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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파시스트로 살아가기, <순응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46년전 영화가 이제 개봉한다. 





30세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가 <순응자>를 선보인 건 1970년이었다. 이 영화가 거의 반 세기가 흐른 2016년에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코세이지, 코엔 형제, 박찬욱이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 46년전 작품에서 동시대 관객은 뭘 읽어낼 수 있을까. 


로마의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마르첼로는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한다. ‘주방과 침실이 어울리는’ 중산층 가정의 여성과 결혼하고,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던 무솔리니 정권의 비밀경찰에 자원한다. 정부는 첫 임무로 파리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마르첼로의 대학 은사 콰드리 교수를 암살하라고 지시한다. 신혼여행을 겸해 파리로 떠난 마르첼로는 콰드리에게 접근했다가 그의 아내 안나의 매력에 빠진다. 


마르첼로는 남들이 보기엔 특이한 사람이다. 그를 면접본 비밀경찰 간부는 마르첼로의 동기를 의아해한다. 대부분 돈 혹은 두려움 때문에 경찰에 지원하는데, 마르첼로는 그런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파시즘 시대의 비밀경찰이란 평범해 보이지 않는 직종이지만, 마르첼로는 시대에 순응해 사는 것이 곧 평범한 삶이라고 믿는다. 비록 살인과 같은 부도덕한 일이라 하더라도, 강력한 정부와 다수의 시민이 원하면 해야한다고 여긴다. 





그래서 마르첼로는 평범한 사람이다. 행동의 기준을 자기 마음 속의 윤리관이 아니라 세속의 잣대에 두는 사람은 언제나 다수기 때문이다. 비밀경찰이 정치적 반대자를 암살하는 시대는 지나간 듯 보이지만, 온갖 불의와 모순을 두고 “세상은 원래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다. 베르톨루치가 <순응자>에서 선보인 빛과 어둠의 분명한 대비, 파격적인 구도, 비선형적인 서사 방식은 이후의 많은 연출자들이 따라했고, 그래서 더 이상 신선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 진공’에 대한 베르톨루치의 비판은 지금도 유효하다. 


안나의 매력 때문에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마르첼로는 조직, 시대에 거역하는 사람이 아니다. 조직, 시대는 그 대가로 마르첼로에게 아이가 있는 평범한 가정을 허락한다. 대부분의 순응자처럼, 마르첼로 역시 언젠가는 시대가 바뀌리라는 것을 내다보지 못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무솔리니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제 무솔리니 정권에 복무했던 파시스트를 찾아내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예지력은 없을지언정 적응력은 좋은 순응자는 곧바로 새로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무솔리니가 물러난 직후 마르첼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비밀경찰에게 소개해준 친구를 가리키며 “여기 파시스트가 있다!”고 외치는 일이었다. 





관객과 스크린의 배우 사이엔 가상의 벽이 있다. 배우는 이 벽을 넘어 관객을 직접 바라보거나 말을 걸면 안된다. “영화는 영화일 뿐, 나와는 상관 없다”는 환상이 깨지기 때문이다. <순응자>의 마지막 장면, 마르첼로는 이 금기를 깨고 등 뒤로 고개를 돌려 관객을 한참 바라본다. 아무 대사도 없지만, 마르첼로의 표정은 이미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28일 이화여대 내 아트하우스 모모, 서초구 아트나인 등 전국 8개관에서 개봉한다.  



아마도 코엔 형제가 참조했을 장면, <순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