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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식적인 구도, <리틀 스트레인저>





***스포일러 있음. 


세라 워터스의 장편 <리틀 스트레인저>를 읽었다. 워터스는 한국에선 <핑거스미스>로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작품은 박찬욱 감독에 의해 <아가씨>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고 있다. 


<핑거스미스>는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데, <리틀 스트레인저>는 2차대전 직후다. 이때라면 그저 '현대물'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리틀 스트레인저>는 시대물 분위기를 물씬 낸다.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귀족 에어즈 가문과 그들의 집 헌드레즈홀이기 때문이다. 헌드레즈홀에서 일했던 유모의 아들이자 자수성가한 의사 닥터 패러데이가 작중 화자인데, 독자는 그의 눈을 통해 한때 영화로웠던 헌드레즈홀과 전쟁 이후 완전히 몰락한 헌드레즈홀을 비교해 관찰한다. 패러데이는 어린 시절의 아름다웠던 헌드레즈홀의 모습을 깊이 각인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에게 1950년대는 전후 상처를 치유하고 본격적인 자본주의 소비 사회로 접어드는 시기를 준비한 때인 반면, 패러데이와 그를 통해 묘사되는 에어즈 가문 사람에게는 그저 고딕 호러의 시대 배경이다. <어셔가의 몰락>의 얌전한 버전 정도?


그렇다. 이 소설은 얌전하다. <리틀 스트레인저>에는 귀신 비슷한 것이 나오긴 하지만, 진짜 귀신인지 아닌지 끝내 알 길이 없다. 화자인 패러데이가 철저히 합리성, 이성에 의존한 사람이기 때문에, 에어즈 가문 사람들(에어즈 부인, 장녀이자 한때 패러데이와 약혼한 캐럴라인, 상이군인인 장남 로더릭)이 아무리 패러데이에게 초자연적 현상을 증언해도 패러데이는 믿지 않는다. 화자가 믿지 않으니 독자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기 힘들다. 그렇게 간접적으로, 있는둥 마는둥 전해지는 귀신의 존재가 무서울리 없다. 책 띠지엔 '불면의 밤' 운운하는 스티븐 킹의 추천사가 있지만, 나는 '스티븐 킹이라면 150쪽 정도의 중편으로, 그것도 훨씬 무시무시하게 썼을 것'이라고 투덜대며 읽었다. 





700여쪽 동안 워터스가 공들이는 건 무시무시한 귀신 묘사가 아니라, 과거에 발목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 몰락하는 귀족들의 정신과 생활 양식이다. 에어즈 가문은 아무런 수입원이 없기에 영지를 조금씩 팔아가며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문의 몰락을 막지는 못한다. 귀신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이 가문은 어차피 망했다. '차츰 몰락하는 영국 귀족'의 이미지에 호기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 독자의 입장에서 그들의 처지에 공감한다고 말하기까진 어려웠다. 더 공감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책의 구도가 너무 계산적이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귀족 여성-초자연-여성 vs 평민 의사-합리-남성'의 구도가 너무나 뚜렷해, 결과를 알고 보는 스포츠 경기 같았다고 할까. 역자는 저자가 화자의 신뢰성을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으며 심지어 패러데이가 사건 배후의 범인일 수도 있다는 가설을 제시하는데, 뭘 놓친지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작가의 의도가 거기까지 뻗어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리틀 스트레인저>는 여러모로 만족스럽지 못한 독서 경험을 제공했다. 몰랐던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환상도, 캐릭터와 상황이 엉망으로 뻗어나갈 때의 광기도, 예상치 못한 전개가 주는 감탄도 없었다.