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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큰 상실. 니콜 키드먼과 <래빗홀>



니콜 키드먼(44)은 아름답지만 따분한 금발 미녀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다. 지금 그는 우리를 대신해 영혼의 심연으로 모험을 떠나는 예술가입니다. 

최근 개봉한 <래빗 홀>은 키드먼이 주연을 맡고 제작까지 겸한 작품입니다. 키드먼은 원작 연극을 본 뒤 영화화를 결심했고, 상대 남우 아론 에크하트, 감독 존 카메론 미첼을 끌어들여 영화를 완성했습니다.

영화는 6세 아이를 잃은 지 8개월이 된 부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일터에 나가고 가끔 웃지만, 부부는 여전히 아이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내 베카는 집안에 남아있는 아이의 흔적을 하나 둘씩 지우지만, 남편 하위는 그런 흔적으로라도 아이를 간직하고 싶어합니다. 베카는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소년과 우연히 재회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하위는 아이 잃은 부모들의 모임에서 만난 여성과 마리화나를 나눠 피웁니다. 부부의 관계는 조금씩 악화됩니다.

<래빗 홀>은 가장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줍니다. 극중 인물의 대사대로, 깊은 상실감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시비(是非)가 아니라 공감입니다. 바다보다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 나머지 타인에게까지 상처를 주는 사람이 들어야할 조언은 “너의 행동은 옳지 않아”가 아니라 “얼마나 슬프면 그러겠니”입니다. <래빗 홀>은 교과서 같은 ‘힐링 무비’입니다.

키드먼은 “항상 극단적인 주제를 다루는 시나리오가 흥미롭다”며 “아이를 잃어버린 부부 이야기는 내가 다룰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말합니다. 연극 원작자 데이비드 린제이는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떠올려봤고, 그것은 바로 아이의 상실, 죽음이라고 생각해 희곡을 썼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키드먼은 <래빗 홀>을 제작하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래서 키드먼은 “아이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잘 알고 있었다”고 덧붙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죽은 상황을 상상하며 극을 써내려간 원작자나, 갓 태어난 아기를 두고 아이 잃은 엄마 역을 연기한 배우나 엄청난 ‘강심장’입니다. 아이를 잃는다는 것은 부모라면 입에조차 올리기 싫은 일입니다. ‘힐링 무비’는 어떤 이에게 백신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영혼에 스스로 상처를 낸 뒤, 흐르는 피의 맛을 보고 표현한 두 대담한 예술가 덕분에 우리는 그런 백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배우는 영혼 대신 육체의 모험을 택합니다.

한때 키드먼의 남편이었던 톰 크루즈는 육체로 관객을 즐겁게 합니다.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중인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서 크루즈는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의 외벽에 매달려 대역, 컴퓨터 그래픽 없는 액션을 직접 소화했습니다. 크루즈가 이 장면을 찍은 전후 상황을 보여주는 메이킹 필름, 부르즈 칼리파 꼭대기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합니다.

영혼과 육체의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배우들 덕분에 우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거나 몸을 다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엄청난 모험을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대가로 8000원은 큰 돈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