이유에 대해 여러 과학자들이 알아내려 노력했지만 여전히 미진하다. (예를 들어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라는 특수 DNA 가닥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는데, 정해진 길이에 이르면 세포는 죽거나 활성을 잃는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는다면 노화를 막을 수 있을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텔로미어는 노화 과정의 일부만을 설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늙으면 방광은 탄력을 잃어 화장실을 자주 찾아야 하고, 혈관은 더 쉽게 터져 멍이 잘 들고, 심장이 한 번 뛸 때마다 뿜어내는 혈액의 양도 줄어든다. 난자가 여전히 남아있어도 폐경은 찾아온다.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너무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라 화이자 같은 거대 제약회사도 알츠하이머병과 파킨슨병 연구를 거의 포기했다. 알츠하이머병의 치료에 대해서는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마찬가지 수준이다. 말기질환자의 50~60%가 죽음을 앞두고 강렬하지만 마음 편하게 해주는 꿈을 꾼다는 건 작은 위안이다. 죽은 뒤 봉인된 관 속에 묻히면 5~40년간 부패한다. 친지들이 무덤을 찾는 기간은 평균 15년이니, 세상에서 잊힌 뒤에도 시신은 여전히 지구에 남는다. 만일 화장한다면 재는 2킬로그램 정도다. 브라이슨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그것이 우리가 남기는 전부이다. 그러나 삶이란 살아볼 만하지 않았던가?&lt;/blockquote&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바디.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6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K2hNK/btqCB81bTk1/17jXvxf0r5vRgycbfM8kS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K2hNK/btqCB81bTk1/17jXvxf0r5vRgycbfM8kS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K2hNK/btqCB81bTk1/17jXvxf0r5vRgycbfM8kS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K2hNK%2FbtqCB81bTk1%2F17jXvxf0r5vRgycbfM8kSK%2Fimg.jpg&quot; data-filename=&quot;바디.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66&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category>바디 우리 몸 안내서</category>
      <category>빌브라이슨</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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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9 Mar 2020 15:10:47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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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페더러와 조코비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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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오랜만에 글 자체에 감탄하고 집중하면서 읽었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바다출판사)이다. 10대 때부터 불안장애와 우울증을 앓아 각종 항우울제 복용, 전기치료 요법을 병행하면서 살았고, 섹스, 마약, 술 등 온갖 것들에 중독된 적이 있으며, 결국 약이 듣지 않아 46세에 자살한 작가. 월리스는 미완성 유고를 포함해 단 세 편의 장편을 남겼으며, 평생 이런저런 매체의 청탁을 받아 취재하고 글을 작성했다. 이 책 역시 그런 에세이들의 편역본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평론가 신형철은 이 책에서 &quot;넌더리가 날 정도로 강박적인 자기 관찰, 삶이 진부하거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에 대한 또렷한 혐오, 심원한 존재론적 감수성에 촌스러운 비장함이 더해지는 것을 막는 냉소적 재치, 이 모든 것을 정확히 담아낼 문장을 쓰는 데 쏟았을 장인적 열정&quot;을 읽어냈다. 난 여기에 세상 모든 사태에 대한 비범한(실은 괴팍한) 시선, 인간사에 대한 혐오와 열망의 극단적 대비, 타인에 대해 생각한 그대로 혹은 더 신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도 들겠다. 첫번째는 정말 부럽고, 두번째는 저런 심성을 가진 누군가를 관찰하는 것은 흥미로울 수 있지만 난 갖고 싶지 않으며, 세번째는 훌륭한 저널리스트에게 필요한, 하지만 내겐 없는 덕성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역시 이 책의 핵심은 표제작이기도 한 에세이다. 잡지 하퍼스의 의뢰로 취재해 1996년 1월호에 실린 에세이인데, 월리스의 대표 에세이로 꼽힌다고 한다. 월리스는 취재 의뢰를 받아 카리브해 호화 유람선을 1주일 탑승한 후 이 에세이를 썼다. 심각하게 심사가 꼬인 인간인 월리스는 유람선에 탑승하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에서부터 1주일 후 내리는 시간까지 탁월한 관찰력과 대담한 취재력과 '인간이 왜 저런 생각을...'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황당한 생각을 갖고 유람선 구석구석을 누빈다. 30분간 방을 비우면 이름은 알지만 얼굴은 본 적이 없는 메이드가 방을 청소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29분 비웠다가 돌아오거나 34분 비웠다가 돌아오는 등 이상한 실험을 해보는 식이다. 배의 선원이든 선장이든 승객이든 아주 비트는데까지 비틀어서 다크 시트콤의 가장 다크한 캐릭터처럼 묘사한다. '랍스터를 생각해봐'는 요리 잡지 고메의 의뢰로 쓴 글이다. 고메는 '메인 랍스터 축제'의 취재를 맡겼는데, 월리스는 요리 잡지에 랍스터를 산 채로 물에 넣어 끓이면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해보라고 제안하는 글을 쓴다. 가재가 느낄법한 고통을 동물권 논쟁의 핵심적인 주제, 논변을 인용해가며 들려준다. 이 글이 동물권 잡지가 아니라 요리 잡지에 실렸다는 것 역시 중요 포인트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하지만 월리스가 그렇게 꼬인 글만 쓰는 작가는 아니라는 것은 9.11 직후 미국 한 시골 마을의 풍경을 그린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과 테니스 선수 로저 페더러에 대한 예찬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에서 알 수 있다. 특히 후자와 같은 글을 헌정받을 수 있는 페더러는 얼마나 기쁠까. 이 글을 읽은 얼마 후 호주 오픈이 열려 일부러 페더러와 조코비치의 경기 중계를 봤다. 안타깝게도 이전 경기에서 잇달아 풀세트를 치르고 온 페더러는 절정의 힘과 기세를 가진 조코비치에게 맥없이 지고 말았다. 조코비치의 결승전도 기다렸다가 보았다. 조코비치의 여덟번째 호주 오픈 우승. 인간적인 페더러에 비하면 승리 로봇 같은 조코비치에 대한 헌사는 내가 쓰고 싶지만, 당장 월리스처럼 쓸 자신은 없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재밌다고들.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09&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rfv1d/btqBLICklof/ZrkyAeJNj1Ghj70xCDHeL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rfv1d/btqBLICklof/ZrkyAeJNj1Ghj70xCDHeL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rfv1d/btqBLICklof/ZrkyAeJNj1Ghj70xCDHeL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fv1d%2FbtqBLICklof%2FZrkyAeJNj1Ghj70xCDHeL0%2Fimg.jpg&quot; data-filename=&quot;재밌다고들.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09&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category>재밌다고들하지만나는두번다시하지않을일</category>
      <category>페더러</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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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ue, 4 Feb 2020 20:07:11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제는 한 방울 정액, 오늘은 시신 '메멘토 모리'</title>
      <link>https://myungworry.khan.kr/entry/%EB%A9%94%EB%A9%98%ED%86%A0-%EB%AA%A8%EB%A6%AC</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x9791190277082.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10&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tq431/btqARYmMhhj/ufAFuZwVKDLVskrZANlHO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tq431/btqARYmMhhj/ufAFuZwVKDLVskrZANlHO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tq431/btqARYmMhhj/ufAFuZwVKDLVskrZANlHO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tq431%2FbtqARYmMhhj%2FufAFuZwVKDLVskrZANlHOk%2Fimg.jpg&quot; data-filename=&quot;x9791190277082.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10&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quot;&gt;영국의 고전 학자 피터 존스의 '메멘토 모리'(교유서가)를 읽다.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로마인의 지혜'라는 부제가 붙었다. '지혜'에 방점이 있을 줄 알았는데, 초반부엔 노화와 죽음에 대한 로마의 사회학적, 통계적 사실이 먼저 제시된다. 그도 그럴 것이 고대 로마에서 사람이 태어나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은 현대보다 훨씬 낮았다. 10만명이 동시에 태어난다고 가정하면, 다섯 살에는 5만명만 살아있다. 마흔 살까지 사는 사람은 3만명, 예순을 넘기는 사람은 1만3000명, 일흔살까지 사는 사람은 5500명 정도다. 전체 인구의 50%가 20세 이하로 추정된다. 그러니 고대 로마에서 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생물학적 축복, 사회적 행운이었다. 가부장 사회였던 로마에서는 아버지인 가장이 가족에 대한 모든 권리를 통제했다. 아들이 성인이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심각한 부자 갈등이 생기지 않은 이유는, 아들이 성인이 될 때쯤이면 많은 아버지가 죽었기 때문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quot;&gt;노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는 것을 '행운'이라 표현하긴 했지만, 현대의 의학, 반노화 산업에 비교했을 때 고대 로마인이 신체의 노화에 대응할 방안은 전혀 없었다. 노인의 육체는 종종 혐오스럽고, 비참하고, 가혹하게 묘사됐다. 호라티우스는 &quot;청년은 행동하고, 전성기의 사내는 논의하며, 노인은 기도한다&quot;고 표현했다. 기도밖에 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어느 도시를 습격한 군인들의 행동을 이렇게 묘사했다. &quot;그들은 늙어빠져 죽을 때가 된 남녀들을 끌고나왔다. 전리품으로는 가치가 없을지언정 한바탕 웃음거리로 삼기엔 충분했으니까.&quo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quot;&gt;고대 로마에서는 죽음에 대해 당당한 태도가 칭송받았다. 질병이나 노화로 인한 죽음은 물론, 타의에 의한 죽음도 피하지 않고 맞이하는 태도를 중히 여겼다. 검투사 경기에 투입된 한 야만인은 적을 찌르라고 받은 창을 자기 목에 쑤셔박았다. '웃음거리가 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죽음을 끌어당긴 것이다. 네로의 자결 명령을 받은 세네카는 손목을 그은 뒤 비서들을 모아 구술했고, 그래도 숨이 끊이지 않자 김이 피어오르는 욕조로 가서 죽었다. 카이사르와 맞섰던 소 카토는 패색이 짙어지자 &quot;그 압제자가 저지른 범죄를 봐주는 대가로 그자에게 뭔가를 빚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다&quot;며 자살을 결심했다. 노예가 가져온 칼끝이 날카롭게 벼려있는 것을 본 뒤 &quot;이제야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로군&quot;이라고 말했다. 할복을 했으나 좀처럼 죽지 않았고, 놀란 의사가 달려와 내장을 넣고 상처를 꿰매려 하자 다시 손으로 배를 찢어 죽었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파나는 아들이 자신을 죽이라고 보낸 군인들에게 자기 자궁을 가리키며 &quot;여길 찔러라!&quot;라고 외쳤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quot;&gt;오래 남는 비문은 로마인들의 생사관을 살필 수 있는 증거다. 인상적인 몇 가지를 옮긴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내 고향은 티부르, 내 이름은 플라비우스 아그리콜라요. 그렇소. 지금 나는 살아 있을 때 만찬장에 누웠던 자세 그대로 바로 여기에 누웠소. 나는 운명의 여신이 허락한 세월 동안 늘 자신을 잘 돌보았고 포도주를 실컷 마셨소. (...) 이 글을 읽는 벗들이여, 내 조언은 다음과 같소. 포도주를 준비하시오. 머리에 화환을 두르고 술을 드시오. 아름다운 여자들과의 잠자리를 거부하지 마시오. 죽으면 흙과 재가 다른 모든 것을 삼키리니.&amp;nbsp;&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자연이 준 것을 자연이 되찾아갔다.&amp;nbsp;&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이 집은 영원하나니, 나는 여기에 누웠고 언제까지나 여기에 있으리라.&amp;nbsp;&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나를 잃었다고 어째서 한탄합니까? 운명의 질서는 어지럽지 않습니다. 인간의 일은 사과열매와 같으니 무르익어 저절로 떨어지거나 누군가 너무 이르게 따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amp;nbsp;&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그날 그 시간을 위해 사시오. 그것말고는 아무것도 없소.&amp;nbsp;&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목욕, 음주, 섹스는 우리 몸을 타락시킨다. 하지만 목욕, 음주, 섹스는 삶을 아주 좋은 것으로 만든다.&amp;nbsp;&lt;/blockquote&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quot;&gt;로마인들은 자연에 맞서지 않았다. 늙으면 늙음을, 죽을 때가 되면 죽음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도 있었으나, 그건 불명예로 받아들여졌다. 다음 같은 인용이 로마인들의 생사관을 잘 보여준다.&amp;nbsp;&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기왕 태어났으면 떠나온 곳으로 되도록 빨리 돌아가는 것이 차선이라네.(소포클레스)&lt;/blockquote&gt;
&lt;blockquote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gt;삶이란 얼마나 하찮은가. 어제는 한 방울의 정액이었고 오늘은 시신 아니면 재다. 그러니 너는 이 덧없는 순간들을 자연이 너에게 의도한 대로 쓴 다음 흔쾌히 쉬러 가라. 때가 된 올리브 열매는 자신을 잉태한 대지를 축복하고 자신에게 생명을 준 나무에게 감사하며 땅으로 떨어진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lt;/blockquote&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category>로마</category>
      <category>메멘토모리</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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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5 Jan 2020 15:11:01 +0900</pubDate>
    </item>
    <item>
      <title>가족극의 진화 '프라이빗 라이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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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가족은 픽션의 주요한 테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도 따져보면 가족극이다. 햄릿도 마찬가지다. 평생을 비슷한 배우가 비슷한 가족 역할을 연기한 영화를 찍어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도 있다. 오즈 야스지로다. (요즘 바탕 화면에 오즈 야스지로 묘비 사진을 깔아두었다. 원래 '데어 윌 비 블러드'의 유전에서 불 뿜어나오는 장면이었는데, 그게 요즘 주변 상황 같아서...)&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넷플릭스에서 '프라이빗 라이프'를 봤다. '코미디'라고 돼있긴 한데, 거의 웃지 못했다. 오히려 영화 속의 상황과 감정이 너무 인텐스해서(영화 속에서도 '인텐스'라는 표현이 몇 번 나온다), 어젯밤 반을 보고 오늘 오전 나머지를 봤다. 요즘 내 감정적 체력은 이런 인텐스한 영화를 두 시간 보아낼 수 없는가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40대에 접어든 뉴욕의 극작가 리처드, 작가 레이첼 부부가 주인공이다.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지만 매번 성공하지 못한다. 입양을 하려다가 사기를 당하고, 의학적인 시술은 여자 혹은 남자 쪽의 문제로 매번 실패한다. 부부는 건강한 난자 기증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의붓조카 세이디를 떠올린다. 청년 예술가로서의 야심을 가진 세이디에게 뉴욕의 예술가 부부 리처드와 레이첼은 롤모델이다. 세이디는 다소 답답한 윤리관과 세속적 세계관에 붙잡힌 친모보다, 뉴욕의 삼촌, 숙모를 더 가깝게 느낀다. 리처드와 레이첼은 난자 기증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데, 세이디는 의외로 흔쾌히 승락한다. 이들 부부가 아이를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자신의 가능성을 인정해준 그들을 위해 무엇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물론 친모는 노발대발하지만, 이미 성인으로서 결정을 내린 딸을 말리진 못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프라이빗 라이프'에서 표현되는 가족 사이의 감정은 사실 매우 전통적이다. 중년의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살지만, 더 이상 로맨틱한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어떻게든 아이를 가져 전통적인 핵가족을 만들려는 사람들에 가깝다. 엄마를 미워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썩 좋아하지도 않는 세이디와 딸에게 조금 더 많은 성취를 요구하는 엄마의 관계도 많은 모녀 갈등 드라마에서 목격된다. 리처드와 레이첼 부부가 경험하는 의학 과정(심하게 말하면 출산 산업)의 문제가 끼어들면서 전통적 가족극에는 트위스트가 생긴다. 환자 대기실에서 완전히 침묵한 불임 부부들이 가득 앉아있는 모습은 우울하지만, 그렇다고 불임의 디스토피아 세상을 그린 SF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인물들은 근대 이후의 많은 가족들이 겪어온 보편적 감정을 드러내고 그 감정들 중 무엇도 개연성 없거나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이 감정들이 현대의 발전한 의학 기술과 가족관의 미묘한 변화를 거치면서 흥미로운 변이를 만들어낸다. 제목의 '사적인 삶'이 병원이라는 공적 공간에서의 임신과 출산 과정에 노출되면서, 부부는 때론 희망을 느끼고 때론 모욕을 겪는다. 혈연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제도로는 이어진 의붓조카의 난자를 기증받는다는 설정이 다소 어색하긴 하지만, 가족극의 범위를 확장하려는 창작자의 사고 실험으로 이해한다. 세이디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찾아주려는 이해심과 능력은 친모가 아니라 의붓 친척에게 있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연출과 대본을 맡은 이는 50대 후반의 여성 타마라 젠킨스. 몇 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간혹 연기도 했다고 한다. '프라이빗 라이프'의 전작 '세비지스'는 2007년작이다. '프라이빗 라이프'가 '원 히트 원더'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이 영화의 만듦새를 보면 오히려 지난 10여년간 젠킨스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했다는 추정이 더 설득력있을 것 같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그나저나 한국영화에서도 좀 더 괜찮은 가족극을 만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엄마 불쌍해, 아빠도 힘들어, 그도 아니면 우리집은 콩가루야, 라고 말하는 그런 영화들 말고.&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프라이빗라이프.jpg&quot; data-origin-width=&quot;1400&quot; data-origin-height=&quot;93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iyzuY/btqAThlefHQ/s9qovKbH74RHucutejFVC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iyzuY/btqAThlefHQ/s9qovKbH74RHucutejFVC0/img.jpg&quot; data-alt=&quot;리처드와 레이첼 부부.&amp;amp;amp;nbsp;&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iyzuY/btqAThlefHQ/s9qovKbH74RHucutejFVC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iyzuY%2FbtqAThlefHQ%2Fs9qovKbH74RHucutejFVC0%2Fimg.jpg&quot; data-filename=&quot;프라이빗라이프.jpg&quot; data-origin-width=&quot;1400&quot; data-origin-height=&quot;932&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리처드와 레이첼 부부.&amp;nbsp;&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이미지</category>
      <category>가족극</category>
      <category>넷플릭스</category>
      <category>프라이빗라이프</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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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3 Jan 2020 14:06:21 +0900</pubDate>
    </item>
    <item>
      <title>SF와 역사소설, '둠즈데이 북'</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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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열린책들)을 읽다. '개는 말할 것도 없고'로 이어지는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달한 2054년이 배경이다. 하지만 책이 1992년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2020년의 독자에게는 작은 당혹감이 생긴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만 빼놓으면 많은 부분의 과학기술이 2020년에 뒤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소설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유선 전화로 한다! 화상을 볼 수 있는 데, 별로 유용한 것 같지는 않다. 비상사태가 벌어져 서로가 서로에게 급박하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전화를 찾아 여기저기 뛰어다닌다. 그것도 회선이 적은지 잘 터지지 않는다. 초등학생도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시대에 살다보니 좀 이상한 설정으로 여겨진다. 이것이 뉴트로인가.&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14세기 영국 시골마을로 가 중세 생활상을 관찰하려는 역사학도 키브린과 21세기에 남은 그의 지도교수 던워디가 중심이다. 던워디의 온갖 걱정을 뒤로 하고 키브린은 과거로 향하지만, 도착하자마자 정체모를 병을 앓고 쓰러진다. 같은 시각 영국에서도 질병이 퍼져 학교 주변 도시가 격리되는 비상사태가 벌어진다. 키브린은 중세 사람들의 간호 끝에 정신을 차리지만, 이후엔 중세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병에 걸린다. 두 시대에 퍼진 병의 원인을 밝히려는 추리와 이에 대응하는 키브린, 던워디의 노력이 800쪽 넘는 이야기를 추동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등장인물의 캐릭터와 갈등구도, SF적 설정 등을 소개하는 초반부를 지나 키브린과 던워디가 상황을 파악하고 적응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중반부로 간다. 솔직히 중반부에선 읽는 속도가 잘 붙지 않는다. 코니 윌리스 소설 속 사람들이 그렇다고는 하는데, 좀 수다스럽고 쓸데 없는 일들을 많이 한다. 장르 영화에는 관객 모두가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아는 그런 일을 해서 복장을 터지게 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곤 하는데, 이 소설에서도 그렇다. 주인공 중 한 명인 키브린이 대표적이다. 굳은 고집과 의지로 중세에 가겠다고 한 건 키브린인데, 어찌된 일인지 막상 중세에 도착해서는 소풍 갔다가 길을 잃은 유치원생처럼 응석을 부리고 짜증을 낸다. 병을 앓아 몸과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한 행동이라고 소명이 되긴 하지만, 주인공이 줄곧 이렇게 행동하니 좀 답답하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중세에 퍼진 질병이 페스트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사람들이 하나 둘씩 처참하게 죽어나가는 종반부에서 속도가 붙었다.&amp;nbsp; 키브린은 페스트가 퍼지기 전으로 가기로 돼 있었지만, 조작 실수로 인해 페스트가 한창 번지던 시기에 도착한 것이다. 키브린은 항체가 형성돼 페스트에 걸리지 않지만, 중세 사람들은 속수무책이다. 작가가 중반부까지 공들여 빚어냈던 등장인물들이 속수무책 죽어나간다. 혐오스러운 인간도 죽지만, 무고한 소녀도 죽는다. 고집스러운 시어머니가 죽고, 하인에게 연정을 품었던 며느리도 죽는다. 무엇보다 라틴어 기도문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마을의 유력자들로부터 냉대받지만, 사실 누구보다 신실하고 종교적인 로슈 신부까지 병마에 쓰러진다. 마을 하나가 통째로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진다. 페스트가 중세 사람들을 많이 죽였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지만, 머릿속에 잘 구축됐던 마을이 병에 완패하는 모습은 생생하고 박진감있다. 페스트를 다룬 논픽션에서는 느끼기 힘든 생생함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그런데 이렇게 쓰고 보니, 굳이 시간여행SF가 아니라 중세 역사소설이어도 상관 없지 않은가.&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blob&quot; data-origin-width=&quot;1500&quot; data-origin-height=&quot;2000&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669&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dTpk2/btqAQl9Ridr/xvw3fkYXzWWinuNRGkMPE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dTpk2/btqAQl9Ridr/xvw3fkYXzWWinuNRGkMPEk/img.png&quot; data-alt=&quot;인터넷 서점에 가니 열린책들 판은 없고, 아작에서 새로 나온 판본만 있음. 그래서 내가 읽은 책을 직접 찍음.&amp;amp;amp;nbsp;&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dTpk2/btqAQl9Ridr/xvw3fkYXzWWinuNRGkMPE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dTpk2%2FbtqAQl9Ridr%2Fxvw3fkYXzWWinuNRGkMPEk%2Fimg.png&quot; data-filename=&quot;blob&quot; data-origin-width=&quot;1500&quot; data-origin-height=&quot;2000&quot; width=&quot;502&quot; height=&quot;669&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인터넷 서점에 가니 열린책들 판은 없고, 아작에서 새로 나온 판본만 있음. 그래서 내가 읽은 책을 직접 찍음.&amp;nbsp;&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category>둠즈데이북</category>
      <category>시간여행</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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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 Jan 2020 14:23:55 +0900</pubDate>
    </item>
    <item>
      <title>IT에 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피드</title>
      <link>https://myungworry.khan.kr/entry/%ED%94%BC%EB%93%9C</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스포일러 있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닉 클라크 윈도의 '피드'(구픽)를 읽다. 대멸망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소설이다. 핵전쟁, 기후위기, 바이러스의 창궐이 아닌, '피드'라 불리는 IT 기기의 고장으로 인한 종말이 그려진다. 신체에 피드를 이식하면 별도의 디바이스 없이도 인터넷에 접속하고 타인과 소통할 수 있다. 책을 읽을 필요도 없다. 피드를 통해 즉시 필요한 지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날 피드가 갑자기 다운되고, 이후 잠이 든 사람들이 깨어나면서 다른 인격체가 되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잠이 들면 누군가가 반드시 그를 지켜보면서 다른 인격이 되는 순간을 보는 즉시 죽여줘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문명은 파괴되고, 소수의 사람들만이 남아 중세로 돌아간 듯한 삶을 이어간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피드'의 포스트 아포칼립스 묘사에서 새로운 건 없다. 그간의 지식은 모두 피드에 의존했기에, 피드가 다운된 이후 사람들은 지식을 얻을 길을 잃어버린다. 뜻이 맞는 몇몇 사람들이 소규모 공동체를 이뤄 살아가거나, 유랑인이 돼 문명의 잔해를 뒤지며 살아가거나, 날강도가 돼 약탈을 하며 삶을 잇는다. 여성이나 아이라고 안전이 보장되진 않는다. 톰과 케이트 부부는 피드 붕괴 이후 태어난 여섯살 딸 베아를 잃어버린 뒤, 아이를 찾아 세계를 헤맨다. 문명 붕괴 이후 세상을 떠도는 외톨이들의 모습은 코맥 맥카시의 '더 로드'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라스트 오브 오스'에서도 잘 재현됐다. '피드'의 묘사가 그것들보다 탁월하거나 독창적이라고 보긴 어렵겠지만, 처절한 풍경 자체에는 설득력이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소설의 반전은 잠이 들었다가 깨어날 때 바뀌는 인격체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나온다. 잠이 든 사이 낯선 이의 몸에 스며든 인격체는 외계인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아닌, 미래 인류의 정보화된 인격이었다. 브레이크 없는 문명 발전으로 지구의 환경은 파괴되고, 살아남은 인류는 지하로 파고들어가 세대를 이어간다. 이들은 피드로 전해진 조상들의 정신(인격, 영혼 등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에 침투하는 방식으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간다. 조상들을 움직여 지구 파괴를 막기 위해서다. 그렇게 해서 환경 위기는 벗어났다. 대신 인류 문명이 파괴된다. 작가는 과거 중요한 사건에 영향을 줌으로써 또 하나 갈래의 역사가 생기는 개념을 채택했다. 그런 의미에서 '피드'는 시간여행+대체역사물이다. 시간여행의 방법이 거대한 허브에 다운로드된 정신에 대한 해킹이라는 점이 새로울 뿐이다. 물리학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는데, 작가는 이 부분에 대해 다소 얼버무린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미국에서 2018년 나온 책이다. 환경 위기에 무심한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를 연상시킨다. 주인공 톰의 아버지가 피드 개발자라는 설정, 톰의 오이디푸스 여정은 쓸모없는 장치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피드 개발자가 톰의 아버지이든 아니든 이야기 전개는 크게 바뀌지 않기 떄문이다. 아마존에서 10부작 시리즈로 만들어 방영했는데, &quot;'블랙 미러'에 대한 아마존의 응답'이란 제목의 기사를 봤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피드.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4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XUKWh/btqACGNuS5R/5f9IHwK4p2garDMIVoTK9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XUKWh/btqACGNuS5R/5f9IHwK4p2garDMIVoTK9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XUKWh/btqACGNuS5R/5f9IHwK4p2garDMIVoTK9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XUKWh%2FbtqACGNuS5R%2F5f9IHwK4p2garDMIVoTK90%2Fimg.jpg&quot; data-filename=&quot;피드.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47&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gt;&amp;nbsp;&lt;/p&gt;</description>
      <category>포스트아포칼립스</category>
      <category>피드</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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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26 Dec 2019 19:43:2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시네마란 무엇인가, '아이리시맨'</title>
      <link>https://myungworry.khan.kr/entry/%EC%95%84%EC%9D%B4%EB%A6%AC%EC%8B%9C%EB%A7%A8</link>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스포일러 있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마틴 스콜세지는 마블 영화를 두고 &quot;시네마가 아니다&quot;라고 했다. 스콜세지의 '시네마'가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신작 '아이리시맨'이 시네마인줄은 알 것 같다. 스콜세지는 이 영화를 제발 스마트폰에서는 보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난 넷플릭스에서 공개하기 이틀 전 시네큐브에서 '아이리시맨'을 보고, 넷플릭스에서 공개 후 다시 봤다. 상영시간이 3시간30분에 달하니, 며칠 사이 7시간을 이 영화에 투입한 셈이다. 며칠 후 또다른 3시간30분을 써도 좋다고 생각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트럭 운전사 프랭크(로버트 드니로)가 갱스터 러셀(조 페시)를 만나 '궂은 일'을 맡으며 성장하는 대목, 프랭크가 전설적인 트럭노조 지도자 지미 호파(알 파치노)를 만나 친분을 쌓는 과정, 수감 뒤 돌아온 호파가 노조 위원장 자리를 되찾으려 하다가 프랭크에 의해 살해당하는 대목이다. 사실 두번째 대목은 조금 느슨하다. 갱스터의 활약보다는 호파와 그의 라이벌들의 투쟁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갱스터와 노조의 세계에 한 발씩을 걸친 프랭크는 본의 아닌 중재자, 메신저 역할을 맡는다. 프랭크는 망설임 없이 러셀의 '부탁'을 처리하는 과감한 인물이지만, 질주하는 호파와 그를 우려하는 갱스터들을 중재하려는 협상가이기도 하다.&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위의 세 대목이 세 가지 시간대로 엇갈려 구성된다. 프랭크와 러셀이 누군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부인을 동반해 미 대륙을 가로지르며 자동차 여행하는 시간대, 프랭크가 러셀, 지미 호파와 친분을 맺어가며 미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시간대, 주요한 모든 사건이 끝나고 한때 위세 등등했던 노조 지도자와 갱스터는 죽고 프랭크만 요양원에 남아 옛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간대다.&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알 파치노, 조 페시, 하비 케이틀이 나오긴 하지만, 역시 스콜세지의 페르소나는 프랭크 역을 맡은 로버트 드니로다. 영화는 노인 프랭크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가장 궁금한 건 프랭크가 대체 누굴 향해 말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카메라가 복도를 이동하며 요양원의 모습을 비춘다. 노년의 프랭크는 휴게실에 앉아있다. 하지만 그의 앞에는 아무도 없다. 프랭크는 카메라를 직접 바라보며 말한다. 프랭크의 눈 앞에 죽음이 다가온 것 같이 보이지만, 그는 자신의 죄악, 동료의 죄악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젊은 신부에게 무언가 말을 하다가 멈추고, 지미 호파 실종사건의 진실을 밝히러온 수사관들에게도 입을 다문다. 프랭크는 수사관들에게 자신의 변호사를 찾아가보라고 한다. 수사관들은 변호사는 물론 프랭크 주변 인물 모두가 죽었다고 답한다. 수사관들은 지미 호파의 유족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설득한다. 프랭크마저 죽으면 유족들은 지미 호파의 최후를 알 길이 없다. 그래도 프랭크는 입을 다문다. 프랭크는 영화 속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던 진실을 카메라를 향해 털어 놓는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르지만, 관객만이 안다. 이 관객이야말로 스콜세지가 적통을 이은 20세기 갱스터 장르 영화, 시네마 공동체의 구성원이라 할 수 있을까.&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프랭크는 갱스터로서의 직업 윤리, 지미 호파와의 인간적 인연, 가족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울거나 술을 마시거나 소리 지르진 않지만, 드니로는 어떻게든 프랭크의 내면을 표현한다. 조직의 논리와 인간적 연민 사이에 낀 프랭크는 입을 다문 채 짐을 짊어진다. 그 사이 가족은 프랭크를 외면한다. 딸 페기(안나 파킨)는 프랭크의 모든 악덕을 눈치챈 듯하다. 지미 호파의 실종 이후, 페기는 프랭크와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 프랭크는 감내한다. 신부에게도, 수사관에게도, 가족에게도 하지 못한 고백을 프랭크는 관객에게 한다. 그것이 스콜세지의 '시네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사인, 사망 시각 등을 낱낱이 알려준다. 처음 등장했을 때 '몇년 몇월 며칠, 몇 세 나이로 부엌에서 머리에 총을 세 발 맞고 사망' 하는 식의 자막을 보여준다. 킬러에 의해 죽든, 감옥에서 병사하든, 암으로 죽든, 모든 사람은 죽는다. 주요 인물 중 오직 프랭크만이 요양원에 가만히 앉아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신부에게 하는 마지막 부탁은 &quot;문을 조금 열어둔 채 나가달라&quot;는 것이다. 스콜세지는 올해 77세다. 10년, 20년전만 해도 '아이리시맨'은 전혀 다른 영화가 됐을 것 같다. 남자들의 일과 쓸쓸한 끝을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도 많지 않을 거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아이리시맨.jpg&quot; data-origin-width=&quot;1400&quot; data-origin-height=&quot;93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Klmui/btqAbm3KgfM/SzQTCFehkhf1UNZuGObTa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Klmui/btqAbm3KgfM/SzQTCFehkhf1UNZuGObTa1/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Klmui/btqAbm3KgfM/SzQTCFehkhf1UNZuGObTa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Klmui%2FbtqAbm3KgfM%2FSzQTCFehkhf1UNZuGObTa1%2Fimg.jpg&quot; data-filename=&quot;아이리시맨.jpg&quot; data-origin-width=&quot;1400&quot; data-origin-height=&quot;936&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이미지</category>
      <category>로버트드니로</category>
      <category>마틴스콜세지</category>
      <category>아이리시맨</category>
      <category>지미호파</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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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Thu, 5 Dec 2019 21:55:46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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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겨울왕국2'의 안티클라이막스</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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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겨울왕국2'의 스포일러가 있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설마 이렇게 끝나는 건가' 하는 순간 정말 끝났다. '겨울왕국2'는 한국에서도 1000만 관객을 노리는 글로벌 콘텐츠지만, 대중영화의 익숙한 서사를 따르지 않는다. '안티 클라이막스'라고 해야할까. 클라이막스에 이르지 않고 영화가 끝나는 것 같다. 지나고 보니 그 대목이 클라이막스로 짐작되는데, 다시 생각해도 클라이막스가 해소되는 순간의 쾌락을 의도한 것 같지 않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겨울왕국2'에는 적(악당)이 없다. 강력하든 우스꽝스럽든, 추상적이고 절대적인 악당이든 나름의 현실적 이유가 있는 악당이든, 가족 영화에는 악당이 필요하다. 하지만 '겨울왕국2'에서는 엘사와 안나 자매가 누구와 맞서 싸우는지 모호하다. 엘사가 목숨을 걸고 찾아간 곳에도 악당은 없다. 엘사가 최종 목적지에서 마주한 것은 정체가 모호하고 초자연적인 존재다. 이 존재는 그 자체로 선도 악도 아니다. 그저 세상이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를 원할 뿐이다. 원래 상태를 훼손해 현재 상태로 바꾼 것은 인간이기에, 문명을 일군 인간의 입장에서 이 존재는 악일 수 있다. 반면 자연의 입장에서 이 존재는 선일 수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물론 굳이 지목하려면 '겨울왕국2'에도 악당이 있다. 과거 아렌델 왕국을 다스렸던 엘사와 안나의 할아버지 루나드 왕이다. 할아버지 루나드 왕은 북쪽의 노덜드라 숲에 사는 원주민과 화친을 맺고 있었는데, 이는 사실 그들을 멸망시키고 아렌델을 풍요롭게 하려는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계략이었다. 루나드는 노덜드라 숲에 댐을 지어주었다. 이 댐이 문명의 덫이었다. 노덜드라 원주민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앞선 기술력으로 만든 댐이지만, 이 댐은 원주민을 길들이고 아렌델에만 풍요를 가져다주는 도구였다. 루나드 왕은 '겨울왕국2'에서 유일하게 악의를 보이는 인물임에도 전통적인 악당으로 보기 쉽지 않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으며, 매우 적은 분량의 플래시백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겨울왕국2'에서 악당을 꼽자면,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정신과 유산 그 자체라고 해야한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환경주의의 측면에서 '겨울왕국2'의 메시지는 '아바타'보다는 급진적이다. '아바타'는 나비족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환경을 말하지만, '겨울왕국2'는 노덜드라 족의 거주지를 넘어서는, 자연 그 자체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넌지시 말한다. 물론 결말은 절충적이다. 엘사가 댐 파괴 이후 쏟아지는 물길을 막아내 아렌델의 수몰을 막아낸다. 아렌델이 파괴되고 아렌델 사람들이 새 터전을 찾아 떠났다면 한층 흥미로운 텍스트가 됐을 것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전편과 비교해 가장 큰 변화를 겪는 인물은 역시 엘사다. 안나, 크리스토프, 올라프의 성격이나 외모는 전편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한데, 엘사는 여러모로 변화한다. 엘사의 마법은 전편에선 얼음 조각을 하거나 자칫 주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정도였다면, 이번에는 집채만한 파도를 뛰어넘거나 한 도시를 구할 정도로 강해진다. 엘사는 더 이상 '이웃집 소녀'나 '우리나라 공주님'이 아니라, 가까이 다가서면 두려움을 느낄법한 초자연적 존재가 된다. 엘사의 외모도 여왕이라기보다는 엘프에 가깝게 변한다. 엘사를 극단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것도 인간계를 벗어난 엘사의 능력치와 연관될 것이다. 이렇게 된 엘사가 아렌델 왕국에 머물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인간이 아닌 정령으로서 엘사는 세속의 소소한 즐거움들을 버린 채 자연의 수호자를 자처한다. 이 일이 외롭고 힘들다는 것은 분명하다. '겨울왕국2'는 해피엔딩인가.&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크리스토프의 '로스트 인 더 우즈' 대목은 1980~90년대 보이그룹(엔싱크, 웨스트라이프 등)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했는데, 내가 관람한 상영관에서는 거의 아무도 웃지 않아 나도 웃지 못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겨울1.jpg&quot; data-origin-width=&quot;1920&quot; data-origin-height=&quot;80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dPVK/btqAat1rP6U/HiZmZBVoLRma0Im9oCWCr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dPVK/btqAat1rP6U/HiZmZBVoLRma0Im9oCWCr1/img.jpg&quot; data-alt=&quot;엘사 외모의 변화. 인간일 때 모습.&amp;amp;amp;nbsp;&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dPVK/btqAat1rP6U/HiZmZBVoLRma0Im9oCWCr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dPVK%2FbtqAat1rP6U%2FHiZmZBVoLRma0Im9oCWCr1%2Fimg.jpg&quot; data-filename=&quot;겨울1.jpg&quot; data-origin-width=&quot;1920&quot; data-origin-height=&quot;804&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엘사 외모의 변화. 인간일 때 모습.&amp;nbsp;&lt;/figcaption&gt;
&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겨울왕국2.jpg&quot; data-origin-width=&quot;3000&quot; data-origin-height=&quot;125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lKN2y/btqAfT61Rjv/JvcGXNBTPFmfYSCRJlWj3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lKN2y/btqAfT61Rjv/JvcGXNBTPFmfYSCRJlWj31/img.jpg&quot; data-alt=&quot;홀로 엄청난 고난의 여행을 떠난 엘사&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lKN2y/btqAfT61Rjv/JvcGXNBTPFmfYSCRJlWj3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lKN2y%2FbtqAfT61Rjv%2FJvcGXNBTPFmfYSCRJlWj31%2Fimg.jpg&quot; data-filename=&quot;겨울왕국2.jpg&quot; data-origin-width=&quot;3000&quot; data-origin-height=&quot;1256&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홀로 엄청난 고난의 여행을 떠난 엘사&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이미지</category>
      <category>겨울왕국2</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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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Mon, 2 Dec 2019 21:52:04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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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묘비 대신 교향곡,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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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미국 작가 M T 앤더슨의 '죽은 자들의 도시를 위한 교향곡'(돌베개)을 읽다. 흥미진진한 서술, 뚜렷한 관점, 이것들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자료의 측면에서 모범적인 논픽션이다. 위대한 작곡가의 삶에 대한 책이자, 2차대전 전쟁사이며, 소비에트 정치 비판서다. 546쪽에 이르는데, 책을 무겁지 않게 만든데다가 번역이 매끄러워 수월하게 읽힌다.&amp;nbsp;&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책 초반부는 간략하게 요약된 쇼스타코비치의 성장기, 1920~30년대 소비에트의 분위기와 예술가들의 삶을 그린다. 쇼스타코비치가 10살이던 1917년 러시아엔 레닌이 주도하는 혁명이 일어났고, 여느 러시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쇼스타코비치 일가 역시 혁명의 흐름에 발을 담근다. 하지만 쇼스타코비치가 작곡가로서 입지를 넓혀가던 시절 등장한 지도자는 '강철 인간'이란 뜻의 스탈린이었다. 1920~30년대 프랑스가 그러했든, 소련으로 다시 태어난 러시아에서도 구습을 하루 아침에 벗어던진 새로운 예술이 일제히 나타났다. 지금 들어도 전위적인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비롯해, 마야코프스키의 미래파 시, 말레비치의 기하학적 회화가 등장했다. 불과 5년 전에 접했던 그 어떤 음악, 시, 회화와도 다른 작품들이 시민들의 감각을 폭격했다. 하지만 레닌은 혁명에는 능숙하지만, 경제계획에는 서툰 사람이었다. 이전의 모든 예술과 전혀 다른 예술을 받아들일만큼 열려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마야코프스키는 권총을 들고 자신의 심장을 쐈다. 그는 &quot;제 손으로 건설은 거든 세상에서 더는 참고 살 수 없었다.&quot; 소비에트의 전위적인 예술가들은 &quot;자신이 세운 미래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경악&quot;했다. 레닌의 뒤를 이은 스탈린은 한층 강력한 독재자였다. 이미 소비에트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고, 서방 세계에서도 널리 알려진, 러시아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다고 여겨진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의 성공으로 쇼스타코비치의 미래는 창창해 보였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 작품을 관람하다가 중간에 나가면서 유명한 한 마디를 남긴다. &quot;음악이 아니라 혼란이다.&quot; 어제까지 쇼스타코비치를 칭송하던 비평가와 언론과 친구들은 하루 아침에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이 '불협화음'이고 '노래 대신 비명'이며, 인민이 이해할 수 없는 음악이라고 비판했다. 전위적인 곡은 어렵다고, 달콤한 곡은 얄팍하다고 비판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친구, 지인들이 하나 둘씩 알 수 없는 이유로 비밀경찰에게 끌려갔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언제 끌려갈지 몰라 매일 밤 여행용 가방을 챙겨두고 잠이 들었다. 쇼스타코비치 역시 비밀경찰에게 소환돼 혹독한 심문을 받을 위기에 놓였으나, 자신을 조사하기로 한 조사관 역시 체포되는 '행운' 덕에 살아남았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책의 중후반부는 나치 독일의 소비에트 침공과 그에 이은 레닌그라드 포위를 그린다.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나 살았고 언제나 이 도시를 사랑했던 쇼스타코비치는 피난갈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도시를 지킨다.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에 의해 완전히 둘러 쌓여 872일동안 봉쇄된다. 포위 초기에 식량 창고가 불타고, 도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기근에 빠졌다. 책에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별 이상한 방법이 다 나오는데, 짐작할 수 있게도 최종적으로는 인육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시신을 매장하지조차 않는 일이 벌어졌기에, 허벅지와 엉덩이살은 누군가 베어가곤 했다. 그나마 시신의 살이라면 다행이고, 적발돼도 가벼운 벌을 받았다고 한다. 쇼스타코비치는 이런 고향의 처지를 위해 7번 교향곡을 만든다. 일부 테마가 전쟁 이전에 작곡됐다는 말도 있지만, 아무튼 쇼스타코비치 7번 교향곡은 고향의 수난과 곧 다가올 승리에 대한 염원으로 만들어졌다. 이 교향곡은 2차대전 당시 소비에트 인민의 사기를 높였고(&quot;보라, 이렇게 혹독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이토록 복잡하고 위대한 교향곡을 만든다!&quot;), 악보가 미국, 영국 등으로 수송돼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기도 한다(미국 초연은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NBC 오케스트라가 연주). 봉쇄된 레닌그라드에서도 결국 곡이 연주됐다. 하지만 레닌그라드에 남은 소수의 연주자는 이 길고 복잡한 곡을 소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연주하다가 쓰러져 죽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의지를 발휘해 연주했고, 소비에트 군은 불 켜진 콘서트홀이 독일군의 표적이 되는 걸 막기 위해 공연 시작전 독일군 쪽으로 집중 포격을 했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7번 교향곡은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쇼스타코비치는 다시 조국의 영웅이 됐지만, 국가는 그를 편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후에도 쇼스타코비치는 당국과 갈등하고 타협하면서 음악가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쇼스타코비치는 죽기 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quot;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다.&quot;&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죽은자들.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48&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QFs0y/btqz7AtrEhg/yPE5XWa2PHl2rGbmwk4Co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QFs0y/btqz7AtrEhg/yPE5XWa2PHl2rGbmwk4Co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QFs0y/btqz7AtrEhg/yPE5XWa2PHl2rGbmwk4Co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QFs0y%2Fbtqz7AtrEhg%2FyPE5XWa2PHl2rGbmwk4Co0%2Fimg.jpg&quot; data-filename=&quot;죽은자들.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648&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category>레닌그라드전투</category>
      <category>쇼스타코비치</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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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1 Dec 2019 16:08:05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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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하드SF 이후의 SF, '에스에프 에스프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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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lt;p&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모든 SF팬들의 필독서'라고 하면 출판사도 민망해서 사용하지 않을 책 띠지 문구 같지만, 셰릴 빈트의 '에스에프 에스프리'(아르테)엔 그런 수식을 붙이고 싶다. SF 비평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통시적인 관점과 공시적인 관점에서 이 책은 모두 충실하다. Science Fiction의 측면과 Speculative Fiction의 측면을 두루 살피면서, 좋은 작품에 대한 가이드 역할도 한다. 'Science Fiction: A Guide for the Perplexed'라는 원제의 느낌보다는 조금 더 아카데믹한 서술이라 읽기가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다코 수빈의 '인지적 소외' 개념이 흥미롭다. 수빈은 &quot;작가의 현실 속에서, 그리고/또는 그가 몸담은 문화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는 하나의 '실제 가능성'&quot;을 강조하는 하드SF의 태도를 벗어나, &quot;전제 그리고/또는 결과가 내부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개념적이거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quot;을 강조한다. &quot;인지와 소외는 우리가 작품 속 이야기의 세계를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이상하게 바라보게 하고, 텍스트의 세계와 우리 자신의 세계 사이의 차이에 대해 창의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촉구하면서 SF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한다&quot;는 것이다. 마치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처럼, SF를 통해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수빈의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는 하드SF보다는 지금, 여기가 아닌 대안적인 사회, 역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변 소설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빈트는 '아바타'보다는 '디스트릭트9'을 호평한다. 전자가 &quot;단순히 이쪽 세상 또는 저쪽 세상에 있거나, 꿈을 꾸거나 깨어 있을 뿐&quot;이라면, 후자는 &quot;영화 속 허구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 사이의 변증법&quot;을 노린다. '아바타'의 관객은 판도라와 연결되지 않은 현실로 돌아가지만, '디스트릭트9'의 관객은 일상에서도 '인지적 치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amp;nbsp;&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아울리 빈트는 SF, 판타지 등이 공유하는 허구의 배경, 비유, 이미지, 관습 등을 받아들이는 메가텍스트성,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강조되는 실천공동체로서의 특징, 페미니즘, 퀴어 등 신념을 강조하는 SF들에 대해 논한다. 아지모프, 클라크, 하인라인의 SF 팬들에게는 생경한 책이겠지만, 그 이후의 뉴웨이브와 페미니스트와 21세기의 SF를 이해하는데는 훌륭한 책이다.&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amp;nbsp;&lt;/p&gt;
&lt;p style=&quot;text-align: justify;&quot;&gt;**'에스에프 에스프리'란 번역 제목을 어떻게 붙였는지 궁금하다. 왠지 책 출간을 앞두고 연 브레인스토밍 회의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생각해둔 '에스에프 에스프리'란 제목을 언제 써먹을까 하고 간직해두었다가 이번에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amp;nbsp;&lt;/p&gt;
&lt;p&gt;&amp;nbsp;&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에스에프에스프리.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5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SVW4D/btqzYrbque6/LSIhI7oCErTIQNgYqjA8B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SVW4D/btqzYrbque6/LSIhI7oCErTIQNgYqjA8B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SVW4D/btqzYrbque6/LSIhI7oCErTIQNgYqjA8B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SVW4D%2FbtqzYrbque6%2FLSIhI7oCErTIQNgYqjA8B0%2Fimg.jpg&quot; data-filename=&quot;에스에프에스프리.jpg&quot; data-origin-width=&quot;458&quot; data-origin-height=&quot;752&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텍스트</category>
      <author>백승찬</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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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Fri, 22 Nov 2019 18:00:02 +09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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