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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졸업작품)이 수작이네, 영화학교 장편영화


빼어난 영화 <철원기행>을 보고 기획한 글. 마침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양치기들>도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들 젊은 연출자들이 그 재능을 상업영화계에서 고스란히 발휘했으면 좋겠다. 


21일 개봉한 <철원기행>은 교사인 아버지의 정년퇴임식을 기념하기 위해 철원에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아버지, 어머니, 장남 부부, 차남은 함께하는 2박3일간 해묵은 갈등과 저마다의 잇속을 드러낸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 사이의 기묘한 긴장감을 세밀하게 잡아낸 수작으로,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철원기행>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이는 롯데엔터테인먼트와의 산학협력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지금까지 <철원기행>을 비롯해 5편의 작품이 배출됐다.

영화학교의 장편영화가 한국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상업영화보다 창의적이고, 독립영화보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이를 두고 한국영화의 ‘제3지대’라 부를 만하다.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연구과정은 단편영화 중심이던 영화학교의 영화들을 장편으로 확장시킨 계기였다. 이 과정은 매년 장편 극영화 3편, 장편 애니메이션 1편을 배출한다. 한국영화아카데미 1년 정규과정을 마친 이들 중 소수에게만 기회가 주어지므로 경쟁이 치열하다. 지금까지 <파수꾼>, <잉투기>, <소셜포비아>,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 화제작을 배출했다. 지난해 <소셜포비아>는 25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다양성영화 흥행작이 됐고,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의 주연 이정현은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상업영화 못지않은 성과를 냈다.


철원기행


명필름영화학교는 영화사 명필름이 재능 있는 신진 영화인에게 장편 데뷔 기회를 주기 위해 지난해 만든 기관이다. 연출, 시나리오 등 10명 내외의 각 분야 신입생이 2년에 걸쳐 작품을 만든다. 첫 작품 <눈발>은 이달 말 열리는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CJ E&M과 손잡고 지난해 <돌연변이>를 선보였다. 청년세대의 비극적 상황을 생선인간이라는 캐릭터로 은유한 작품이었다.

이들 영화들이 주목받는 이유는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장점을 고루 보여준다는 데 있다.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를 배경으로 제작되는 상업영화는 갈수록 규격화되고 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모니터링’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의 반응을 체크해 영화에 반영한다. 제작상의 위험요소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창작자의 독창성을 훼손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반면 독립영화는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지만, 열악한 제작환경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다.


영화학교들의 장편에도 대기업 자본이 산학협력 형식으로 투입되기도 하지만, 대기업이 직접 제작에 참여하지는 않는다. 한국영화아카데미의 경우, 오직 교수진과 동료 학생의 비평만이 영화 제작 과정에 참고가 될 뿐이다. 위에 언급된 대부분의 작품들이 기존 상업영화 진영에선 찾기 힘든 참신한 소재를 다양한 방식으로 형상화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대기업 투자 영화로는 제작되기 힘든 성소수자 문제 등을 녹이는 시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의 기자재를 활용하기에, 제작 인프라가 비교적 탄탄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학교마다 장편 제작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자본이 적을 뿐 기존 상업영화사 못지않은 제작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했다.

창의적이되, 예술가의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최근 영화학교 영화들의 특징이다. 유영식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은 이를 “관객과 소통하는 작가정신”이라고 표현했다. 유 원장은 “현재 상업영화계는 ‘대중성’을 지나치게 협소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창작자의 창의성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간 뒤, 이후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 진짜 대중성”이라고 말했다. 명필름영화학교의 <눈발>은 아이돌 그룹 GOT7의 박진영을 캐스팅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극소예산의 독립영화와 제작비 100억원대의 블록버스터로 양극화되고 있는 최근 한국영화 시장에서 이 같은 중간급 영화들에 거는 기대도 크다. 전찬일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연구소장은 “영화는 공동작업이기에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인프라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열정적이고 재능 있는 학생들이 학교 인프라의 도움을 받아 좋은 작품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