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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트맨'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스포일러 조금(그런데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간게 스포일러일까?)


데이미언 셔젤의 '퍼스트맨'을 보고 몇 가지. 


1. '퍼스트맨'의 초반부 우주 유영 장면에선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검고 광막한 우주 공간을 느리고 우아하게 유영하는 비행체의 모습은 모두 스탠리 큐브릭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소심하게 주장한다). 나른하고 아름다운 배경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큐브릭이 우주에서 트랜스 상태로 도달하는 방법은 관념이었지만, 셔젤은 철저히 물질이다. 큐브릭의 우주인들은 생사를 넘나드는 모험을 한 끝에 제 머리 속의 관념 혹은 외계의 초인간적 존재를 만난다. 하지만 셔젤의 우주인들은 우주선의 예기치못한 사고로 인해 제자리에서 급회전을 하거나 엄청난 진동을 경험하면서 트랜스로 향한다. 영화 속 기자들은 우주를 경험한 이들에게 '신의 존재'에 대해 묻지만, 이들 우주인은 철저히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로 묘사된다. 닐 암스트롱은 우주에 기념품을 가져가느니 연료를 조금이라도 더 싣겠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2. '위플래쉬'와 '라라랜드'에서의 솜씨를 보여줬듯, 셔젤은 엇박에 능한 재즈 뮤지션처럼 능란하게 서사의 리듬감을 과시한다. 난 두 가지 점에서 그 리듬감을 느꼈다. 자넷 암스트롱(클레어 포이)은 집에서 남편 닐(라이언 고슬링)의 안부에 대해 늘 노심초사한다. 나사의 배려로 라디오를 통해 우주와의 교신 내용에 대해 듣지만, 그 내용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억지로 근심을 감추는 자넷 주변에는 두 명의 어린 아들들이 맴돈다. 아이들은 종종 천진난만하게 자넷의 근심 속으로 끼어들고, 아빠가 죽음의 목전에 다가섰다는 사실도 모른 채 "나가 놀아도 되요?"라고 묻곤 한다. 닐이 달로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기 전날, 큰 아들만이 아빠가 살아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남편과 아내, 아내와 아들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 사이의 감정의 엇박이 아이러니를 창출한다. 

 인간을 달에 보내기 위한 아폴로 계획에는 수많은 실험이 필요했고 그만큼 많은 희생자가 나왔다. '퍼스트맨'은 그 과정을 매우 공들여 보여준다. 그런데 암스트롱이 달에 가는 대목은 매우 재빠르게 처리한다. 암스트롱이 늦은 밤 집을 나선다. 우주인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장면이 짧게 삽입된다. 그리고 이들은 바로 우주선에 탑승한다. 어떤 다짐도, 결의도, 절차도 생략한다. 우주선이 달에 내리고 암스트롱이 표면에 닿는 장면은 천천히 묘사하더니, 귀환하는 대목은 다시 생략한다. 또다른 엇박이다. 

3. 할리우드의 우주 영화에서 흔한, 나사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 치며 환호하는 결말부는 없다. 배우들은 연기를 하지 않는 듯 연기한다. 라이언 고슬링은 이미 이 분야의 특기를 여러 차례 자랑했다. 셔젤의 전작 '라라랜드'에서 그랬고,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에서도,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도 대사와 표정이 적었다. 그러면서도 할 연기는 다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엘리자베스 2세를 연기한 클레어 포이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걱정과 분노에 휩싸여있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척, 근엄한 척 위장하는 건 군주들의 특징 아닌가. 

4. '퍼스트맨'은 '위플래쉬'나 '라라랜드'보다 주제적으로 확정되고, 인간에 대한 시선에 깊이가 있으며, 서사의 세련미나 도전이라는 측면에서 앞선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달에 착륙한 닐이 어린 나이에 죽은 딸을 회상하고(흔한 홈비디오 삽입 형식), 딸의 팔찌를 달의 분화구 속 어둠으로 던지는 대목은 좀 상투적으로 보인다. 닐이 공적인 임무, 사적인 감정을 모두 추구하는, 피가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은 이미 영화 속에서 드러났다. 달에 가서까지 딸과의 엣 추억을 떠올리게 한 건, 대중영화로서의 '킬링 파트'라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과잉이었다. 내내 절제하던 영화가 이 대목에서 누선을 자극하려 애쓴다. 끝까지 쿨했으면 좋았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