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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예술의 상상력과 정치의 각론 사이의 북한



결말 보고 당황한 '길소뜸', 영화화 생각하면서 읽은 '우리의 소원은 전쟁'. 실제로 '우리의 소원은 전쟁'은 영화제작중이라고. 


통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초등학교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정작 소원 빌 일이 있을 때 ‘통일’이라고 말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애니메이션 <똘이장군>을 본 기억도 어렴풋이 나는데, 북한의 공산주의자가 사실 알고 봤더니 돼지나 늑대였다는 내용은 어린아이가 보기에도 유치했다. 텔레비전에 북한 관련 소식과 북한 방송 내용을 전해주는 <통일전망대>란 제목의 프로그램이 있었던 것도 같다. 제작진께는 죄송하지만, 요즘도 이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인터넷 검색을 해보고야 알았다. ‘일요일 오전 6시10분’이라는, 평범한 의지의 인간이라면 시청을 장담할 수 없는 방영시간만 탓해본다. 대학 시절엔 통일 문제에 특히 관심 많은 학우들이 있긴 했으나, 그 수가 줄어드는 추세였을뿐더러 친해질 기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위대한 예술은 화석화한 인식의 틀을 사정 없이 부수곤 한다. 지난달 26일부터 오는 6일까지 열리는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중 <길소뜸>(1985)은 송길한과 명콤비였던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다. 흔히 이산가족의 아픔을 그린 영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막상 보면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화영(김지미)은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을 보며 전쟁 중 헤어진 연인 동진(신성일)을 생각한다. 화영은 임신해 아이를 낳지만, 전쟁 중 동진과 아들을 모두 잃어버린다.




화영과 동진은 ‘이산가족 찾기’ 이벤트 덕에 재회한다. 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아나서고, 유력한 남자를 만난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와 헤어져 거지떼를 따라다닌 남자는 화영, 동진같이 안온한 중산층 남녀가 받아들이기엔 너무 거칠고 무례한 사람이었다. 혈액검사 결과 남자는 둘의 아들임이 거의 확실해지지만, 화영은 “100%가 아니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다. 동진이 아들일 게 뻔한 남자에게 “가끔 연락이나 하고 지내자”고 하자, 남자는 “하루 벌어 먹고살기 힘든데 그럴 시간이 어딨냐”며 가버린다. 동진 역시 화영의 연락처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생이별했던 가족이 30여년 만에 만나는 모습에는 목석 같은 사람도 눈물을 참기 어렵지만, 송길한과 임권택은 대담한 상상을 시작한다. 그 만남은 결국 행복할까. 30여년이란 세월은 사람의 마음, 생각, 습관을 얼마나 다르게 만들었을까. 피만 섞였을 뿐,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산 사람은 사실상 남이 아닐까. 같은 나라 안에서 떨어져 살던 사람의 결합도 이렇게 힘든데, 두 나라의 결합이 가능하긴 할까. 옳든 그르든, 이 질문은 필요하다.

장강명은 최근 가장 각광받는 한국의 젊은 소설가다. 신문기자 신분으로 뒤늦게 장편 데뷔작을 낸 그는 아예 언론사를 떠난 뒤 1년에 2~3편의 장편을 써내는 괴력을 보이고 있다. 그가 지난해 펴낸 <우리의 소원은 전쟁> 역시 통일 문제를 다룬다. ‘김씨 왕조’ 체제가 붕괴하자, 북한에는 통일과도정부가 들어선다. 통일과도정부는 즉각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고 핵사찰을 받아들인다. 미국은 휴전선 이북으로, 중국은 압록강 이남으로 내려가지 않기로 상호 합의한다. 북한에는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견된다. ‘조선인민군’은 ‘조선해방군’으로 이름을 바꾼 뒤, 김씨 왕조 체제의 최대 수출품이었던 마약을 독점 공급하는 범죄조직이 된다. 이들은 넘쳐나는 마약을 새로운 시장인 한국에서 판매하려 한다.

이 소설 속 북한은 마약 조직의 힘이 군대 또는 경찰보다 더 센 중남미의 어느 국가처럼 보인다. 중남미 사람들이 미국 국경을 넘어 영주권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하듯, 초토화된 북한의 주민들은 자본주의 한국으로의 이주를 꿈꾼다. 한국에는 북한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인종주의가 발흥한다.

앞에서 통일이든 북한이든 남의 일처럼 얘기했지만, 이게 남의 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북한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미국은 막강한 무기를 한반도 안팎에 배치하는 것으로 불안감을 조성한다. 소셜미디어에는 수시로 “곧 전쟁이 난다”는 풍문이 떠돈다. 실제 북한의 성명이나 미국 정치인의 말만 들으면 곧 전쟁이 터질 것 같다. 그 무서운 말들이 모두 ‘협상용 허풍’일 가능성도 없지 않겠지만, 그 허풍은 우리의 불안감에 젖줄을 대고 또 부풀린다.

19대 대선이 1주일도 안 남았다. 사드를 배치하자 말자, 북한과 대화를 하자 말자, 한국에 전술핵을 들이자 말자 후보 사이에 논쟁이 오간다. 하나같이 중요한 논쟁거리다. 하지만 지금 한반도엔 각론을 넘어선 비전이 필요하다. 사드를 배치하는 궁극적 목적, 북한과 대화하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인지 밝힐 필요가 있다. 정치인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대선후보들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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