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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일을 만나다

최양일은 체구가 당당했다. 싸우면 내가 한 방에 나가 떨어질 것 같았다. 이제 어디서나 60대는 노인도 아니다. 게다가 꽤 직설적이어서 대화가 재미있었다. "지금 관객은 멍청하다"는 말을 어느 감독이 이토록 당당하게 할 수 있을까.

이석우 기자


<카무이 외전>은 동명의 일본 만화가 원작이다. 17세기 일본에서 천민으로 태어나 먹고 살기 위해 닌자가 됐던 소년 카무이가 닌자 집단에서 탈출한 뒤 추격자들에게 쫓기는 과정을 그렸다. 리얼리즘 계열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온 최양일에겐 첫 사극이다.

-이 영화는 왜 찍었나.

“청소년기에 원작 만화를 보며 자랐다. 어렸을 때 참바라 영화(일본식 칼싸움 영화)를 무척 좋아했다. 아이들과 뒷산에서 나뭇가지를 꺾어 갈아서 자기만의 칼을 만들기도 했다. 내 기존의 세계관에 이어진 작품 말고 다른 영화를 하자고 프로듀서와 얘기하다가 만화 <카무이 외전> 같은 영화를 하면 어떨까 생각한 것이 이번 작품의 출발이다.”

-영화 속의 영주는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미치광이 같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몇 백년의 세월에 걸쳐 쌓인 악(惡)이 문화, 전통이 되고 아름다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들의 만행, 극악무도한 행위들이 후세 문화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악의 꽃’이라고 할까. 그런 측면을 그리고 싶었다.”

문제의 미친 영주. 영화 속에선 '요기'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13인의 자객> 속 영주와 "누가 누가 더 미쳤나" 대결을 해도 재밌겠다.

-목, 허리가 꺾이고, 팔, 다리가 잘리고, 안구에 바늘이 박히는 등 잔인한 표현이 많다.

“허구지만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하려는 욕구는 영화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욕구가 상영 환경에 따라 금지되기도 한다. 그러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건 본능이다.

-당신은 인터뷰에서 싸움이라는 표현을 자주 한다.

영화 만들기는 전쟁이다. 적은 나 자신이다. 아마 스태프는 나를 적으로 여길 것 같다.(웃음)”

-현장에서의 카리스마가 대단하다고 들었다.

현장에는 또다른 내가 있다. 현장에만 가면 인격이 바뀌는 것 같다. 모든 스태프들이 이쪽으로 가자고 하면, 나는 반대로 간다. 일본에서는 현장의 팀을 ‘조’라고 하는데, 일본 영화계에서 ‘최양일조’는 독특하다는 말을 듣는다. 한국의 촬영현장을 견학한 적이 있는데, 감독, 배우, 스태프가 함께 모니터를 보면서 의논을 하는 ‘민주주의적 현장’이 조성됐더라. 난 이 방식이 틀렸다고 본다. 결정하고 판단하는 건 오직 감독의 몫이다. 지옥과 천국을 함께 짊어지는 건 감독이다.

카무이 역의 마츠야마 켄이치. <디트로이트 메탈 시티>, <데쓰 노트>에 나왔고, 개봉 대기중인 <울트라 미라클 러브스토리>, <상실의 시대>에도 나온다. 같은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배역들이다.

-60대에 접어들었는데 현장에서의 힘이 달리지 않나.

“달린다. 체력이 떨어지면 지력도 떨어진다. 보완하기 위해 약아지고 교활해져야 한다. 머리 속에서 과대망상을 해서 체력, 지력을 보완한다.

-일본 영화가 자국 시장에서 외화를 제치고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그러나 박스오피스 상위권 영화는 대체로 드라마의 확장판이거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라고 들었다.

“우려하고 있다. 일본은 전쟁에서 패한 뒤 열린 사회가 돼 미국, 유럽, 아시아영화를 수용하고 관객동원에도 성공했다. 지금 관객은 멍청해졌다. 외화가 흥행이 안되는 이유는 젊은이들이 자막 읽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막을 통해 영화를 본다는 건 이중의 이해력이 필요한데, 이걸 귀찮아한다.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힘을 사회적으로 포기한 것 같다.

추격당하는 여성 닌자 고유키. 포털 사이트를 찾아보니 취미가 '아로마테라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